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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Apr 01. 2020

뉴욕에 하얀 눈이 펑펑 내리면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면 좋겠다. 하얀 눈 펑펑 내리면 센트럴파크는 얼마나 예쁜가. 대학 시절 좋아하던 아다모의 "눈이 내리네" 노래도 생각난다.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 코로나 19 전염병으로 지구촌에 공포가 확산되니 자꾸 지난 추억이 생각난다. 하얀 눈과 우리 가족의 특별한 추억도 참 많고 슬픈 추억도 행복한 추억도 있다. 




아들이 고등학교 재학 시절 매주 토요일 맨해튼 음대에 가서 수업을 받았다. 그때 우리 가족은 맨해튼과는 상당히 떨어진 롱아일랜드 제리코에 살았다. 부모가 자녀를 픽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난 차를 운전하고 맨해튼에 가는 것을 꺼렸다. 맨해튼 교통이 무척 복잡하고 주차비는 비싸고 뉴요커 운전이 거치니까. 할 수 없이 아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우리가 사는 제리코에서 힉스빌(Hicksville) 역까지 내가 새벽에 픽업하면 아들은 기차를 타고 맨해튼 펜 스테이션 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음대에 갔다. 매주 바이올린 레슨 준비로 무척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 사실 학과 공부 따라가기도 벅차다. 뉴욕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니까. 


어느 날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수업과 레슨이 끝나고 펜 스테이션 역에 도착했는데 기차가 자꾸 연착이 된다고. 빌어먹을 눈 때문이었다. 곧 기차가 운행될 줄 알았다. 다시 전화가 걸려왔고 상황이 상당히 안 좋다는 것을 아들 목소리에서 느꼈다. 수많은 승객들이 기차가 정상 운행하지 않으니 아수라장으로 변한 속에서 있으니까 마음도 더 복잡하고 맨해튼에서 롱아일랜드까지 와야 하는데 밤은 깊어만 가고 피곤하니까 아들 목소리는 점점 더 불안했다. 평소에도 운전하고 맨해튼에 가지 않은데 눈이 쏟아지는 날 맨해튼에 갈 생각도 못했다. 기차를 타고 무사히 롱아일랜드도 돌아올 줄 알았다. 


아들은 3시간 이상 기다렸지만 결국 폭설로 기차는 운행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이용했다. 기억에 아마 70불 정도였나. 만약 택시비가 저렴하고 기차가 운행하지 않을 줄 알았다면 바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올 텐데 슬프게 추운 날 배도 고픈데 펜 스테이션 역에서 고생만 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슬픈 추억이다. 그 무렵 아들은 학교에서 점심도 안 먹고 이론 수업받고 오케스트라 연습하고 그 후 개인 레슨 받고 펜 스테이션 역에 갔다. 한 밤중 집에 도착했으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매년 5월 즈음에 뉴욕 니즈마 음악 축제(NYSSMA)가 열린다.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위해 뉴욕 음악 협회에서 학생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대회다. 상당수 뉴욕 공립 고등학교 학생들은 악기 레슨을 받고 매년 니즈마에 참가한다. 아들도 뉴욕에 와서 처음으로 참가할 때부터 항상 100점을 받았다.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면 11학년과 12학년 때에는 the All State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지고 학교에서 소수 학생이 참가한다. 대개 고등학교에서 한 명 정도 가끔은 두 명 정도 기회가 오는데 자격 미달이면 한 명도 선발하지 않기도 한다. 아들은 11학년과 12학년 두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니즈마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뉴욕 정치인들과 인사들로부터 레터도 온다. 그러니까 상당히 영예로운 the All State 행사다. 하지만 뉴욕 업스테이트 로체스터 이스트만 학교에서 열리고 그 무렵 난 공부를 했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으니까 아들 혼자만 이스트만 학교에 보냈다. 거의 모든 학생들 부모가 픽업을 하던지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아들은 혼자 참가했으니 마음이 아파했겠다. 행사가 끝나고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돌아오는데 하얀 눈이 펑펑 내렸고 하늘에서 바라본 뉴욕의 설경이 너무 아름다워 평생 잊을 수 없다고 자주 말한다. 함께 로체스터에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 가득했다. 호텔과 항공료 값이 부담되니까 아들 혼자 보냈다. 나중 알고 보니 특별한 행사라서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여행 비용을 스폰서 했다. 그런 사실을 늦게 알고 다음 해에는 우리 가족 모두 이스트만 학교에 가서 아들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공연도 보았다. 학교에서 엄마 비용만 주니 딸의 항공료는 개인적으로 부담했다. 어느 날 갑자기 뉴욕에 와서 공부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니 항상 복잡하니 보통 가정과 상황이 다르고 자주 여행도 할 수 없는데 아들 덕분에 로체스터 이스트만 학교에 갔다. 미국의 명성 높은 음악 학교다. 그 무렵 사진도 없으니 후회도 밀려온다. 좋은 휴대폰도 없던 시절. 한 푼 아끼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 연구소에서 근무할 때 뉴욕에 폭설이 내렸다. 정말 잊을 수 없던 눈폭풍이었다. 

