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영화, 잭슨 하이츠, 산책

by 김지수

2020년 7월 29일 수요일 폭염




IMG_4726.jpg?type=w966
IMG_4720.jpg?type=w966
IMG_4725.jpg?type=w966
IMG_4724.jpg?type=w966
딸이 동생 생일 위해 주문한 케이크, 아이스크림, 스테이크


꽤 바빴던 하루였다. 아침 일찍 산책하고, 한인 마트에 가서 장 보고, 파리 바케트에 가서 생일 케이크 찾고, 퀸즈 잭슨 하이츠에 다녀왔다. 폭염이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데 부산하게 움직였다. 잭슨 하이츠에 갈 때 너무 더워 카네기 홀에서 준 부채를 들고 갔는데 분실하고 말아서 속이 상했다. 카네기 홀에서 준 부채는 딱 하나 남았는데 소중한 기념품이 사라졌다.




늦은 오후 폭염이라서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집에서 노라 에프런이 쓴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영화를 봤다. 1993년 개봉된 영화를 오래전 보았는데 그때와 느낌이 아주 달랐다. 약 30여 년 전 사랑 이야기를 재밌게 봤지만 뉴욕에서 이민 1세대로 사는 현재의 입장에서는 영화가 주는 감동이 전혀 없고 제로에 가까웠다. 실은 그 정도 수준이라면 차라리 안 볼 텐데 할 정도로 시간이 아까웠다.


내 취향이 변했다. 이민 1세대로 살다 보니 취향도 변했을까. 물론 이민 1세대도 다 다르다. 난 싱글맘 이민 1세대다. 한국에서도 싱글맘으로 살기 힘들다고 한다. 그럼 외국은 어떠겠는가. 너무너무 재미없는 영화였다. 그렇게 인기 많은 영화가 내게는 수돗물 같은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저 그랬다. 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차라리 이민자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백배 더 감동적일 거 같다. 생활이 안정된 경우는 사랑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생존과 하루하루 힘겹게 보내는 사람에게는 사랑도 사치가 될 수도 있다.


삼십여 년 동안 내 삶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어린 두 자녀 출산하고 집에서 지내던 무렵 아이 아빠 뒷바라지와 육아와 교육에 온 힘을 다하고 시댁에 대한 의무가 생의 전부나 된 듯.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파란만장했던 나의 삶에 비하면 영화는 사랑 이야기에 집중을 하니까 감동적이지 않았나 보다.



그때 내가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와서 살게 될 거라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이 날 붙잡았다. 대학 시절 클래식 음악 감상실에서 베토벤 운명 교향곡을 그냥 들었는데 운명과 춤추다 보니 그 교향곡을 들을 때마다 베토벤 운명과 피할 수 없는 운명과 춤추던 사람과 내 슬픈 운명을 떠올린다. 대학 졸업 후 일찍 하늘나라로 떠난 친구도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침대에서 숨을 거둔 대학 동창 남편도 있었다. 교통사고로 일찍 숨을 거둔 사람도 있었다. 말없이 하늘나라로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이민 생활은 하루아침에 안정되지 않는다. 물론 특별한 예외도 있다. 그러나 보통 이민자들의 삶은 비슷비슷하다. "내 코가 석자"면 남의 일에 신경을 쓸 수가 없다. 내 일도 복잡할 때 다른 사람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삶이 그런다. 상황이 참 충요하다. 내가 아플 때 다른 사람 이야기가 들어오겠는가. 이민 생활을 쉽게 표현하면 '아프다"라고 말해도 될까. 누구나 '아프다'란 말이 무얼 의미한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아프다. 그럼에도 꿈을 꾸고 꿈을 먹고 산다.


이민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은 이민이 뭔지 모를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 사는 이민자들 가운데 수 십 년 세월이 흘러 안정된 사람도 있다. 대개 비포장도로에서 덜컹 거리는 삶에 대해 노출하기보다는 화려하고 행복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이민을 가면 다 그렇게 산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IMG_4816.jpg?type=w966
IMG_4817.jpg?type=w966


Oi_JiN0xK07ki7ymbl6caBnaDD8
bQS4FlLqGml7VGqB6O2Ve1YQJCY
뉴욕 퀸즈 잭슨 하이츠



수요일 오후 불타는 태양의 세례를 온몸에 받으며 퀸즈 잭슨 하이츠에 방문했을 때도 세븐 일레븐에서 저렴한 피자와 음료를 파는 것을 보고 현재 뉴욕시의 상황이 얼마나 안 좋은가 짐작을 했다. 그날도 잭슨 하이츠 지하철역 부근 거리에 누워있는 홈리스도 보았다 검은색 쓰레기봉투를 베개 삼아 누워 영화 같았다.


qvdtPHD5psn2kGwZKpjZAgdV0qI


수요일 아침 일찍 예쁜 배롱나무 꽃과 아이보리 수국 꽃 보며 더위를 달래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마존에서 도착한 소포가 보였다. 서부에 사는 딸이 아마존에 동생 생일을 위해 엄청 많은 아이스크림과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또, 딸이 서부로 떠나기 전 동생 생일을 위해 케이크를 주문한 영수증을 들고 파리바케트에 찾으러 가고, 쌀이 떨어져 한인 마트에 장을 보러 가서 수박과 쌀과 고등어 두 마리와 상치 등을 구입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서리 쇼핑을 위한 수레를 들고 장을 보러 가니 처음으로 택시를 타지 않고 집에 돌아왔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남이 할 때는 어려운 줄 몰랐다. 아들이 수레를 밀었는데 생각보다 힘들다고 말했다. 도로가 울퉁불퉁 하니 수레를 밀기도 불편했다. 온몸에 땀을 줄줄 흘리며 장을 보았다. 그로서리 쇼핑 수레도 딸이 주문했다. 딸 덕분에 맛있는 케이크와 아이스크림과 스테이크를 먹었다.



*너무 바빠 8월 1일 아침 지난 일기(7월 29일)를 기록하다.


IMG_4721.jpg?type=w966 이웃집에 핀 무궁화 꽃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태양이 지글지글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