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파크, 줄리아드 학교 & 카네기 홀
지상이 꽁꽁 얼어버릴 거 같아.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에 숨이 막힌다고 불평을 하던 때가 엊그제 그 후 초록 잎들이 노랗게 물들어 가고 도로에 갈색 잎 뒹구는 것을 보며 가을인가 싶은데 벌써 하얀 겨울이 찾아온 건가. 목요일 아침 기온이 8도. 아직 황금빛 숲도 보지 않았는데 왜 이리 추워.
백만 년 만에 프렌치토스트 만들어 우유랑 먹고 랩톱을 켰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캐럴이 생각날 정도 날씨네. 해마다 겨울이 되면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안드레아 보첼리 공연이 열리는데 그의 라이브 공연 언제나 볼까. 티켓값이 더 저렴하길 바라볼까. 보헤미안 예술가들이 살았던 그리니치 빌리지 블루 노트 재즈 공연장에서는 크리스티 보티 공연이 열리고 매년 열리나 아직 한 번도 보지 않았어. 그의 트롬본 소리를 들으면 추운 겨울도 따뜻할 텐데. 뉴욕에 오니 금관 악기 소리가 왜 이리 예뻐. 잘 발효된 묵은 김치 맛이랄까.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트롬본, 트럼펫, 색소폰 악기 소리가 죽여주게 아름다워.
어제 수요일 오후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오후 4시와 6시 줄리아드 학교에서 열리는 공연 예정. 퀸즈 보로 플라자 지하철역에서 맨해튼으로 가는 W 지하철에 환승했는데 커다란 트렁크 든 여인이 내게 타임스퀘어 가냐고 물어 그런다고 말하고 나서 여행객이세요? 라 물으니 그러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다고 하면서 오래전 뉴욕에 살다가 지금은 프랑스에서 사는데 뉴욕에 여행 왔다고. 그런데 맨해튼 웨스트에서 살아 다른 지역은 잘 모른다고. 플라자 호텔 역 근처에 내리며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지하철역을 빠져나오니 아름다운 센트럴파크가 눈앞에 펼쳐졌다. 마차들의 행렬이 손님을 기다리는 있는 곳 당연 악취가 나니 싫어하는 뉴요커들도 있다고 하고.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무슨 일인가 했는데 누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고 누구냐 물으니 잘 모른다고 하고 옷걸이에 크리스천 디오르 의상이 아주 많이 걸려 아마 모델이 아닐까 짐작하며 서둘러 공원을 거닐었다.
줄리아드 학교에 늦을 거 같으니 최대한 빠른 길로 갈지 아닐지 망설이다 쉽 메도우로 들어갔는데 놀랍게 노장 화가 자넷 루텐버그(Janet Ruttenberg)를 만났다. 남편은 엄청난 재력가이고 그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매년 여름이면 센트럴파크 쉽 메도우에서 그림을 그리는 할머니. 추운 날이라 겨울옷을 입고 장갑을 끼고 그림을 그리고 있더라. 물론 미완성 작품을 보았어. 가만히 휠체어에 앉아 있기도 힘들 나이인데 서서 그림을 그리니 얼마나 특별한 분인지. 노장 화가의 열정에 놀랐어. 오래전 뉴욕 시립 미술관에서 우연히 그녀 전시회를 보고 명성 높은 화가인 줄 알았고 개인적으로 그녀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뜻하지 않게 노장 화가를 보니 기분이 좋아 날아갈 거 같고 화가가 그림 그리는 곳 근처 담장은 아직 나팔꽃이 피어 반가웠고 낙엽을 밟으며 줄리아드 학교로 가는 길 뉴욕 시 마라톤 행사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다. 지하철역에는 마라톤 축제 포스터가 보인다. 매년 11월 첫 번째 일요일 뉴욕 시 마라톤 축제가 열리고 그 무렵 뉴욕 호텔 예약도 어렵다고 하고 레스토랑과 백화점은 미소를 짓는다고. 뉴욕 시에서 열리는 축제가 많아 호텔은 늘 손님 맞기에 바쁘니 얼마나 좋을까.
