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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Mar 19. 2020

뉴욕 코로나 19_형광등 찾아 삼만리

2020년 3월 17일 화요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구촌은 공포의 도가니로 물들어 가고 뉴욕 시장이 48시간 내에 자택 대피 명령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보도되는데 하필 작은 부엌 형광등이 빛을 잃고 말았다. 부엌에 있는 작은 냉장고 역시 빛이 꺼진 지 오래되어가고 집에 있는 여분의 전구를 냉장고에 끼웠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아파트 슈퍼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냉장고 전구가 꺼져버렸는데 혹시 여분의 전구가 있냐고 물으니 남편이 저녁 7시가 지나 돌아온다고.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빛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 만약 집안에서만 지내라고 명령이 떨어질지 모른다고 하니 더 답답한 순간. 아들과 나도 동네 마트에 걸어가서 혹시 형광등이 있나 찾아봤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직원에게 확인해도 역시나 없었다. 넓고 넓은 매장에 형광등이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없으면 할 수 없어. 




형광등 구입하러 삼만 리 



저녁 무렵 딸이 플러싱 타켓과 비제이스에 찾아가 확인해도 없고 할 수 없이 홈디포까지 갔는데 우리가 필요한 필립스 형광등이 있어서 구입해 집에 돌아왔다. 문제는 집에서 가깝지 않아. 정말 요즘 같은 상황은 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형광등 구입하러 얼마나 많은 가게를 돌아다녔는지 몰라. 타이밍도 기가 막혀. 이런 난리통에 형광등이 꺼지면 어떻게 살라고. 


혹시나 저녁 7시경 슈퍼가 찾아올지 모르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저녁 식사를 일찍 하고 슈퍼를 기다렸다. 아파트 슈퍼는 저녁 7시가 지나 우리 집에 방문할 거라 짐작했지만 밤 9시가 되어갈 무렵 손에 작은 전구 한 개 들고 찾아왔다. 놀랍게 슈퍼가 가져온 작은 전구를 넣으니 냉장고에 불이 켜졌다. 암흑 같던 냉장고가 환하게 되니 얼마나 좋던지. 


냉장고에 든 작은 전구가 꺼져 캄캄하게 변한 것은 살아생전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 이 복잡한 시기에 냉장고가 멈추지 않아서 다행인지 몰라. 아파트 지하에 놓여 있는 공동 세탁기가 30년이 지났는데도 새로운 것으로 교체를 하지 않으니 마치 소설 속 주인공 같아. 아파트 지하에서 처음으로 세탁할 때 만난 중년 여인의 말로는 만약 새로운 세탁기를 구입하면 주민들이 그 비용을 내니까 아직 골동품 같은 낡고 오래된 세탁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뉴욕 하늘 아래서 이리 슬프게 사는 서민들도 있다. 


뉴욕 시장과 뉴욕주 거버너의 코로나 대응책 의견은 달라서 아직 집에서 피신하라는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뉴욕주 거버너는 만약 집에서 지내라고 대피 명령을 하면 뉴욕에 미치는 경제에 엄청난 파문이 될 거 같아서 아직 눈치를 보는지 모른다. 시장과 거버너도 고민이 많겠지. 목숨도 중요하고 경제도 중요하니까. 


지난주 서부에서 온 딸도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코로나 감염 확산 우려로 약 670만 인구가 사는 서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San Francisco Bay Area: San Francisco, Santa Clara, San Mateo, Marin, Contra Costa, and Alameda counties)은 3주 동안 집에서만 지내라는 명이 지난 월요일(3월 16일) 떨어졌다. 병원에 가야 할 긴급한 상황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은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과 스탠퍼드 대학  등이 있다. 비상사태라서 서부로 돌아갈 수 없는 딸은 어쩔 수 없이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서부 역시 그로서리 쇼핑도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뉴스다. 


하버드 대학과 스탠퍼드대학과 뉴욕대와 콜럼비아대학 등 줄줄이 문을 닫으니 학생들은 숙소를 구하기 위해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 어디 학교뿐이겠는가. 


중국의 교통 중심지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점점 지구촌으로 확산하고 있고 특히 이탈리아 사망자가 많다는 뉴스를 가까이서 듣는데 사망자 숫자가 너무 많아서 충격적이다. 또, 21세기 지구촌 곳곳이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 화장지와 식료품 구입도 어렵다는 게 말이 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오니 혼동스럽기만 하다. 바이러스로 지구촌 경제가 셧다운 상태에 들어가는데 과연 어디서 멈출지 의문이 든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구촌이 실험실로 변했다. 우연히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아니면 우연이 아닐까. 








봄은 왔는데 세상은 왜 어수선할까. 


화요일 아침에는 두 자녀와 함께 호수에 산책을 하러 다녀왔다. 햇살 좋으니까 거북이들은 일광욕을 하고 있더라. 기러기떼, 청동 오리 몇 마리, 하얀 갈매기 떼 노는 모습을 보며 휴식을 하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봄이라서 노란 개나리꽃, 황금빛 수선화 꽃, 붉은 동백꽃과 아이보리 색 스타 매그놀리아 꽃과 보랏빛 제비꽃과 노란 민들레꽃을 보니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 


자연은 그지없이 평화로운데 세상은 왜 이리 혼란스러울까. 온갖 루머와 가짜 뉴스가 도는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니 더 혼동스럽다. 불과 얼마 전 날마다 맨해튼에 가서 공연과 전시회를 보곤 했는데 언제 일상으로 돌아갈까. 플러싱에서 맨해튼까지 왕복 3시간 정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니 상당히 피곤하지만 맨해튼에 가면 새로운 세상을 보고 배우며 살았는데 이제 소중한 일상도 멈춰버렸다. 과연 4월에는 오페라를 다시 관람할 수 있을까. 아, 그리운 오페라! 그리운 전시회! 그리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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