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 내리는 뉴욕 센트럴파크

by 김지수

2020년 1월 18일 금요일


아들의 소원이 이뤄졌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리면 좋겠다고 했는데 며칠 춥더니 드디어 하얀 눈이 펑펑 휘날렸다. 하얀 눈 내리면 강아지처럼 좋아하는 나. 날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내 마음도 설렌다.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는 동안 혹시 악취 나는 홈리스 만날까 약간 겁을 먹었지만 다행히 만나지 않았다. 금요일 오후 플러싱에서 7호선을 타고 달리는데 창밖에 내리는 눈 오는 풍경을 보니 마치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늘 보는 풍경인데 눈 내리면 분위기가 바뀌는 것도 이상해. 옷이 날개란 표현처럼 자연도 눈 오면 시처럼 아름다워. 지하철 안에서도 만화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취향대로 시간을 보내는데 나와 어린아이 두 명만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퀸즈보로 플라자 지하철역에서 맨해튼에 가는 지하철에 환승 5번가 플라자 호텔 근처에서 내려 센트럴파크를 향해 걷는데 내게 다가선 남자. "마차를 타실래요?" 하니 웃었다. 마차에 공짜로 탑승하면 언제든 타겠는데 너무 비싼 마차를 여행객도 아닌데 어찌 타겠어?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뉴욕에 사는 로컬이라고 말했다. 마차 탈 돈이면 난 오페라 두 편 감상하겠어. 매일 맨해튼에 가서 문화 탐구를 하다 보니 나도 이젠 제법 뉴욕 문화에 대해서 아는데 날 여행객 취급하면 웃음이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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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740.jpg?type=w966 센트럴파크 하얀 눈이 펑펑 내릴 때





동화 같은 하얀 마차도 보고 비둘기 몇 마리도 보고 플라자 호텔 맞은편 공원 입구로 들어가 호수를 바라보는데 기러기떼와 청둥오리 떼는 모두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안 보였다. 대신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는데 마치 영화 같았어. 젊은 아가씨는 한 손에 장미꽃 한 송이 들고 있으니까 시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연인이 사랑을 고백했을까.





1년 내내 방문객이 많은 센트럴파크. 하얀 눈 내리니 사진 찍는 사람들도 얼굴에 미소를 짓더라. 아주 오래전 전 세계 사람들을 울렸던 영화 <러브 스토리>도 센트럴파크 울먼 링크에서 촬영했다고.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 제니와 명문가 상속자 하버드생과의 슬픈 사랑 이야기. 대학 시절은 이민이 뭔지 몰랐지. 뉴욕에 와서 살다 보니 그 영화가 새롭게 보였다. 이민자의 삶은 과거나 현재나 어려운 점이 많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게 어찌 쉬워.


센트럴파크에 하얀 눈 펑펑 내리니 수년 전 카네기 홀에서 안네 소피 무터 공연 본 날 추억이 떠오른다. 그날도 눈이 펑펑 내려 센트럴파크로 달려가 사진을 촬영했는데 너무 추워 아이폰이 작동을 멈춰 버려 어쩔 수 없이 공원을 나와 카네기 홀 옆 스타벅스 카페에 가서 휴식을 했다. 그날 안네 소피 무터 공연은 죽여주도록 좋아 역시 천재와 보통 사람의 차이를 느꼈다. 난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도 힘든데 추운 날 아주 예쁜 드레스를 입고 카네기 홀 무대에서 연주했던 안네 소피 무터. 올 1월 말에도 다시 카네기 홀에서 연주를 할 예정이다. 카네기 홀에서 그녀 연주회가 열리면 늘 찾아가곤 하는데 올해도 내게 기회가 올까. 그녀 음악팬들은 벌써 가슴 설레고 있겠다. 반대로 그녀는 매일 죽음 같은 연습을 하고 있을 테고. 무대에서 연주하는 프로 음악가는 얼마나 힘들까. 가만히 앉아서 공연 감상하는 것도 그냥 쉽지는 않더라. 어제 줄리아드 학교에서 3개의 공연을 보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들었는지 몰라. 마치 수험생 같았다. 그래서 토요일 줄리아드 학교에서 예비학교 학생들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데 가지 않았다. 맨해튼에만 산다면 그래도 더 나을 텐데 플러싱에 사니 맨해튼과 달라 상당한 에너지가 든다.




지하철에서는 거리 음악가가 에드 시런의 노래를 불러 좋았다. 뉴욕에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평범한 옷을 입었지만 노래는 수준급. 뉴욕타임스를 읽던 중년 남자가 거리 악사에게 돈을 주니 얼굴에 장밋빛 미소를 짓더라. 아주 어린 딸을 안고 구걸을 하는 젊은 엄마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언제 모두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올까.


아주 오래전 소형차를 운전할 때는 하얀 눈이 내리면 제설 작업하느라 몹시 힘들었는데 이제 차가 없으니 너무 편하고 좋아. 1미터 이상 하얀 눈이 쌓이면 제설 작업하느라 죽는다. 아주 큰 삽으로 아들과 함께 눈 치우는데 허리가 아프다고 말하는 아들. 눈 폭풍이 오면 무섭기만 하는 뉴욕. 연구소에서 일할 때 눈폭풍이 와서 운전하고 롱아일랜드 집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얼마나 무섭던지. 플러싱 공용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운전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면서 파리 바케트에서 창밖을 바라보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뉴욕이라 꽁꽁 언 도로를 달렸다. 평생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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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3773.jpg?type=w966 소호 포토 갤러리


오랜만에 트라이베카 지역에 있는 소호 포토갤러리에 다녀왔다.


아, 슬프게도 차이나타운에서 싸게 구입한 아보카도가 썩었더라. 싼 게 비지떡. 괜히 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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