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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신비롭다

by 김지수

갑자기 폭풍이 쉬지 않고 몰아쳤다. 사방은 캄캄했다. 어디가 출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절망과 탄식과 아픔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혼자서 조용히 쉬지 않고 울었다.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고통의 터널의 끝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슬픈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가출을 하고 법정 소송을 진행했다. 법정 재판이 그리 힘든 줄 몰랐다. 남들이 궁궐이라 부른 집에서 꼭 필요한 짐을 들고 가출해 아주 작은 오두막으로 옮긴 후 변호사를 만났다. 서류를 건네주면 한 달 이내에 이혼 소송이 끝난 줄 알았다. 결혼도 어렵지만 이혼도 어려웠다. 온갖 허위 서류가 법정에 돌고 돌았다. 심지어 남편은 아내가 정신이상자란 허위 서류를 만들어 법원에 제출했다.


하루아침에 우린 적으로 변해있었다. 대학 시절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랑을 고백하던 순수한 청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성공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반대로 교직에 종사하다 사직서 제출한 아내는 돌멩이 같았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길바닥에 뒹구는 돌멩이. 대학 시절 동등했지만 결혼은 우리를 다른 위치에 놓았다. 어린 두 자녀를 키우려고 사직서 제출하고 집에서 지내는 아내는 남편의 그늘에서 신음하며 세월을 보냈다.


소문은 날개를 달고 퍼졌다. 순식간에 난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친구들도 지인들도 내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심지어 내 변호사까지 날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세상이 참 잔인하구나를 온몸으로 느꼈다. 가슴 아픈 눈빛으로 변호사를 바라보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자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고 진단서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Paris through the Window/ Wiki Art


하얀 눈이 펑펑 내린 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 P 정신과 전문의 닥터 오피스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여러 명의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 테스트받고 상담받은 후 진단서를 받아 변호사에게 건네주었다. 재판은 한 달이 아니라 거의 1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다. 재판을 받는 동안 입술에서 진물과 피가 흘렀다.


정말 '사느냐 죽느냐'의 주인공이었다. 대학 시절 만난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비극적으로 막이 내렸다. 그를 위해 내 청춘을 다 바쳐서 더 이상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 극악할 정도로 잔인했던 재판은 나의 모든 기억을 지우기 시작했다.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잊고 싶어 진다.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날 정신병자 취급한 곳에서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유학 준비를 했다. 나의 목표는 뉴욕이었다. 주위 사람들은 뉴욕에 간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40대 중반 대학원에서 공부한다고 하니 불가능한 꿈이라는 말만 했다.


그랬다. 하늘의 별을 따는 거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힘든 채판을 1년이나 하면서 내 몸은 지쳐갔는데 재판이 막이 내리자마자 서점에서 토플 책 한 권 구입해 대학 도서관으로 달려가 공부를 했다. 매일 개구리울음 소리 들으며 집에 돌아왔다. 지방에 사니까 토플 시험을 보려면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갔다. 새벽 4시에 깨어나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 다시 지하철을 타고 낯선 시험장을 찾아갔다. 고속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한 밤중. 토플 시험 등록비와 교통비도 만만치 않았다.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토플 시험은 40대 중반에게 전쟁이었다. 낯선 외국어와 컴퓨터와 전쟁을 했다. 토플을 위해 학원에 다닌 적도 없었다. 재판으로 마비된 몸으로 토플 시험 치르기가 어려웠다. 세상은 어느새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종이가 아니라 컴퓨터로 토플 시험을 치렀다.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컴퓨터 전원 켜고 끄는 정도 알았다. 에러가 나면 난리다. 토플 시험은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딱 3개월 준비했다.


첫 회 토플 성적 결과는 겨우 대학원 원서 커트라인에 가까웠다. 가까스로 기본 점수를 넘겼지만 더 좋은 성적을 받고 싶었다. 다시 시험을 치렀다. 새벽에 일어나 서울에서 시험 보고 집에 돌아오는 것도 전쟁이었다. 기대를 했지만 두 번째 결과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때는 집에서 빵과 과자를 오븐에 구웠다. 오로지 집중에서 공부를 해야 할 텐데 긴장을 풀고 싶었을까. 토플 시험 1회 비용도 20만 원 정도. 부담스러운 경비였다. 경비와 육체적인 피곤 때문에 망설이다 세 번째 시험을 봤다. 역시나 결과는 기대를 벗어났다.


그냥 대학원에 지원하기로 결정을 했다. 지치고 지친 몸으로 재판을 끝내고 토플 시험을 봐서 유학 준비는 유학원에 맡기고 싶었다. 그래서 유학원에 찾아갔지만 비용이 너무나 비쌌다. 다시 절망에 빠졌다. 날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결국 혼자서 인터넷에서 알아보고 유학 서류를 준비해 보냈다. 그가 별처럼 빛나는 성공이란 타이틀을 얻기까지 수 십 년 동안 내조를 한 것도 어려운 일이었고, 재판을 한 것도 어려웠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유학 준비였다.


over-the-town-1918.jpg!Large.jpg Over the town/Wiki Art


기적이 일어났다. 남들이 불가능한 꿈이라고 했는데 뉴욕에 있는 대학원에서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다. 하늘을 날 거 같은 기분이었다. 어려운 일을 해냈구나. 몸에 날개라도 솟는 기분이었다. 세상의 빛이 사라지고 캄캄했는데 어둠 속에서 벨이 울렸다. 그런데 다시 세상 사람들은 미국 비자는 받기 어려울 거라고 수군거렸다. 남들이 뭐라 하든 말든 비자 인터뷰 준비를 했다. 그리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 인터뷰를 받았다. 비자 인터뷰를 통과했다. 두 번째 작은 기적이었다.


꿈같은 순간이었다. 드디어 뉴욕에 가는구나. 절망의 빛이 꺼지고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뉴욕행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위기 한가운데서 불바다를 탈출했다. 40대 중반 아무것도 모르고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뉴욕에 와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우리에게 어떤 시련과 고통이 주어질지 몰랐다. 미지의 세상 뉴욕에서 무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삶은 위기와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하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키우고 가꾸는 사람이 있다. 어둠과 슬픔과 고독 속에서 희망의 빛을 잃지 않고 찬란한 무지갯빛 꿈을 키우며 느리게 느리게 아다지오 속도로 내게 주어진 길을 가고 있다.


The betrothed and Eiffel Tower/ 사진 wiki art


러시아 출신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의 그림을 좋아한다. 전쟁과 고통 속에서 위대한 예술 작품을 창작하며 마지막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예술 세계를 완성해갔다. 난 색채가 아름다운 그의 그림을 보며 꿈을 꾼다. 인생은 신비롭다. 대학 시절 내가 뉴욕에서 살 게 될 거라 미처 몰랐다. 뉴욕이 세계 문화 예술의 도시란 것도 늦게 늦게 알았다. 하마터면 하얀 병동에 갇힐 뻔했는데 극적으로 탈출해 뉴욕에 왔는데 대학 시절 내가 꿈꾸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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