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7일 토요일
주말 7호선이 정상 운행을 안 하니 시간도 더 많이 소요하고 피곤하니까 어디로 갈지 약간 망설였다. 아들은 오랜만에 친구랑 함께 롱아일랜드 시티 실내 클라이밍 하러 간다고 하니 함께 출발했다. 아들 친구는 코넬대를 졸업하고 맨해튼에서 일하는데 스포츠 이용권(1년 회원권 1500불)을 갖고 있다. 갈수록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니 회원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우리 형편에 하늘 같아 멀리서 바라보기도 힘들다.
오래전 롱아일랜드 제리코에 살 때 친구의 조대로 방문하니 중국인 친구 아버지가 음식을 만들어 줬는데 아들은 먹기 힘들었다고. 아마도 강한 향신료 때문이 아닐까 짐작을 한다. 아들 친구가 온다고 하니 특별히 음식을 마련해 주셨는데 조금 난처했다고 말했다. 아들 친구는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경우다. 부모님은 아직도 롱아일랜드에 살고 아들 친구는 뉴욕시에 산다. 롱아일랜드 제리코에서 맨해튼까지 기차 비용도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까 아들 친구는 뉴욕시에 살고 있다.
롱아일랜드 시티는 세월 따라 변하고 있다. 맨해튼과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인데 과거는 허름한 지역이었는데 지금은 하늘 높은 빌딩이 솟아나는 지역. 오래전 아마존이 들어오려는데 주민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다. 안 그래도 뉴욕 렌트비가 하늘 높이 치솟는데 아마존이 들어왔으면 지하철도 더 복잡하고 렌트비도 더 비싸질 테고.
플러싱 메인 스트리트 지하철역 부근에서 무료 셔틀을 타고 111가에 도착 7호선 지하철을 타고 달리다 74가에 내려 맨해튼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가는 F에 환승. 그 지하철역은 꽤 많은 계단을 걷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려고 갔는데 하필 운행을 하지 않아서 계속 걷다 지하철을 타고 로어 이스트 사이드 East Broadway 지하철역에 내렸다.
얼마 전 친구가 아트 페어(Art On Paper) VIP 초대권을 보내주었다. 목요일 초대된 사람들을 위해 오픈한다고 하니 방문할까 하다 집에서 프린트하려는데 a4 용지에 마음이 착한 사람만 보이는지 바코드가 안 보였다. 내 눈에는 보이는데 분명 아트 페어 직원 눈에는 안 보일 거 같아서 고민을 했고 특별한 사람들이 방문하는 행사니까 방문하고 싶은 마음도 드는데 하필 프린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로어 이스트 사이드는 아직도 낯선 곳이 많은데 저녁 6시부터 시작하니 어둑어둑한 낯선 거리를 걷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해 포기하고 말았다. 한편으로 뉴욕에서 열리는 아트 축제가 무척 많은데 늘 예산 걱정을 하다 보니 중요한 행사를 놓치면 섭섭하고 초대권도 받았는데 방문하지 않으면 얼마나 게으른지 스스로 생각하게 되니 마음을 바꿔 먹고 토요일 오후에 방문했다. 아트 페어 축제는 3월 5일부터 8일까지.
행사장을 찾다 햇살 부서지는 이스트 리버를 바라보다 멕시코에서 온 두 명의 남자를 보았다. 아트 행사장이 어디에 있는지 묻자 여행객이라고 하니 웃을 수밖에. 멕시코 사람인데 필라델피아에서 일하고 있는데 1주일 휴가를 받아 뉴욕에 왔다고. 여행객이 나 보다 맨해튼에 대해 잘 알리는 만무 하니까 웃음이 나왔다. 멕시코 여행객 두 명은 뉴욕에 대해 잘 몰라서 센트럴파크와 첼시 갤러리와 구겐하임 뮤지엄 등 몇몇 장소를 방문하라고 말하고 아트 페어 행사장을 찾아갔다.
뉴욕에 살면서 자주 들은 아트 축제인데 처음으로 방문했다.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다. 꽤 많은 부스에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좋은데 게으른 마음에 방문하지 않았을 뻔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맨해튼에서 자주 보는 몇몇 갤러리도 참가하니 눈에 익은 작품도 보였고 다른 나라에서 온 아티스트 작품도 보았다.
