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9일
4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특별한 2월 29일. 날씨가 어찌나 추운지 눈물이 흐를 뻔했다. 바람도 너무너무 거세고 내 몸이 우주로 날아갈 듯한데도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첼시 갤러리 구경을 하러 갔다. 주말 7호선은 정상 운행을 안 함에도.
장밋빛 인생이 펼쳐지려나. 온통 장미향기 가득해 기분 좋은 날. 평생 가시밭길을 걸으니까 이제 장밋빛 인생이 펼쳐지면 좋겠다. 피카소처럼. 그도 물감을 살 돈이 없어서 파란색 물감이 가장 싸니까 파란색 물감을 사서 그림을 그렸던 시절이 있었지. 블루 시대! 스페인에서 프랑스 파리로 갔으니 무명 시절 고생 많이 했겠지. 누가 피카소가 위대한 화가로 역사에 남을 걸 알았을까.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습작도 많이 했겠지. 노력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리라!
눈물로 눈물로 눈물로 걷다 보니 뉴욕에 도착해 살고 있다. 정말 장밋빛 인생아 펼쳐져라. 마법의 도깨비방망이를 구해서 뚝딱 주문을 외워야겠다. 가난하고 슬프고 아픈 사람들 모두 행복하게 살라고 마법을 외워야지. 백만 송이 장미꽃 향기 맡으니 아주 오래전 서부에 여행 가서 안개 가득한 날 버스 안에서 한인 가이드가 들려주던 심수봉의 < 백만 송이 장미> 노래도 떠올랐다. 미국 서부 여행 가서 얼마나 고생했던지 다시는 여행사 버스로 여행 안 해야지. 아.... 심수봉 노래가 내 취향이 아니었는데 세월이 흘러가니 그녀 노래가 다르게 다가온다. 애절한 느낌이 가슴을 울린다.
7호선 종점역 허스든 야드에 내려 하이 라인을 걷다 계단을 통해 거리를 내려가 갤러리를 찾는데 하얀 눈이 흩날렸다. 영화처럼 예쁘게 흩날지는 않았어. 하얀 눈이 내릴 정도로 추웠다. 그래도 예년에 비해 하얀 눈이 펑펑 자주 내리지는 않았다. 하얀 눈이 내리면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 노래를 자주 듣곤 했는데. 핫 커피 한 잔 마시며 좋아하는 노래 듣는 행복. 얼마나 행복해. 하얀 눈 내리는 풍경 보며 음악 들으면 행복이 밀려오지.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따뜻한 공간. 뉴욕이 그렇다. 극과 극으로 나뉜다. 아무리 추워도 난방이 되면 따뜻하고 좋아. 따뜻한 공간에 들어가 추위에 꽁꽁 언 몸을 녹이며 벽에 걸린 작품을 구경했다. 춥지만 힘을 내어 갤러리 문을 열고 구경하다 뉴욕의 아트 딜러 폴라 쿠퍼 할머니도 보았다. 그녀를 폴라 쿠퍼 갤러리에서 본 게 두 번째인가. 소호에 가로등도 없고 레스토랑과 카페도 없던 암흑 같던 시절 그녀가 소호에 갤러리를 오픈했다. 점점 소호가 생기가 띠자 렌트비가 하늘처럼 올라가니 첼시로 옮겼다. 책에서만 보던 그녀를 실제 본 느낌을 잊을 수 없을 거야. 언젠가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춥고 추운 겨울날 갤러리에서 일하는 그녀의 나이는 74세. 얼마나 놀라워. 돈도 정말 많이 벌었을 텐데 그녀 자신의 갤러리에서 토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으니까 놀랍다.
전에 폴라 쿠퍼 갤러리 50주년 특별전을 보러 가서 전시회 카탈로그를 넘기니까 아주 오래전 첼리스트 린 하렐이 그녀의 갤러리에서 연주를 했다고 하니 내 눈이 호수처럼 크게 변했다. 한국에서 음반 가게에서 그 첼리스트 음반을 구입해 첼로 음악을 들었다. 뉴욕에 와서 대학 시절 좋아하던 것을 우연히 발견하면 놀란다. 난 뉴욕이 뭔지 관심조차 없었고 뉴욕을 전혀 모르고 왔으니까.
2019년 10월 3일 카네기 홀 갈라 공연 때 그의 연주를 들을 수도 있었는데 평소와 달리 갈라 티켓은 비싸 눈을 감았어. 뉴욕에서 눈을 감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야. 세상 귀족들 세상 부자들 어찌 따라가. 내 형편에 맞게 살아야지 행복하지. 난 평생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산다. 어쩌겠어. 신이 준 내 운명을 사랑해야지.
추운 겨울날 첼시 갤러리에 휠체어를 타고 온 할아버지도 보았다. 참 특별한 뉴욕 문화. 토요일 오후 휠체어 타고 그림 구경하는 노인들 보면 얼마나 놀라워. 모델 같은 몸매를 가진 젊은이는 애완견 두 마리를 데리고 그림 구경하러 오니 얼마나 부자일까. 갤러리에서 꽃 향기 맡으며 그림 구경하다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미드 타운에 가는 지하철은 주말 운행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바로 줄리아드 학교에 갔다. 토요일 오후 종일 공연을 볼 수 있는 줄리아드 학교. 가끔은 공연이 열리지 않은 날도 있으니 조심. 콜럼버스 서클에 내려 로컬 1호선에 환승해 링컨 센터 지하철역에 내려 줄리아드 학교로 달려갔다.
오후 4시 피아노 공연이 참 좋았는데 지각하고 말았다. 난 브람스 곡을 조금 들었다. 예비학교 학생인데 연주가 좋았다. 오후 5시도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고 저녁 7시 반 예비학교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보았다. 음악을 사랑하니까 음악 공연을 자주 보러 간다. 줄리아드 학교에 가면 자주 만나는 음악팬들이 있다. 줄리아드 학교는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의 놀이터. 세상에서 가장 멋진 놀이터에 속한다. 천재들의 공연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으니까. 오케스트라 공연 보기 전 약간의 시간이 남아 학교 카페에 갔는데 난 먹을 복이 없는지 카페가 문을 닫아서 할 수 없이 추운데 학교 밖에 나가서 커피를 마시고 아보카도 한 개 사서 가방에 담고 학교로 돌아갔다.
2월의 마지막 날 뉴요커에게는 특별한 날이었다. 평소 비닐봉지를 사용했는데 뉴욕 시장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하니 아들과 함께 한인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어차피 장을 보러 가야 하니까 갔는데 한인 마트 주차장이 전쟁터. 마트 안도 무척 복잡해 정신이 없었다. 앞으로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니까 마음이 복잡해진다. 쓰레기봉투 비용도 더 들 테고 이래저래 지출만 늘어난다. 뉴욕에도 봄은 오고 있나. 한인 마트에서 노란색 수선화 꽃을 보고 반가웠다. 이제 곳곳에 황금빛 물결이 춤추겠구나. 봄아 봄아 행복한 봄소식을 가지고 달려오렴! 애타게 널 기다리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