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에 가을비 뚝뚝 떨어지는 빗소리 들으며 잠을 깼다. 창가로 비춘 가을 정경은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 가을바람에 나무 가지는 흔들리고 내 마음은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어제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로부터 세 명의 딸들이 뉴욕에 여행 온다는 소식을 받았다. 세월이 정말 빠르구나. 어느새 친구 자녀들이 뉴욕에 여행할 정도로 많이 자랐다.
대학 시절 함께 전공 수업을 듣고 자주 카페에서 대학 교정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는 서울 강남에서 교직 생활을 하고 지내며 4명의 자녀들과 남편 뒷바라지에 바쁘다고. 친구는 집안일하고 동시 직장 생활하고 아내로서 엄마로서 역할이 무척 바빠 이제 명예퇴직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고.
자녀 한 명 뒷바라지가 너무 힘든 세상으로 변했다. 4명 가운데 2명을 서울대 특차로 보냈으니 친구도 얼마나 힘들고 두 명의 자녀들도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을지. 막내는 아직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 지금도 입시생 뒷바라지하니 친구의 삶이 얼마나 특별할까. 친구는 교직 생활을 하고 난 오래전 사직서를 제출했으니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친구는 서울에서 난 뉴욕에서. 우리가 이리 다른 길을 걸을 줄 그때는 미처 몰랐지.
대학 시절 친구는 항상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었다. 친구도 나도 음악을 무척 사랑했다. 친구가 한밤중 전화하면 달려가 만나곤 했다. 가끔은 슬픈 이야기도 했고 누가 새로운 연인을 만났다는 소식도 누가 연인과 헤어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때도 대부분 학생들은 공부에 전념했다. 학과성적이 마치 행복의 열쇠라도 된 듯 학점에 목매달고 살더라. 어쩌면 난 이방인인 줄 모르겠다. 남들처럼 학점이 전부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으니. 어려운 전공과목 수업 들으며 함께 그룹 스터디도 많이 하곤 했고 친구도 어떤 그룹에 속해 공부했지만 난 그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았다. 가끔 친구가 "숙제했니?"라 물었다. 혼자 풀기 난해한 토폴로지와 기하학 등. 지금 다시 공부해도 어려울 거 같아.
대학 시절 전공 공부에 전념하지 않아 수학이 어려웠단 생각이 들기도 했고 교사 생활하고 나중 일정 연수를 받을 적 그때 열심히 강의를 듣고 공부를 했지만 역시 토폴로지 수업은 너무 어려웠다. 물론 생은 전공 수업보다 천만 배 이상 더 어렵다. 이해하기 어려운 수많은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난 슬픈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난 클래식 기타 반에서 활동하니 많이 바빴고 친구는 동아리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눈 친구다.
대학 시절 만난 두 자녀 아빠와 결혼식 때 백장미 부케를 들고 찾아온 친구. 우리는 모두 서로 잘 알고 있었다. 어느 해 서울에 올라가 친구네 부부랑 함께 강남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어느 날 서울 친구 집에 두 자녀랑 방문해 우리 집의 슬픈 소식을 이야기하자 깜짝 놀랐다. 그와 헤어지고 멀리 뉴욕으로 간다고 하니 놀라지 않은 친구들이 없었다. 우리 부부는 행복의 대명사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 대학 시절 장학금으로 공부하던 아이 아빠의 외모도 영화배우 같아 부러워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를 떠나 멀리 왔구나.
어느 해 비 오는 날 수업을 땡땡이치고 친구랑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갔다. 1984년 개봉된 <깊고 푸른 밤>. 영화감독은 배창호. 안성기와 장미희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 난 그때 그 영화를 얼마나 이해했을지.
이민 생활도 그렇다. 나도 이민과 유학이 뭔지 모르고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에 왔다. 유학과 이민 생활은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면만 보일 수 있다. 그 영화를 통해 '영주권'이란 단어를 세상에 태어나 처음 듣고 알게 되었지만 이민 생활에서 영주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수많은 세월이 흘러 뉴욕에 와서 살면서 느끼게 되었다.
이민을 가면 최소 영주권이 있어야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살아갈 수 있다. 지금이야 영국 남자, 독일 남자, 미국 남자, 스위스 남자 등과 국제결혼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경우는 쉽게 신분 문제가 해결된다. 또한 젊을 적 이민을 가면 쉽게 적응하지만 40대 50대 이민을 가는 경우는 다른 문화에 적응하기 너무 힘들고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지낸 슬픈 이민자들이 너무 많다. 아무도 아는 이 없는 다른 나라에 가서 무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삶은 고국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다. 매일 힘든 이민 생활하며 지내노라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시간도 없이 그냥 세월이 흘러간다. 완벽한 사람 없듯이 완벽한 세상은 없다.
수북이 쌓인 접시를 그대로 두고 유튜브에서 대학 시절 자주 들은 노래 몇 곡을 들었다. 대학 시절 프랑스 음유 시인이라 불리던 조르주 무스타키 곡도 정말 사랑했다. 그가 뉴욕에 온다면 공연을 보고 싶은데 몇 년 전 저 하늘로 떠났다고. 레너드 코헨 노래도 자주 들었다. 그도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레너드가 뉴욕에서 공부하고 살았던 것도 모르고 뉴욕에 왔다. 요즘 상영 중인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 주인공 그룹 퀸의 노래도 자주 들었다. 아름다운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으며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런데 세월이 흘러 두 자녀가 그 노래를 듣고 세대가 다름에도 함께 좋아하는 것도 놀랍고 그래서 전설적인 가수가 아닌가 싶다. 밥 딜런과 사랑을 했던 존 바에즈도 뉴욕 출신이고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를 대학가 카페에서 들으며 맑고 고운 그녀 목소리에 반했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도 뉴욕 출신. 대학 시절 '사랑에 빠진 여자' 노래가 인기였다.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 시절 영화를 통해 접하던 아이스하키도 어제 생에 처음으로 경기장에서 경기를 보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꿈꾸던 것인가. 수많은 세월이 흘러야 비로소 가능하다. 카네기 홀과 링컨 센터와 줄리아드 학교 등에서 수많은 공연을 보곤 하고 대학 시절 자주 접한 음악가 공연도 많이 보고 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왔는데 대학 시절 책과 음악으로 접하던 많은 것들이 뉴욕과 인연 깊어 놀라고 있다.
대학 시절 꿈을 꾸었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그리워했다.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열정으로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가고 싶었다. 대학시절 답답한 세상에 염증을 느끼며 책과 음악과 함께 했다. 혼자 라이브 음악 감상실에 가서 영상으로 록 공연을 보곤 했다. 주스 한 잔 주문해 앉아서 조용히 음악 듣는 행복. 아무도 몰래 혼자 그런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 가끔 클래식 음악 감상실로 가서 음악을 감상했고 친구랑 가서 이야기 나눌 때도 있었고 혼자 조용히 음악 감상만 했던 날도 있었다.
꿈도 그런 것일까. 씨를 뿌리고 꽃이 필 때까지 오랫동안 말없이 기다리는 것. 매일 사랑으로 씨를 가꿔야 아름다운 꽃이 피는 걸까. 초등학교 1학년 처음으로 본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었지만 먼 훗날 대학 졸업하고 교사 발령을 받은 후 첫 급여를 받아 바이올린을 구입해 레슨을 받았으니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갔는지.
예쁜 빗방울 소리 들으며 창가로 비춘 아름다운 가을 풍경 보며 커피를 마시며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본다.
11.6 화요일
가을비 뿌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