무엇보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가 나의 시선을 잡았고 노부부가 함께 작품을 보면서 마음에 드는데 작품값이 비싼 것 같다고 하셨다. 잠시 후 할머니 몇 분이 작품이 마음에 드는지 너무너무 좋아하셨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 가면 수 백억 하는 작품들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지만 아트 페어 행사는 가격이 훨씬 더 저렴하고 오래전부터 뉴요커들은 아트 수집에 열성적이다고 한다.
노란 튤립 꽃과 장미꽃 향기 가득한 부스에서 백발 할머니 아티스트도 만나 즐거웠다. 매일매일 작품을 만든다고 하니 대단한 열정이다. 머리는 하얀데 마음은 청춘이나 봐. 할머니가 만든 작품이라고 손짓을 하셨다. 평소 전혀 볼 수 없는 스타일의 작품도 나의 눈길을 끌었고 한인 작가 작품도 보며 감동을 받았다. 한국 전쟁 후 가난과 추위를 피해 미국에 이민을 오셨다고. 부모님이 무척 가난해 나무껍질을 먹었다고 하니 얼마나 슬픈 일인지.
아트 페어 행사장에서 커피와 빵을 사 먹을 수 있도록 카페가 열려 있어서 편리했지만 커피 값이 아주 저렴하지는 않아서 눈을 감았다. 다시 한번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도 들고 아들을 데리고 갈 걸 후회가 밀려왔다. 특별한 아트 페어는 1년 내내 항상 열리지는 않으니까. 서부에 사는 딸도 함께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지만 서부와 동부는 멀기만 하니 마음뿐이다.
정말이지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데 첼시에도 특별 아트 행사(High Line Open Studios)가 열려 지하철을 타고 첼시에 갔다.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서 더 좋다. 매년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보려고 방문하니 얼굴이 익은 화가들도 만난다. 화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살아있는 뉴욕 역사를 느끼니 정말 좋다. 그런데 실은 피어 36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 행사 보는 것만으로 상당히 피곤해 나의 에너지는 바다 아래로 잠수해 첼시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백발 할아버지 화가는 55년간 그림을 그렸다고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 사이(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열정이 놀랍다. 할아버지 스튜디오도 호텔처럼 깨끗하니 더 놀랍다. 재정적인 형편이 된다면 구매하고 싶은 화가의 작품. 콜럼비아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한 젊은 아티스트도 봤다. 그는 내게 마음에 든 작품 있냐고 물어서 55년간 그림을 그린 할아버지 화가 이름을 말하니 같은 빌딩에 사는데도 잘 모른다고 하면서 언제 시간 내어 보러 가야겠다고 하더라.
할머니 화가도 만나 들은 이야기도 재밌다. 할머니가 어릴 적 여름이 되면 별장에 가서 휴가를 보냈다고. 벽에 걸린 수탉 그림이 있어서 무슨 내용인가 물으니 휴가 이야기를 하셨다. 업스테이트 뉴욕인 줄 알았는데 롱아일랜드였다고. 우리 가족의 첫 정착지도 뉴욕 롱아일랜드였다. 50년대 60년대 롱아일랜드에 주택이 드물었다고. 할머니 부모님이 닭을 키우고 할머니 화가가 어릴 적 계란을 찾으러 다녔다고 하니 웃었다. 뜻밖에 롱아일랜드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으니까 즐거웠다. 할머니 화가가 그린 수녀님 그림은 마치 한국 강강술래를 떠올리게 했다. 플러싱에 살면서 지하철을 타고 로어 이스트 사이드 피어 36에 방문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첼시 갤러리에 방문하니 피곤해 몇몇 화가들만 만나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떠올리게 하는 아파트 지하에 가서 세탁을 했다. 35세(?)된 세탁기가 멈추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세탁을 하면 기분이 좋다. 깨끗이 세탁된 이불을 덮고 자는 기분을 무엇에 비유할까. 파란 하늘 보는 것과 비슷할까. 아트 페어 행사도 보고 첼시에 가서 아티스트들을 만나 들은 이야기로 행복했던 토요일. 맨해튼은 매일매일 숨겨진 보물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니까 지하철을 타면 슬픈 홈리스들을 만나게 되니 가슴이 아프다. 요즘 맨해튼에서 만난 홈리스들 숫자는 더 많아져간다. 갈수록 렌트비가 하늘로 치솟아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