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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면 불안할까

by Windsbird

퇴사하면 불안할 줄 알았다.


고정된 수입의 부재, 루틴의 부재, 방향성의 부재. 여태 내 일상의 뼈대가 되어준 이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리면 공허함만 남진 않을까. 항상 무언갈 쫓아 달려가야만 제대로 사는 것 같은 날 너무 잘 알기에.


한 동안은 회사 생활 하지 않을 거라 결심하면서 부재의 예상 지속 기간 또한 기약 없이 길어졌다.


놀랍게도 2개월이 지난 오늘날까지, 단 하루도 불안해본 적이 없다. 강요된 시간표가 없으니 마음껏 휴식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나름 나만의 하루 루틴을 잡아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여태 해온 일은 다시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더니 전엔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길들이 보였다.


강아지 뿌뿌와 몇 시간을 공원에서 산책하기도 하고, 새벽까지 판타지 소설을 읽다 잠드는 시간의 사치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중이다.


한동안 중단했던 중국어도 다시 배우고 있고, 글루틴을 통해 글쓰기의 묘미도 조금씩 맛보고 있다. 몇 주에 한 번씩 공연을 보러 다니고 3년 전에 시작한 십자 뜨기도 거의 끝내간다.


사실 2개월이면 정말 짧은 시간이다. 충분히 쉬어도 되는 시간이고 아직 불안하지 않아도 되는 기간이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분명 찾아오겠지 -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조급함.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 미래에 대한 불안함. 너희들이 찾아올 때까지 난 신나게 놀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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