오래전 아들과 센트럴파크에 갔는데 사방 군데를 다 막어버려 출구 찾느라 죽을 고생을 했는데 알고 보니 뉴욕 마라톤 행사가 열린 날이었다. 공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자세히 말도 안 하고 "다른 곳으로 가세요"라고만 하니 출구 찾는 게 시험 보는 것보다 더 어려웠고 어렵게 출구를 찾아와 맨해튼으로 나오니 도로도 통제를 하니 다시 헤매고 말았다. 뉴욕 시 마라톤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블루빛 마라톤 행사 옷을 입고 레스토랑에도 뉴욕 시 마라톤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해내고 말았어"라는 말을 하며 승리를 자축하는 파티도 열고.
매년 5만 명 이상이 참가하고 2백만 이상의 관중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온다. 여기저기 함성 소리 들려오는 축제 올해 11월 4일 열려. 보스턴 마라톤과 런던 마라톤과 더불어 세계 4대 마라톤에 속하는 뉴욕 시 마라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했다는 글로 마라톤 축제를 처음 접했다. 하루키 단편집과 <슬픈 외국어>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의 소설도 꽤 많이 읽었는데 기억 창고가 눈 내린 모양이야. 기억 창고가 하얗게 변했어. 지난 10월 초 맨해튼에서 열린 <뉴요커> 축제에서 하루키를 만날 수도 있었는데 문제는 돈 때문에 만나지 못했어. 티켓이 비싸 살 수가 있나.
오후 4시 줄리아드 학교 피아노 공연을 봤지. 무대에서 빛나는 피아니스트들 연주가 얼마나 황홀하던지. 티켓 요구하지도 않은 공연이고 가끔씩 열리는데 너무 좋아. 음악 사랑하는 할아버지도 만나고. 어제 바흐, 알베니스, 리스트, 프로코피예프 곡을 연주했는데 사랑하는 바흐 파르티타 곡 연주가 황금빛 들판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음색이 풍부하고 성경 같은 느낌보다 아주 화려한 색채를 느껴서 특별한 연주였다. 리스트 연주가 가장 황홀했어. 너무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에 시간 가는 줄 몰랐어.
같은 장소에서 저녁 6시에도 공연이 열리고 줄리아드 학교 무료 공연 가운데 인기가 많고 티켓을 요구하는 공연. Liederabend CXC.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와 바리톤 음성으로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 곡 등을 들었다. 뉴욕에 와서 자주 보는 보컬 공연 정말 좋아. 청중 가운데 일부는 음악 전공하는 학생들이고 교수님도 오고 음악 사랑하는 노인들이 아주 많이 찾아오고 어제도 백발 할아버지도 보고 휠체어 타고 공연 보러 온 분도 뵈고. 뉴욕 문화 특히 맨해튼 문화가 놀랍다.
그런데 어제 자주 만나는 70대 할머니가 안 보여 이상했는데 공연이 막이 내릴 즈음 얼굴을 비쳐 무슨 일인가 물으니 깜박 잊어버려 집에서 늦게 출발했다고. 마지막 중국 학생 바리톤 노래를 잠깐 들었다고. 바리톤 목소리가 예술이었다.
어제저녁 8시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볼 예정이라 좀 바쁜데 날 붙잡고 말을 하는 할머니. 나도 실은 어제 줄리아드 학교와 카네기 홀 공연 잊어버릴 뻔했다. 미리 티켓 사면 잊기 쉽고 매일매일 복잡한 일이 생기니 티켓 사 두고 공연 볼 수 없기도 하겠어.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 지난번 콜롬비아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여학생과 함께 왔던 날 마지막으로 봤다. 어제 놀란 것은 그제 메트에 가서 <삼손과 델릴라> 오페라를 봤다고. 보컬을 사랑하는 할머니가 오페라를 본 게 이상한 게 아니고 30불 주고 산 입석 좌석표로 오페라를 봤다고 하니 놀랐지.
