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4일 화요일 정오
어제 그림처럼 예쁜 겨울 호수에서 아들과 산책하고 글쓰기를 하고 고등어구이와 된장국으로 점심을 먹고 늦은 오후 맨해튼에 갔다.
콜럼버스 서클 지하철 역 가는 길 우연히 아트 스튜던츠 리그 앞을 지나다 2층 갤러리 전시회를 보고자 방문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백발의 노인들. 어깨에 무거운 가방과 지팡이 메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면 감개무량하다. 미술 강의를 하거나 아니면 강의를 받는 분일 것이다. 2층 갤러리에 방문하니 모두 와인과 과일 등을 먹고 있으니까 나도 빈 접시에 빨간색 딸기와 멜론과 블루베리와 초코칩 쿠키를 담아 먹으며 벽에 걸린 학생들 작품을 바라보았다.
배움에 대해 끝없는 열정을 갖는 노인들을 보면 언제나 놀랍다. 시력도 안 좋을 테고 육체도 분명 아주 젊을 적과 다를 텐데 대단해. 그들 앞에 서면 난 아주 작은 노란 병아리야. 앞으로 건강 관리 잘해서 멋진 노후를 보내고 싶다. 미술 학교에서 그림을 배우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유명한 화가도 많이 배출한 미술 학교는 카네기 홀과 센트럴파크와 인접하고 모마와 링컨 센터와 콜럼버스 서클도 아주 가깝다. 지하철만 타면 메트 뮤지엄과 구겐하임 미술관도 아주 가까우니 교통이 아주 편리한 곳에 위치한다.
수년 전 카네기 홀에서 만난 파리 출신 할아버지도 아주 오랫동안 이 곳에서 미술 수업을 받는다고 내게도 그림을 그리라고 권했다. 그날 우연히 갤러리에서 만나 함께 카페에서 이야기하다 할아버지 친구분 할머니를 소개했다. 아주 돈 많은 뉴욕 할머니인데 하루도 빠짐없이 일주일 내내 미술 학교에 온다고 하니 정열이 얼마나 대단한지. 사랑한다는 게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편리함을 부인할 수 없지만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다. 행복은 우리들 곁에 아주 가까이 있다.
새해 처음으로 딸기와 블루베리를 먹고 콜럼버스 서클 지하철역에 가서 1호선을 타고 맨해튼 음대에 가는 중 코너에 앉은 백발 할아버지가 아주 두툼한 책을 읽고 계셔 다시 놀랐다. 적어도 600페이지 이상 되게 보이는 책. 아마도 책을 좋아하거나 학자이거나 은퇴한 학자일 거 같다고 짐작했다. 젊은이들은 스마트 폰으로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사람이 더 많은 듯 짐작하고 대체로 나이 든 사람들이 책 읽기를 선호하는 듯.
콜럼비아 대학 지하철역(116가)에 내려 북쪽으로 몇 블록 걸었다. 저녁 7시 반 더블베이스 특별 공연을 보기 위해서 찾아가는 중.
사랑하는 그린필드 홀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기 위해 꽤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악기 사이즈가 아주 커서 들고 다니기 상당히 불편할 거 같고 더블베이스 연주가 쉽지 않다는 것을 수년 전 맨해튼 음대에서 마스터 클래스 보고 조금 느꼈다. 내가 레슨 받아본 적이 없는 악기라 자세히 모르지만. 오케스트라 뒤편에서 서서 연주하는 더블 베이스 음악가들. 월요일 밤 공연은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한 연주자였다. 처음으로 듣는 더블베이스 곡. 무료니 더 좋았다. 한국에서 커티스 음악원 입학과 졸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몰랐는데 뉴욕에 오니 커티스 음악원 출신 연주가 좋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 두 시 반 런던에서 온 트롬본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는데 아쉽게 볼 수 없었다. 플러싱에 산다고 변명을 해본다. 오후 2시 반 열리는 마스터 클래스 보려면 집에서 일찍 출발해야 하는 나의 입장. 트롬본 악기 소리도 참 예뻐서 마스터 클래스를 청강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점점 난 게을러지고 있다.
Faculty Recital: Jeremy McCoy, Double Bass
Monday, January 13, 2020
7:30 PM - 9:15 PM
Greenfield Hall
OP Trombone Master Class with Matthew Gee,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Master Class
Monday, January 13, 2020
2:30 PM - 4:30 PM
Greenfield Hall
화요일 정오 운 좋게 메트 오페라 러시 티켓을 구입했다. 몇 달 만에 오페라 보는 것인지. 마음 같아선 매일 보고 싶은데 현실이 녹록지 않다. 온라인으로 구입하는 오페라 러시 티켓. 아주 오래전 메트에 가서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곤 하다 유럽에서 온 여행객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온라인으로 바뀌니 더 편하고 좋다.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내 앞에서 러시 티켓이 매진되었다고 할 때 서운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살 수 없을 것을 알았다면 메트에 가지도 않았을 텐데. 더구나 맨해튼이 아닌 플러싱에 사니 얼마나 힘든데.
메트 오페라 역시 라이브 공연이라 그날그날 성악가 컨디션에 따라 다르지만 그래도 뉴욕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 예술이 아닐까. 수 백 불 티켓이라면 서민에게는 너무 비싸지만 25불 러시 티켓은 결코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기준에서.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도 달라 돈에 대한 개념이 다르지만. 아주 오래전 만난 정형외과 부인은 골프를 치러 가는데 백화점에서 럭셔리 브랜드 골프 의상을 구입하지만 책값은 5천 원도 너무 비싸다고 하니 웃었다. 피부도 곱고 영화배우처럼 멋진 그녀를 시기 질투하는 사람이 많아 불편하다고 덧붙여 다시 웃었다. 그녀는 지금 무얼 하고 지낼까. 하지만 아들 두 명에 대한 교육열은 대단했다. 교육열 없는 한국 사람 드물겠지. 자녀 교육 위해 얼마나 열정적인가.
화요일 아침에도 아들과 겨울 호수에 산책을 다녀왔다. 마음에 평화 가득 선물하는 호수는 언제나 좋아. 다시 하얀 냉장고는 텅텅 비어 가고 장도 봐야 하고 먹고사는 것도 결코 간단하지 않아. 맨해튼은 외식 문화가 보편화되어 있는 듯. 장보는 비용과 시간과 요리 만들고 설거지하는 시간 고려하면 외식이 더 값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