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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sbird Jan 19. 2024

호두와 살구를 품은 호밀빵

런던, 오늘의 식탁 - 1월 17일

며칠 동안 자꾸 빵 생각이 났다. 땅콩버터를 바르고 대추야자를 올린 바삭바삭한 토스트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최애 아침 메뉴다. 커피 한잔과 토스트를 먹을 생각에 눈이 번쩍 떠질 정도로 좋아하던 이 아침 메뉴를 간헐적 단식과 밀가루 줄이기를 하면서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요즘 들어 자꾸 생각났다. 얼마 전 집에서 남아돌던 아몬드로 직접 아몬드 버터를 만들고 동네 터키 슈퍼마켓에서 대추야자를 한 박스 사 온 게 시발점이었다. 


미루다 미루다 드디어 빵을 구웠다. 집에서 빵을 만드는 게 생각보다 너무 쉽다는 걸 알고부턴 더 이상 빵은 슈퍼에서 사지 않는다. 대량 생산된 슈퍼마켓 식빵은 질감도 별로고 왠지 모를 새큼한 맛이 나 애초 좋아하지 않았는데, 내가 직접 빵을 굽게 되면서 빵을 먹는 횟수도 늘어났다. 


레시피를 따라 통밀가루와 호밀가루, 소금, 이스트, 버터를 볼에 넣고 섞은 후 찬물을 조금씩 넣어가며 10분 정도 반죽을 해준다. 처음엔 질퍽질퍽하던 반죽이 계속 만져주면 탄력이 붙으면서 표면엔 윤기가 흐른다. 동글동글 애기 머리 같이 귀여운 이 반죽이를 볼에 넣고 랩을 씌워 발효를 시켜줘야 한다. 발효 시간은 한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 이 기다리는 중간 과정이 귀찮아서 빵 굽는 걸 그렇게 미룬 거였다. 


예전엔 이렇게 빵 반죽을 해 놓고 하루 종일 잊어버려 반죽이 다 찌그러져 버린 적이 있어 이젠 알람을 맞추어둔다. 


1차 발효를 마친 반죽이는 이산화탄소를 머금어 한껏 부피가 커져있다. 별것도 아닌 게 괜스레 어깨에 힘주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나온다. 반죽이를 손가락으로 삐죽 눌렀을 때 난 구멍이 얼마나 빨리 다시 올라오냐를 보고 발효 상태를 확인하는데, 아직 초보 베이커인 난 사실 어떤 상태가 최적의 상태인지 구분을 하지 못한다. 그냥 누르는 게 재밌어서 몇 번 손가락으로 반죽이를 쑤셔 준다. 


부엌 상판 표면에 반죽이 들러붙지 않도록 올리브 오일을 조금 뿌려주고 다시 반죽을 해주는데, 이 두번째의 반죽의 질감엔 확실히 성숙도가 느껴진다. 조금 더 탄력 있고 쫀득쫀득한 느낌이 좋다. 이번 빵 반죽엔 호두 조각과 말린 살구, 대추야자 조각도 섞어주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반죽이 드디어 오븐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내 기분도 점점 올라가기 시작한다. 집 전체에 진동하는 구수한 빵 냄새. 이 순간을 위해 빵을 굽는다 해도 과장이 아닐지도. 


막 구운 따끈따끈한 빵을 한 조각 잘라 차가운 버터를 듬뿍 바른 후 천일염을 살짝 뿌려주었다. 한 조각 맛만 봐야지 했는데, 어느새 네 조각이 사라져 있다. 



#베이킹 #오늘의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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