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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May 03. 2020

추억의 골목길과 뉴욕 운전 면허증




코로나 사태로 지구촌이 위기에 빠져 암울했는데 지난 사월은 유독 하늘도 흐리고 자주 비가 내렸다. 눈부신 오월을 기다렸는데 안타깝게 오월의 첫날도 하늘은 흐리고 비가 내렸다. 


모처럼 햇살 좋은 오월의 아침 딸과 함께 동네 파리바게뜨에 가서 라테와 빵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초록나무와 파란 하늘 보며 행복이 밀려와 천천히 곡목길을 거닐며 라일락꽃 향기와 작약꽃 향기 가득한 곳을 지나쳤다. 말하자면 직선거리가 아니라 동네 구석구석을 거닐며 추억에 잠겼다. 오래전 두 자녀에게 운전 연수를 하던 곳이다. 매일 가슴 조마조마하며 연수를 했다. 


비싼 뉴욕 물가와 전쟁을 하니 두 자녀에게 직접 운전 연수를 했다. 시간당 40불씩이나 하는 운전 교습을 한두 시간 받는 것도 아니니 고민하다 내가 하기로 결정했다. 한 명당 10시간이면 400불, 20시간이면 800불. 처음으로 운전을 배울 때는 20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두 명의 자녀 자동차 연수비가 절대로 가볍지 않았다. 


매일 운전 연수를 하러 가기 전 두 자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조금만 상처를 주면 화를 낼 테고 화를 내면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자동차 학원 연수차처럼 특별 자동차 브레이크 시스템도 없으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최저 속도로 운전하면서 골목길에서 갑자기 누가 튀어나오면 심장이 철렁거렸다. 뉴욕시는 운전이 거칠기로 소문이 난 곳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말이다. 만약 접촉 사고나 교통사고가 나면 엄청 큰 손해를 입는다. 그러니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까. 


매일 한 시간 이상씩 운전 연수를 시키고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 두 자녀는 무사히 뉴욕 운전 면허증을 받았다. 참 눈물겨운 운전 면허증이었다. 아직도 골목길을 거닐면 그때 추억이 생각난다.


우리 가족이 정착 초기 살던 뉴욕 롱아일랜드 딕스 힐과 제리코라면 운전 연수가 덜 힘들었을 것이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천천히 하면 되니까. 그런데 플러싱은 그렇지 않아서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그럼에도 연수 비용이 엄청 드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릴 적 두 자녀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 레슨을 위해 매일 연습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함께 도움을 준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십 년 이상의 세월을 그렇게 보냈다. 뒤돌아 보면 정말 힘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운전 연수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조금만 형편이 넉넉했더라면 직접 운전 연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으면 서비스 요금 비싼 뉴욕은 직접 할 수밖에 없다. 서비스 요금은 전부 돈이니까.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늘 위기의 연속이었다.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뉴욕에 온 것도 위기 한복판 가운데 내린 중대한 결정이었다. 안개가 걷히고 진실이 드러나자 두 자녀 교육을 위해 뉴욕에 가자고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준비를 했다.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40대 중반 뉴욕에 간다고 하니 대부분의 주위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어렵고 힘들게 뉴욕에 왔지만 황무지 같은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얼마나 큰 도전이었을까.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준비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뉴욕에 와서 사니까 어렵고 힘든 점이 무척 많았다. 낯선 땅에서 외국어로 교육 과정을 따라가는 것도 벅찬 일. 끝없는 도전이었다. 해마다 렌트비와 교육비와 물가는 오르니 갈수록 삶이 곤궁해졌다. 또,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났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찾아온 후 얼마나 힘들어졌던가. 직장에서 해고된 사람도 무척 많고 물가가 정말 많이 인상되었다. 기본 식품비가 엄청 올라가니 갈수록 장보기도 겁날 정도다. 


세상의 한 복판 뉴욕이지만 가난한 자는 눈물을 먹고 산다. 어렵고 힘들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꿈을 만들어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한다. 얼어붙은 땅에서 라일락꽃 피우는 봄을 사랑한다. 봄이 되면 초록 나무가 눈부시다. 매일 새로운 시작이다. 텅 빈 하루를 아름답게 채워갈 사람도 바로 나다. 열심히 살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 어디선가 눈부신 멋진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뉴욕 플러싱 주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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