70대 할머니가 입석표를 구해 3시간 이상 동안 오페라 볼 정도. 정열이 대단하고 음악 정말 사랑한 할머니. 할머니 친구랑 가서 오페라 봤는데 테너 목소리가 별로라고. 그 테너는 이번 시즌 갈라 공연 때 <삼손과 델릴라>에 출연했던 바로 그 테너. 난 타임스퀘어에서 스크린으로 오페라 봤는데 테너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카네기 홀에서 자주 만나는 중국 시니어 벤저민이 이번 시즌 그 오페라 보러 갔는데 테너 목소리가 형편없어 다른 테너로 교체되었다는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말해 기억하고 있는데 지난 토요일 뉴욕 클래식 음악 채널에서 들려주는 삼손과 델릴라 오페라 테너 목소리가 좋아 라이브 공연 보러 갔는데 별로라고. 삼손과 델릴라에 출연하는 테너는 가끔은 잘 부르고 가끔은 별로라고 해서 내가 세계적인 테너가 가끔 잘 부르면 그게 어디 세계적인 테너야 하니 할머니가 웃었다. 메트 오페라 하우스는 세계적인 오페라 하우스에 속하고 뉴욕에 오페라 사랑하는 팬이 얼마나 많은데 수준 낮은 테너가 왜 무대에 올라가야 돼? 이건 나의 생각이다. 메트에 들어가려고 오디션 보는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릴 텐데. 할머니는 어제 줄리아드 학교 공연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누가 가장 잘 했냐고. 나의 비평을 존중하는 할머니. 할머니에게 이러고저러고 말하고 헤어지고 지하철 타고 카네기 홀에 갔다.
입구에서 표 보여주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자주 만나는 직원을 만나 인사를 했다. 지난번 비올라 솔로 공연 볼 때 그녀가 내가 올지 안 올지 궁금했다고. 어제는 내게 드레스 서클에 올라가지? 하며 내 표를 보여 달라고. 어제는 발코니 석 오픈하지 않았으니 드레스 서클이 가장 저렴한 곳이었다.
1962년에 창단된 American Symphony Orchestra 공연 처음 보러 갔는데 나의 기대치를 벗어나 휴식 시간 카네기 홀을 떠났다. 줄리아드 학교에서 무료로 본 학생들 공연이 더 좋았다. 어제 카네기 홀에서 부른 바리톤과 소프라노는 세계적인 성악가라고 하는데 분명 잘 부르나 목소리가 오케스트라에 묻혀 객석에 잘 전달되지 않았고 그러니 특별한 감동이 없었다. 미국과 뉴욕 초연 곡도 포함되어 어려운 점도 있었을 거 같고. 마지막 공연까지 보면 집에 자정 무렵 돌아올 예정이나 좀 더 일찍 집에 도착했지만 자정이 아니라서 그렇지 빨리 집에 돌아온 것은 아니다. 괜히 어제 카네기 홀에 공연 보러 갔어. 차라리 메트 오페라나 볼 걸 후회가 된다. 오페라는 밤 11시경 막이 내리니 집에 1시 가까이 오려니 에너지 없이 보기 힘들고 맨해튼은 매일매일 수많은 축제와 행사가 열리니 날 유혹하는 곳도 많아서 이번 시즌 오페라 한 편도 안 보았는데 오페라 보고 싶구나. 가을밤 듣는 오페라 황홀하지.
뉴욕은 자본주의 꽃이 피는 도시니 거대한 자본 아래 숨쉬기 힘든 도시이고 뉴욕에 날 도와줄 사람 단 한 명도 없지만 지하철 타고 맨해튼에 가면 세계적인 공연도 보고 무료 공연도 아주 많이 열리니 그런 면은 정말 좋아. 뉴욕이 매력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란 점. 세계적인 예술가들 공연 보면 행복이 밀려오지.
그나저나 날씨는 언제 풀리나. 너무 추워. 하느님이 화가 나셨나. 꽁꽁 얼어버릴 정도로 추워.
10. 18 목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