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오페라, 센트럴파크, 줄리아드 학교
뉴욕 11월의 첫 번째 일요일 아침. 뉴욕 시 마라톤 축제가 열리고 작년 26.2 마일을 완주한 사람이 5만 명이 넘는다고. 거리에 마라톤 참가자들 응원하는 사람들 가득하고 마라톤 완주하는 사람들 함성 소리 가득한 대단한 축제. 1970년 시작한 축제는 첫해 초라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축제로 변했다. 자원봉사자도 아주 많고 마라톤 결승점이 센트럴파크. 수년 전 뉴욕 시 마라톤 축제가 열린 줄도 모르고 아들과 함께 단풍 구경하러 센트럴파크에 가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지 잊히지 않아. 아침 기온 8도. 약간 쌀쌀한 날씨나 가을 햇살 비추고 26마일을 달리면 몸에 열기 가득하니 더울 거 같은 아름다운 가을날.
오늘 서머타임도 해제가 되니 한 시간 더 수면을 취하니 몸이 가볍고 이제 한국보다 13시간 늦는다. 한국은 11월 4일 저녁 9시 18분 뉴욕은 11월 4일 아침 8시 18분. 1주일 동안 서머타임 해제로 몸이 한결 가볍지. 한국에서는 88 올림픽 때 서머타임 실시했는데 해가 무척 긴 여름이면 서머타임이 더 좋은 거 같으나 해가 점점 더 짧아져 가는 가을은 피곤한 느낌이 든다. 탁상 시곗바늘도 1시간 전으로 돌려야 하는 일요일 아침.
생도 거꾸로 돌리면 좋을까. 언제가 가장 좋은 시절이었을까. 20대 청춘이, 아니면 30대, 아니면 40대, 아니면 50대. 잘 모르겠다. 어느 시기든 항상 고민 가득했으니. 20대는 20대 고민을 하고 30대 역시 30대 고민을 하고 세대별로 다른 고민을 하게 된다. 인생은 눈앞에 주어진 문제들을 풀며 눈을 감는지 모르겠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천천히 가는 사람이 더 행복할지.
남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불행을 만든 사람들 소식도 가끔 듣지만 남과 비교하는 인생은 비극의 시작이다. 태어난 환경도 다르고, 각자 욕망도 다르고, 열정도 다르고, 꿈도 다르고 결국 우린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겉으로 보면 비슷비슷하지만 내부로 보면 많이 다르지. 마라톤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달리기를 할 테고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과 축제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달라. 플러싱 지하철 종점역에서 내려 시내버스 정류장에 빨리 도착하려고 빨리 뛰는 것도 심장이 터질 거 같은 고통을 받는다. 그런데 26마일을 달려야 하니 매일 달리기 연습하지 않은 사람은 마라톤 축제가 얼마나 도전일지.
해마다 10월 말 열리는 핼러윈 축제도 마찬가지다. 핼러윈 퍼레이드에 참가하려고 의상과 분장 준비를 할 테고 축제가 끝나면 새벽까지 파티를 하는 사람들. 사실 퍼레이드와 축제 구경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좋은 사진 담는 것은 더 어렵고. 구경꾼이 너무 많아서 축제가 열리기 전 미리 도착해서 기다려야 하니 얼마나 많은 열정과 시간이 필요한지. 이렇듯 열정이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지. 가만히 앉아서 축제 사진 보는 사람과 축제 구경꾼과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 삶은 확연히 구분이 된다.
어제 아침 메모를 하는 동안 가을 햇살은 잠들고 있었는지 하늘은 흐렸지만 메모를 마친 순간 눈부신 햇살이 창가로 비쳤다. 순간 센트럴파크가 떠올랐다. 센트럴파크 옆 호텔 전망 좋은 방에서 비추는 센트럴파크 전망은 얼마나 예쁠지. 메모를 마쳤으니 브런치 준비할 시간인데 식사하고 설거지하고 지하철 타고 맨해튼에 가야 하는데 가을 햇살의 유혹을 받고 아들 방에 가서 말을 했다.
-오늘부터 식사를 사 먹자
-왜? 무슨 일 있어요.
-예쁜 단풍 보는 시기는 1년 불과 1주일도 채 안 되는데 지금 집에서 이렇게 시간 보내고 있긴 너무 아까워.
아들이 엄마가 하는 말을 듣고 빙그레 웃는다. 그냥 하는 말이라고 이해를 한 얼굴 표정. 마음은 달려가고 싶으나 브런치 준비를 했다. 고등어구이, 된장국, 달걀말이와 김치. 오랜만에 먹은 고등어구이도 맛이 좋았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 수돗물도 문제다. 욕실에서 샤워를 하면 설거지를 할 수 없다. 아들이 먼저 샤워를 하고 다음으로 내가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는 동안 아들이 설거지를 하고 서둘러 맨해튼으로 출발했다.
아들은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나의 첫 도착지는 사랑하는 센트럴파크. 가을 향연이 열리는 아름다운 숲 속에서 오래오래 거닐고 싶었다. 호수에서 산책하는 청둥오리 몇 마리도 보고 하얀 백조가 없지만 혼자 상상도 하고. 집에서 왕복 7마일 거리에 있는 황금 연못에 가면 하얀 백조를 볼 수 있을 텐데 점점 게으른 것인지 백조 본지 꽤 오래되어가고 마음속에는 백조가 살지. 황금빛으로 물든 단풍을 보며 베토벤도 떠올랐다. 아름다운 숲 속에서 산책하면서 멋진 곡을 작곡하면 얼마나 좋아하면서. 아름다운 계절이라 방문객이 너무 많지만 난 비교적 조용한 곳을 찾아 거닐었다. 뉴욕 시 마라톤 완주점에는 세계 여러 나라 국기가 펄럭이고 태극기도 보니 반가웠다.
