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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오후

by 김지수

8월 14일 수요일 종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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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의 합창단 소리를 들으며 수박을 먹었다. 수박 맛이 백배 더 좋았다. 매미 울음 소리가 왜 그리 좋은지 몰라. 매미 합창단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온다. 더위가 물러간 줄 알았는데 아직은 여름 기운이 느껴진다. 여름에 들려오는 매미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을 때 가을이 올까. 수요일 아침 아들과 나는 공원에서 2마일을 뛰었다. 공원 울타리에 핀 나팔꽃과 담장이 넝쿨을 보고 포플러 나무와 파란 하늘도 보았다. 공원 저편에서 사람들은 테니스를 치고 있었다.


하늘은 흐리고 일기 예보에 비가 내린다고 하니 자주자주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맨해튼에 외출할지 말지 망설이다 비가 온다고 하니 하얀 창가로 비치는 초록 나무만 보고 종일 집에서 지냈다. 슬프게 오후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면 배터리 댄스 페스티벌을 보러 갈 텐데 아쉽기만 하다. 축제는 매일매일 열리지 않으니 더 귀하다. 네 번째 댄스 공연은 어떠했을까.


어릴 적 미국에 이민 와서 사는 쉐릴 할머니는 휴대폰과 컴퓨터 없이 지내고 줄리아드 학교와 맨해튼 음대와 뉴욕대에 자주 공연을 보러 가지만 배터리 댄스 축제는 잘 모른 듯. 배터리 파크에서 한 번도 할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댄스를 사랑하는 쉐릴 할머니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다. 딱 한 번 할머니 집에 초대받아 갔는데 주소도 잘 몰라. 할머니가 댄스 공연을 보면 아주 좋아할 텐데 무얼 하고 계실까.


메트 뮤지엄에서는 자주 레터를 보내온다. 메트에 적어도 1주일에 한번 방문하려던 계획은 계획대로 머물고 말았고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가득하다. 한 번도 여행 간 적도 없는 모로코에서는 낯선 전화가 걸려오고 헬스케어, 학비 융자, 자동차 보험 등 나랑 상관없는 이상한 광고 전화가 수 차례 걸려왔다.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았을까.


신용카드 빌도 갚았다. 지난달 사용한 내역서를 읽어보았다. 지하철 교통 카드값과 음식값과 북 카페 커피 값과 뉴욕 레스토랑 위크 식사비와 아이폰 카메라 수선료 등. 지난 한 달 나의 행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신용 카드 빌. 현금을 사용하지 않으니 신용 카드 빌이 내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이폰 카메라 수선료를 보니 지난번 애플스토어에서 만난 흑인이 생각났다. 내가 일부러 한 행동이 아닌데 날 고의로 골탕을 먹인 젊은 흑인 남자. 며칠 뒤 애플 스토어에서 고객 서비스가 어떤지 물어서 그날 오후 내가 만난 흑인이 누구죠?라고 물으려다 묻지 않았다. 흑인이라고 내가 일부러 차별한 것도 아닌데 혹시 그는 차별받았다고 생각했을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 사람들 마음은 각각 달라. 서로 존중하고 좋은 관계로 유지하면 좋을 텐데 사람들 마음이 다 달라서 좋은 인간관계 유지도 참 어렵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관계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수요일 흐린 하늘 덕분에 한가한 오후를 보냈다. 평소 1만 내지 2만보를 걷는데 집에서 종일 지냈더니 아이폰에 4868보 걸었다고 나왔다. 이번 주 토요일까지 배터리 댄스 페스티벌이 열리고 다음 주는 유에스 오픈 테니스 예선전이 열리고 8월도 정말 빨리 흘러간다. 세월은 왜 이리 빨리 흘러가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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