뉴욕시에서 롱아일랜드까지 차를 타고 돌아갈 생각만 하면 소름 끼쳤다. 오후 5시경 일을 마치고 학교 앞 내 차를 주차한 장소에 도착하니 차는 눈에 파 묻혀 있었다. 차에 쌓인 눈을 치우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차바퀴도 눈에 빠져 눈을 치워야 했고. 뉴욕 호텔비와 택시비가 저렴하다면 하룻밤 호텔에서 자도 될 텐데 너무너무 비싸니까 포기하고 직접 운전을 해야 하는데 차가 움직일 정도로 눈을 치웠지만 도로는 눈에 덮여 운전이 몹시 힘들었다. 어렵게 어렵게 운전하고 플러싱 공용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파리 바케트에 들어가 하얀 눈 내린 풍경을 보며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셨다. 눈 내린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내가 운전을 하고 495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는데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운전을 했다. 고속도로는 꽁꽁 얼어붙어 심장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국에서는 그런 상황이라면 운전을 하지 않고 택시를 이용했다. 내 작은 소형차는 장 보고 수업받으러 학교에 가기 좋지만 날씨가 안 좋으면 역시 안전한 차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기의 순간 운전을 하고 어렵게 집에 도착해 식사 준비도 하고 식사를 했다. 서비스 요금 비싼 뉴욕은 뭐든 직접 해야 한다. 


수년 전 카네기 홀에서 안네 소피 무터 공연이 열렸다. 한국에서는 공연을 볼 기회가 드물었다. 명성 높은 음악가 공연 티켓도 비싸고 등등 여러 이유가 있다. 뉴욕에 오니까 카네기 홀에서 유명한 음악가 공연을 보는 면은 참 좋다. 주로 발코니 석 티켓을 사서 무대가 멀어 시야가 불편하지만 어려운 형편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본다. 한국에서 그녀 공연을 본 적도 없고 음반으로만 들었으니까 내 가슴은 설레었다. 그녀 공연이 열린 날 하필 뉴욕에 폭설이 내렸다. 눈 오는 풍경은 아름다우니까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파크에 달려갔다.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고 달려가 가로등 불빛 보며 설경을 담는데 아이폰 작동이 멈췄다. 마음껏 사진을 찍으려는 내 욕심은 물거품이 되고 손과 발이 시려 도저히 공원에 있을 수가 없어서 카네기 홀 옆 스타벅스 매장에 가서 잠시 휴식을 했다. 뉴욕은 아무리 추워도 난방이 된 곳은 따뜻하고 좋다. 그날이었던가. 하필 공연 티켓을 분실했다. 카네기 홀 직원과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그런데 내 좌석번호를 모르니까 복잡했다. 참 힘들게 본 공연이었는데 안네 소피 무터는 그 추운 날 얇은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올라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을 들려주었다. 감동이 밀려왔다. 역시 대가는 위대했다. 


오래전 대학원에서 공부할 무렵 롱아일랜드 양로원에서 발런티어를 했다. 눈이 펑펑 내린 날이었는데 느리게 달리면 지각할 거 같아서 도로가 꽁꽁 얼어붙었는데 도로 상태가 어떤 정도인지 잊고 눈이 내리지 않은 날처럼 달렸다. 그런데 달리던 내 차가 빙글빙글 세 바퀴 돌았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차 혼자 원을 그리고 있었다. 나 혼자 공포 영화를 찍고 있었다. 발런티어인데 조금 늦게 도착해도 괜찮을 텐데 엄청난 실수를 했다. 다행히 주위에 다른 차가 없었다. 만약 내 주위에 다른 차가 달리고 있었다면 연쇄 추돌 사고가 발생했을 것이다. 그날 죽는 줄 알았는데 3바퀴 돌고 멈춘 차를 운전하고 양로원에 도착해 평소 하던 일을 했다. 그 무렵 만났던 노인들은 아마도 하늘나라로 떠나지 않았을까. 대개 양로원에서 5년 정도 머물다 작별 인사를 하기도 하고 일부 예외도 있다고. 파킨슨병에 걸린 월가에서 일하던 중년 남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외국어에 능통한 60대 노인은 무얼 하고 지내는지 안부가 그리운데 플러싱으로 이사 와서 차를 팔아버려 양로원에 방문하지 못했다. 


뉴욕은 한국과 달리 폭설이 내리면 무섭다. 창가로 비치는 풍경은 무척 아름답지만 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눈이 많이 내리면 어릴 적 한국에서 크리스마스 카드 풍경이 떠오른다. 차가 있으면 고생을 많이 한다. 차위에도 눈이 쌓이는데 1미터 가까이 쌓이면 눈 치우기가 고통이다. 큰 삽으로 제설 작업을 하는데 아들은 허리가 아프다고 한다. 사실 몇 시간 동안 제설 작업을 하고 나면 피곤하다. 뉴욕은 집에 개인 주차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롱아일랜드 아파트에 살 때는 공부하느라 조금 늦게 눈을 치우러 가면 이웃이 내 차 주위로 눈을 쌓아둔다. 1미터 이상 쌓인 하얀 눈을 치우는 것은 낭만적인 풍경과는 대조적이다. 눈아 눈아 그만 내려라,라고 마법의 주문을 외우고 싶다. 겨울이면 자주 폭설이 내리고 고생도 많이 했다. 


뉴욕 롱아일랜드는 차 없이 지낼 수 없는 곳이라서 차를 구입했지만 학교에 가고 장 보러 가는 경우 생각하고 저렴한 비용의 소형차를 구입했는데 추운 겨울 꽁꽁 언 고속도로를 달릴 때면 후회가 밀려왔다. 더 좋은 차를 구입할 텐데... 학교에 수업받으러 갈 때 추운 겨울날 가슴은 공포로 가득한데 운전을 하고 수업을 받으러 갔다. 이방인 언어 외국어로 수업 듣는 것도 어렵기만 했다. 추억은 지나면 아름답다고 하지만 모든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행복한 추억도 슬픈 추억도 참 많다.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풍경을 시내버스 타고 달리며 아이폰으로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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