공원을 나와 링컨 센터에 갔다. 어제저녁 8시 헝가리 오페라 상영하는데 혹시 가장 저렴한 표 있는지 묻자 없다고 하니 슬픈 마음으로 돌아서 줄리아드 학교에 갔다. 음식을 먹고 있던 수위가 내가 들어서자 가방 검사를 하면서 짜증스러운 얼굴 표정을 짓는다. 왜 음식 먹고 있는데 온 거야 하는 표정. 가방 안에 든 거라곤 책 한 권과 오븐에 구운 고구마 약간. 가방 검사를 하고 통과시켜주니 안으로 들어가 커피 마시려 카페에 갔는데 커피를 사 먹을 수 없어 슬펐다. 토요일 예비학교 학생들 수업이 있지만 종일 카페를 열지 않고 점심시간과 저녁 식사 시간 동안 문을 열고 어제는 커피 마실 수 없어 소파에 앉아 공연을 기다렸다. 토요일 종일 예비학교 학생들 공연을 볼 수 있고 샌드위치 대신 오븐에 구운 고구마 들고 갔다. 고구마가 맛있는 계절.
오후 4시 폴 리사이틀 홀 프로그램 들고 안에 들어갔는데 내가 좋아하는 천재 소녀 Harmony Zhu 공연. 수년 전 우연히 그 학생 피아노 협연을 보았다. 어제는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쇼팽과 베토벤과 그리고 낯선 작곡가 연주를 하고. 쇼팽 연주를 들으며 파리에서 지내던 쇼팽도 생각했어. 지금 메트에서 들라크루아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데 그 화가와 교류했던 음악가 쇼팽. 쇼팽 음악은 언제 들어도 아름다워. 무대가 막이 내리자 "브라보 브라보 브라보" 환호성이 들렸다. 예비학교 학생이지만 카네기 홀에서 열리는 명성 높은 피아니스트 공연만큼 좋아. 커피는 마실 수 없었지만 Harmony Zhu 공연을 본 것은 행운이었다. 미리 공연 프로그램을 안다면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시하고 찾아갈 테지만 난 예비학교 학생 공연 스케줄은 알 수 없으니 운이 좋았어.
오후 5시 한인 학생 줄리아 김 피아노 연주도 감상했다. 바흐, 베토벤, 라벨, 그리고 리스트. 아, 행복했어. 사랑하는 음악가 피아노 연주 들으면 행복이 밀려오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는 언제 들어도 예쁘고 어제 연주도 황홀했어. 리스트 헝가리 랩소디 연주도 너무 좋고. 두 학생 공연 모두 좋았다. 저녁 6시 예비학교 교수님 바이올린 연주도 열렸고 잠깐 바이올린 공연보다 홀을 떠났다. 예비학교 100주년을 맞아서 매주 토요일 예비학교 교수님 연주가 열리는 줄리아드 학교. 솔직히 두 학생 공연이 교수님 연주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플러싱에서 지하철 타고 맨해튼에 도착 센트럴파크에서 산책하다 줄리아드 학교에 가서 공연 3개를 보니 상당히 피곤했지만 다시 링컨 센터에 갔다. 헝가리 오페라 공연 볼 기회가 항상 오는 것은 아니라서. 그런다고 비행기 타고 헝가리에 가서 오페라 볼 형편도 아니니 다시 박스 오피스에 가서 물었다. 예상보다 몇 불 더 주고 오페라 티켓 한 장 구입했다. 극장 앞에서는 헝가리에서 온 음악가들이 연주를 하고 댄스를 추고 구경꾼이 꽤 많고.
링컨 스퀘어 단테 파크 근처 거리에서 파는 노란 바나나 1불어치 구입해 먹으며 스타벅스에 들려 커피 한 잔 주문해 오페라 보기 전 휴식을 했다. 3시간 동안 열리는 오페라 보려면 에너지 없이 불가능. 컨디션이 좋아야 오페라 감상도 더 즐거워. 커피 마시고 링컨 센터로 가서 헝가리 오페라 Ferenc Erkel: Bánk bán를 보았다.
헝가리와 사랑에 빠졌나. 이틀 연속 헝가리 오페라 보았어. 내 뒤에서 낯선 언어가 들려오니 헝가리어 아닐까 짐작도 하고. 오페라 가수 아리아 들으면 얼마나 좋은지 대학 동창 K도 생각이 났어. 그때 난 목소리가 아름답다는 것을 잘 몰랐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공연에 더 관심이 많은 때. 친구는 노래 잘 부른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는데 의사랑 결혼을 했다. 대학교수로 지낸 의사 남편과 살다 오래전 미국에 교환 교수로 와서 1년 보내고 한국에 돌아갔는데 내가 뉴욕에 간다고 하니 유대인 남자 조심하라고 해서 웃었다. 뉴욕에 오기 전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대학 친구들 만나 식사하며 이야기를 했고 미국에 살던 시절 중고차 구입해 고속도로에서 불이 난 사건도 들려주며 혼자 사니 중고차 사지 말고 새 차 구입해서 지내라고. 그때 대학 친구들이 이문세와 김광석 등 음악 시디를 선물로 주었다. 그리운 친구들 보고 싶구나.
11. 4 일요일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