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첫날 카네기 홀에서 아들과 함께 공연을 봤어
아름다운 11월이 열렸다. 이웃집 가로수는 붉게 물들어 가고 가을바람이 불어 마음이 스산하다. 달력 한 장 넘기며 세월의 속도에 놀란다. 아름다운 11월은 꼭 붙잡고 싶어 진다. 가을아 가을아 천천히 가렴, 하고 말도 걸고 싶다. 이브 몽땅의 <고엽>도 떠오르고 노래를 들으면 만추의 풍경과 동시 곧 하얀 겨울이 올 거 같은 느낌도 들고, 아직 센트럴파크 단풍은 절정은 아니고 11월 초가 지나고 가을 햇살이 비쳐야 아름다운 11월의 가을향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노랗게 물든 숲을 거닐면 행복이 밀려오나 노란 나뭇잎이 가을바람에 휘날리면 마음도 스산해지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도 떠오르고. 아, 가을 천천히 가렴, 제발 천천히 가렴.
아름다운 11월이 열리는 첫날은 카네기 홀에서 아들과 함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공연을 감상했다. 게르기예프 지휘자의 손가락이 가을 햇살에 비추는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무대에 오른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모두 러시아 사람들인데 까만색 의상을 입은 음악가들이 미국인과 다를 게 없어서 이상도하고. 지구촌 사람들이 점점 더 가까워져서 그럴까. 프로그램 보면 단원 이름이 분명 러시아 사람임에 틀림없고 한국 사람 한 명도 없더라. 브라질 출신 74세 할아버지 피아노 연주를 들으니 놀랍기도 하고 그랬어. 백발의 할아버지가 하얗고 까만 피아노 건반으로 브람스 곡을 연주.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연주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악장 보다 2악장 연주가 더 좋고, 2악장보다는 3악장 연주가 더 좋고 갈수록 점점 더 좋아졌다. 브람스 곡 연주가 막을 내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곡 연주를 했고, 곡 느낌이 웅장했고, 가끔은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현악 선율에 가슴을 적셨다.
Mariinsky Orchestra
Thursday, November 1, 2018 8 PM Stern Auditorium / Perelman Stage
Valery Gergiev, Music Director and Conductor
Nelson Freire, Piano
BRAHMS Piano Concerto No. 2
R. STRAUSS Ein Heldenleben
러시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공연은 카네기 홀에서 10월 31일과 11월 1일 이틀 연속 열렸고 11월 3일 뉴저지에서 열린다고.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팬은 뉴저지에 가서 공연을 본다고 하니 음악을 사랑하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FIT에서 패션을 공부하는 L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틀 동안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보고 시월의 마지막 밤은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보고 핼러윈 파티에 가서 새벽 2시가 지나도록 놀았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이번 학기 시험은 안 보고 프로젝트만 제출하니 자주 카네기 홀에 공연 보러 온다고. 핼러윈 날 마린스키 오케스트라가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곡을 연주했는데 너무나 좋았다고 하니 좀 아쉽기도 했어. 하지만 맨해튼에 살지 않은 내게는 매일 밤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보는 게 상당히 도전이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미국 투어 중이고 얼마 전 뉴저지에서 연주를 했다고 최근 토론토에서도 연주를 했지만 미국과 캐나다 연주 곡이 다르다고 하고. 카네기 홀에서도 조성진 공연 예정. 또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들이 올까. 다인종이 사는 뉴욕 카네기 홀도 재미있다. 대개 러시아 음악가 연주하면 러시아 사람들 많이 오고, 이탈리아 음악가 연주하면 이탈리아 사람들 오고, 한국 사람 연주하면 당연 한국인이 많이 온다. 다른 나라에 와서 살아도 같은 민족끼리 함께 모여 살고.
11월의 첫날 맨해튼 유니언 스퀘어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도 갔다. 소호에 갈까 하다 그냥 북 카페에 머물고 말았다.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핫 커피 마시며 잠시 쉬는 것도 참 좋다. 그곳에 가면 만나는 중년 뉴요커는 어제도 와서 뉴욕 타임지와 잡지를 쌓아두고 읽더라. 북 카페 스타벅스 바리스타 아가씨가 정말 친절해 "모나리자"라고 내가 별명을 지었는데 어제 그녀는 단풍 느낌 나는 색으로 염색을 해서 가을 느낌 진했지만 슬픈 눈동자라서 무슨 슬픈 일이 있나 보다 짐작을 했으나 아무 말하지 않았다. 서로 얼굴은 알지만 남의 일에 대해 자세히 물을 수 없어서.
잡지를 넘기다 집중이 안 되어 서점을 돌고 우연히 혜민 스님 책도 발견했다. 3백만 권 이상이 팔렸다고 하니 저자가 누굴지 궁금했는데 영어로 적힌 이름이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아 천천히 읽었다. 혜민 스님 영어 표기 읽기 무척 어려웠어.
북 카페 떠나려는 순간 클린턴 대통령 이벤트가 곧 열린다는 광고도 보고 지난번 5번가에서 피운 소동도 떠올랐다. 그때 5번가 북 카페에 갔는데 엘리베이터 방향이 평상시와 반대라 이상했는데 클린턴 전 대통령 이벤트가 열렸고 얼굴이라도 보려고 했는데 경비가 너무 삼엄했고 책을 구입한 사람에게만 오픈하니 볼 수도 없고 경찰이 오래된 내 가방에 든 낡고 작은 지갑도 열어보니 깜짝 놀랐어. 기분이 아주 상쾌하지 않은 일이었다.
음악이 흐른 북 카페에서 창가로 비친 노란 단풍을 보고 책을 덮고 난 뛰어가고 말았어. 황금빛으로 물든 가을 나무가 내게 말을 걸었어. 센트럴파크는 아직 단풍이 예쁘지 않은데 유니언 스퀘어 파크는 노랗게 물들었다. 사람들은 노랗게 물든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가을을 즐기고 있더라. 소설책도 읽고, 대화도 나누고, 그림도 그린 화가도 보았다.
노란 단풍 보고 배가 고파 노란 바나나 거리에서 사 먹고 사랑하는 스트랜드에 가서 헌책 구경도 하고. 모차르트와 오페라에 대한 책이 날 유혹했지만 구입하지 않고 마크 트웨인 소설도 보여 어릴 적 읽은 <거지와 왕자>도 생각하고. 그냥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지금 생각하니 놀랍다. 유니언 스퀘어 북 카페 벽에 하얀 정장을 입은 마크 트웨인이 담배를 피운 모습이 그려져 있고 미국의 위대한 작가 트웨인도 떠 올랐어.
스트랜드에서 잠깐 시간 보내다 지하철을 타고 카네기 홀에 가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공연 보고 자정 무렵에 집에 돌아왔다. 가을 햇살은 어디로 숨어 버리고 하늘은 흐리고 붉게 물든 단풍이 하얀 창가로 비춘다. 뉴욕의 가을은 점점 짙어가겠다. 내일모레 뉴욕 시 마라톤 축제도 열리고 서머타임도 해제가 되고.
11. 2. 금요일
가을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