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8일 금요일
카네기 홀에서 저녁 8시 유자 왕 피아노 공연이 열린 날. 아들은 피아노 리사이틀을 안 본다고 하니 혼자 카네기 홀에 갔다. 카네기 홀에서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음악가들 공연이 열리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도 크다.
February 28, 2020 — 8 PM
Stern Auditorium / Perelman Stage
뉴욕 시립대학 CUNY에서 작곡 강의를 하는 분을 만나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탈리아 시슬리 출신인데 할아버지대에 미국에 이민을 오셨으니 이민 3세가 되겠다. 할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는 워킹 클래스였다고. 작곡가 부인은 소프라노이지만 음악가 부부가 뉴욕에서 자녀 출산해 교육하는 것이 무리라서 자녀를 출산하지 않은 부부.
가난한 워킹 클래스 이민자 3세가 교수가 된 경우다. 이민 1세 삶은 어느 민족이든 어렵기만 하다. 뉴욕 맨해튼에서 만나는 이민자들 이야기를 들으면 비단 한인 이민자들만 어려운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이 이민자 삶도 하루아침에 안정되지도 않고 세월이 걸린다. 신의 직장에서 일하는 특별한 재주 많은 사람은 예외가 되겠다. 이민 1세라도 구글 등 신의 직장에서 일하는 귀족도 있으니까.
참 어려운 집안에서 음악을 했다고 어릴 적 피아노 스케일 연습을 안 하면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하고 굶으니까 연습을 했다고 하니 웃었다. 오래전 일본인들이 자녀 음악 교육에 열정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열심히 했지만 항상 결과가 좋을 수만은 없으니까 이제 사람들 마음이 변했다고 덧붙였다.
그분이 줄리아드 예비학교에서 공부할 적에는 유럽인 출신이 80% 아시아인 출신이 20%, 지금은 상황이 반대로 변했다고. 특히 요즘은 중국계 학생들이 참 많다. 얼마 전 링컨 센터에서 르네 플레밍이 출연하는 공연을 봤는데 마이크를 사용하니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말씀하시고 유자 왕과 안나 네트렙코를 무척 사랑하니 카네기 홀에 오셨다.
작곡가 출신이니까 언제 작곡을 하냐고 하니 부인(소프라노 가수)이 잠들 때 조용한 시간에 작곡을 한다고. 요즘 젊은 작곡가들이 작곡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이용해 작곡을 하니 슬프다고. 갈수록 기교와 음악 해석이 뛰어난 음악가들은 많은데 거꾸로 뛰어난 작곡가가 없다고 하셨다. 오페라 <룰루>를 무척 사랑한다고 하니 놀랐다. 아들과 내가 오래전 메트에서 그 오페라를 감상했지만 기교가 무척 어려운지 성악가가 소화하지도 못하니 더욱 형편없어서 슬픈 기억이 남아 있는데 작곡가로서 알란 베르크 음악이 뛰어나 참 좋다고 하니 역시 전문가는 다름을 느꼈다.
메트에서 다음 시즌 오페라 프로그램도 집으로 보내왔지만 난 아직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음 시즌 오페라 공연 스케줄을 알고 있고 나부코 오페라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고등학교 시절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곡을 자주 들었는데 알고 보니 오페라에 흐르는 곡이었다. 한국에서는 오페라 볼 기회조차 없어서 잘 몰랐다.
또 오랜만에 도서관에서 일하는 제프도 만났다. 작년 가을부터 그를 만나지 못해 무슨 일인가 궁금했는데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했다. 중국인 시니어 벤자민을 만난 지 꽤 오래되었다고 하니 그분도 그렇다고 하셨다.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 제프도 카네기 홀에 자주 오신다. 음악 광팬이라 음악에 대해 조예도 깊고 과거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본 것을 줄줄 외울 정도다. 다들 기억력이 왜 그리 좋은지 놀랍다. 최근 베토벤 교향곡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과 난 서로 다른 교향곡을 감상했지만 오케스트라 연주 템포가 빨랐다는 것에 동의를 했다. 아들이 무척 사랑하는 베토벤 교향곡 7번 연주를 감상했다고. 아들이 맨해튼 음악 예비학교 다닐 때 연주했던 곡이라 더 정겹기만 하다고.
중국 상하이 출신 벤자민 부부는 카네기 홀에 자주 공연을 보러 오시는데 작년 가을부터 만나지 못했다. 상하이에서 영문과 교수로 지내다 뉴욕에 와서 특수학교 교사를 하다 정년퇴직을 한 벤자민. 부부 모두 음악을 사랑하는데 가끔 부인은 오페라 보러 가고 벤자민은 카네기 홀에 오니 아주 재밌는 부부다. 중국계 출신 피아니스트 유자 왕과 함께 다정스러운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 내게 보여줘 특별한 사이냐고 물으니까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힘든 이민 생활하시며 딸 교육했는데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따님은 영국에서 경제학 교수로 지내고 작년인가 따님 초대로 영국 여행을 다녀오셨다.
저녁 8시가 지나 카네기 홀 무대에 오른 피아니스트 유자 왕. 패션 감각이 뛰어나다고 소문나 음악팬들은 그녀가 무슨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를지 궁금하다고. 팬들의 기대대로 멋진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라 피아노 연주를 하기 시작했는데 평소와 달리 유자 왕이 프로그램 순서대로 연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네기 홀에서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쇼팽, 바흐, 브람스 등의 연주를 들으며 행복했다. 요즘 피아니스트 피아노 음색이 특별하다. 하루아침에 그런 음색이 나오지는 않을 듯.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할지 상상으로 부족하겠지.
금요일 5번가 성당에 가서 촛불을 켜고 기도도 하고 미드타운 갤러리 순례도 하고 록펠러 센터 크리스티 경매장에 가서 전시회를 보았다. 너무너무 추워 온몸이 꽁꽁 얼어버릴 거 같은데 오랜만에 만나 듣는 지인들 이야기가 좋았고 유자 왕 피아노 연주도 좋았고 갤러리에서 그림 감상하는 즐거움도 컸다.
뉴욕 맨해튼은 매일매일 새로운 세상. 눈과 귀가 즐거운 곳이다. 멋진 작품 보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귀가 즐겁다. 보면 볼수록 더 좋고 들으면 들을수록 더 즐거운 예술의 세계가 무한하다. 뉴욕에서 태어나지 않고 늦게 뉴욕에 오니 지각생이다. 매일매일 보고 듣고 배우고 있다. 즐거운 생을 위해서 매일 배우고 산다. 밤늦게 집에 돌아오니까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해 갔다.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맨해튼은 식사비가 너무 비싸니까.
*밀린 일기를 쓰려니까 기억이 사라져 간단히 기록한다. 매일 맨해튼에 가서 밤늦게 돌아오니 기록할 시간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