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북카페에서 홈리스 만났지.
토요일 밤도 점점 깊어만 가고 거실에서 엄지 손가락 선풍기는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내일은 6월의 마지막 날 뉴욕에서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려. 얼마나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질까. 예쁜 무지갯빛 풍선 보면 가슴도 무지갯빛이 되는 축제. 멋진 의상을 입고 퍼레이드에 참가한 시민들도 많은데 내일 축제로 인해 밤새네 가슴 설레고 있겠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대선에 출마한다고 발표했는데 내일 퍼레이드에 참가할 텐데 내일 퍼레이드에 가면 뉴욕 시장을 볼 수 있겠다. 과연 누가 새로운 대통령이 될까.
토요일 무료로 사우나도 하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지. 맨해튼 5번가 북 카페에 음악이 흐르고 멋진 코발트 색으로 염색한 뉴요커도 보고 무지갯빛 셔츠를 입은 사람도 보며 커피와 함께 책을 읽다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악취 풍기는 홈리스가 내 테이블 앞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고 참 답답한 순간. 악취만 나지 않아도 참고 견딜 만 한데 악취는 견디기 힘들어. 30대처럼 보이는 구레나룻 수염 기른 지팡이 든 홈리스 눈은 동글동글하고. 잠시 후 그가 테이블을 떠나니 다행이다 싶었는데 떠난 지 2분이 되지 않아 다시 돌아오니 더 힘들기만 했다.
여름철 악취는 얼마나 견디기 힘든가.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 어떡하면 좋은가 물으니 홈리스에게 냄새난다고 말하고 샤워하러 가라고 말하라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침묵을 지키다 그만 서점을 나오고 말았다.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아 5번가에서 그랜드 센트럴 역으로 가서 로컬 6호선을 탔는데 웬걸 사우나를 공짜로 했어. 아, 에어컨이 켜지지 않고 승객들은 너무너무 많고 숨쉬기도 힘든 순간. 참고 견디어야지.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른 거 같아 불편한데 지하철은 달리고 난 소호 스프링 스트리트에 내려걸었다.
축제에 갈 힘도 없고, 뮤지엄에 방문할 에너지도 없고, 오페라 보러 갈 에너지도 없고, 공연 볼 에너지도 없으니 소호에 구경하러 갔다. 멋진 옷을 입고 쇼핑백을 들고 걷는 사람들도 무척 많아 복잡하고 더구나 세일 기간이라 사람들이 더 많은 듯 짐작이 되었다. 지갑 걱정 안 하면 마음에 든 물건 쇼핑도 할 테지만 무거운 현실이 날 꼭 붙잡으니 지금은 쇼핑을 하지 않을 때.
걷다 걷다 소호에서 몇몇 갤러리를 방문해 전시회를 봤어. 파키스탄 출신 작가 작품 보며 내가 사랑하는 천경자 작품이 떠올랐지.
또 스웨덴 아티스트 Johan Wahlstrom 작품도 인상적이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갤러리 전시회 보았지. 갤러리 문을 열고 나오니 하늘에서 비가 뚝뚝 떨어져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소호 지하철역에서 아들에게 뭐 해?라고 물으니 "사우나 중이에요."라고. 아들 혼자 집에서 지내면 에어컨도 안 켜고 지내니 더운 날씨 견디기 힘들어 사우나라고 표현했나 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본인 모자 디자이너는 갤러리에서 담은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녀도 음악과 그림을 좋아하니 자주 갤러리에 간 듯 짐작이 된다.
아, 홈리스만 아니었다면 더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을 텐데. 누가 알겠니? 홈리스 되고 싶어 된 사람은 없겠지. 브라이언트 파크와 뉴욕 공립 도서관 사이에 있는 드로잉 하는 여자 홈리스는 남자 친구가 생겼나. 오늘 그녀는 안 보이고 남자만 보이더라. 홈리스라고 남자 친구 없으란 법은 없겠지.
무더운 여름날 날마다 얼음 몇 조각 넣어서 생수를 마시고 있다. 습도까지 높아서 더 견디기 힘들어 오븐 켤 생각은 할 수도 없어. 그래서 무얼 먹을지 자꾸 고민하게 만든다. 그런다고 날마다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할 수도 없고. 저녁은 오랜만에 카레라이스 끓여서 먹으며 대학 시절 친구도 생각났다.
우리가 대학 시절 돈가스, 카레라이스, 하이라이스는 고급 요리에 속했다. 대학가 근처 식당에서 라면이 300원, 달걀 하나 넣은 라면은 350원 했지. 돈가스와 카레라이스와 하이라이스는 1500원 정도. 그 친구랑 식사할 때 1500원짜리 메뉴를 골랐어. 요즘 대학생들에게 과거 이야기하면 웃겠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명품 좋아하는 세상으로 변했어. 명품 좋아하는데 식사비가 1500원이라면 웃겠지.
부잣집 출신 친구 아버지는 은행장이었다. 가끔씩 그 친구 만나 식사하면 친구가 먼저 식사비 내니 미안했다. 난 남에게 신세 지는 거 싫어하는데도 친구는 너무 빨리 계산하고 떠나버렸다. 부잣집 친구는 대학 시절 만난 가난한 청년과 결혼을 했는데 결혼과 연애는 너무나 다르더라고 말하더라. 가난한 집안 출신 친구 남편은 대학 시절 운동권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결혼하니 모든 것을 아내에게 의지하려니 친구가 너무 힘들다고 했지.
한국에서 은행장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별로 생각한 적은 없는데 뉴욕에 오니 은행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J.P Morgan은 미국이 전쟁할 때 나라에 돈을 빌려줄 정도로 많았다고 하니 돈이 얼마나 많았을까. 돈 버는 비법을 배우러 하늘나라로 여행 가서 J.P Morgan에게 찾아가 물어볼까.
어제는 아들이 준 쿠폰으로 마지막 아이스 라테 커피를 마셨는데 마지막이라니 섭섭하다. 무더운 여름날 아이스 라테 커피 맛이 좋아.
달걀도 떨어지고 냉장고는 텅텅 비어가니 다시 장 보러 가야 하는데 무더운 여름날이고 차도 없고 걸어서 가야 하는데 겁이 난다. 아무래도 BJ's에 가야 저렴하고 싱싱한 육류와 달걀 등을 구입할 텐데 우리 집 근처에 새로운 마트가 생겨서 자주 안 가게 된다.
자정이 지난 한밤중 누가 폭죽놀이를 한다. 어제는 개똥벌레가 내가 집에 돌아오니 환영 인사를 하더라. 날마다 밤이 되면 개똥벌레들이 파티를 벌이는 플러싱.
토요일 오전 호수에서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와 글쓰기 하고 식사 준비하고 맨해튼에 가고 저녁 무렵 돌아와 복잡한 일 하나 처리하고 신문 읽으니 한 밤중이 되어가고. 이제 1년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으니 얼마나 세월이 빠른지 몰라.
여기저기서 기부금 내라고 연락이 온다. 맨해튼 단체에 기부금 낼 정도의 형편이 되면 좋겠어. 정말 그러고 싶은데 삶이 내 뜻대로 되니. 그래서 자주 웃는다. 웃자, 웃자, 웃자! 행복을 위해서 웃자꾸나.
6. 30 일요일 새벽
글쓰기는 11시 반이 지나 시작 글쓰기 마치니 자정이 막 지난 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