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4일 금요일
코로나 전쟁은 언제나 끝이 날까.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맨해튼 아지트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잠시 책을 펴고 읽다 갤러리를 구경하고 공연을 보고 마음껏 즐거움을 찾았는데 무더운 여름날 편히 앉아서 쉴 냉방된 곳이 없다. 뉴욕은 공중 화장실이 드물어 더더욱 난처하게 만든 요즘. 멀리 휴가라도 다녀오면 좋겠는데 마음과 달리 현실은 사방으로 막혀 출구가 어딘지 찾고 있다. 도깨비방망이 두드리며 출구 나와라고 외치고 싶은데 마법을 부리는 요술 방망이가 없다. 요술 방망이만 있으면 코로나 사라지라고 주문을 외우고 범인을 찾아내어 혼내고 싶다. 꼭꼭 숨은 범인들은 어디서 웃고 있는지 몰라.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우는 세상.
얼마 전 방문했던 트라이베카 갤러리에 다시 갔다. 벽에 걸린 파란색 장미와 작품이 그리워 다시 찾아갔는데 롱아일랜드 살 적 유튜브에서 봤던 래디 가가의 영상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다시 갤러리를 찾아다녔다. 코로나 전 가끔씩 방문했던 소호 포토 갤러리에도 방문했는데 문이 닫혀 있어서 아쉬운 마음 가득했다. 미리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걸 그랬지. 요즘 다시 서서히 갤러리를 오픈 한 곳도 있으니 그냥 열 줄 알고 방문했다. 맞은편에 있는 트라이베카 록시 호텔 앞 벤치에는 아무도 없고 평소와 달리 썰렁한 분위기다. 맨해튼 거리거리를 걸으면 여전히 코로나 전쟁 중임을 실감하게 한다.
뉴요커도 길을 잃기 쉬운 트라이베카. 명성 높은 트라이베카 그릴과 노부 레스토랑에도 아들과 아주 오래전 레스토랑 위크를 맞아 방문해 식사를 했다.
우리 가족이 이민 가방 몇 개 들고 뉴욕에 찾아온 8월 초 기념일 저녁 아들과 함께 동네 호수에서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참 복잡하고 어려운 시점에도 레스토랑 위크를 맞아 뉴욕 최고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고, 가끔 세계적인 음악가들 공연을 보러 카네기 홀에도 가고, 메트와 모마 등 뮤지엄에도 가고, 첼시 갤러리 등에도 방문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만약 어렵고 복잡하다고 맨해튼 문화를 즐기지 않았다면 얼마나 후회가 밀려올까.
뉴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늦게 세계 문화 예술의 도시란 것도 알게 되고, 세월이 흘러 흘러 매일 지하철 타고 맨해튼 나들이하다 나 혼자의 힘으로 보물섬을 발견해 벅찬 감동을 받았는데 지금은 코로나로 잠들어 버려 뉴욕이 뉴욕이 아닌 지금.
사실 뉴욕은 빈부차가 극과 극으로 나뉘고 렌트비와 생활비가 비싸고 모두 바쁘니 지옥의 도시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고 문화가 얼마나 좋은지 모른 사람들도 아주 많다. 내가 뉴욕에 오기 전에도 맨해튼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분을 만나려 했지만 대학에 출강하니 너무 바빠서 만날 수 없었고 뉴욕 생활이 지옥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같은 뉴욕인데 보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 전시회를 봐도 글을 읽어도 주관적으로 보고 느끼고 판단한다. 같은 작품을 보고 좋다고 하는 사람도 반대로 안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글도 마찬가지다.
모두 바쁘니까 뉴욕에 40년 이상 살아도 명성 높은 레스토랑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고 일만 하셨다는 말도 들었다.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위기를 맞다 보니 가끔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매년 여름 레스토랑 위크 축제가 열리면 만사를 제치고 미리 예약을 했다. 먹는 즐거움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아들도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명성 높은 셰프가 준비한 요리를 좋아한다. 2008년 경제 위기 전에는 비행기를 타고 서부로 플로리라로 여행을 떠났는데 갈수록 어려워진 형편이라 여름휴가를 갈 수 없었고 대신 보스턴 여행으로 만족해야 했다.
딸이 동부 보스턴 캠브리지 연구소에서 일할 때 매년 초대를 받아 몇 번 버스를 타고 보스턴 여행을 떠나 보스턴도 아주 낯설지 않은 지역이 되어 미국에서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진다. 말할 것도 없이 살고 있는 뉴욕이 제1의 고향. 딸이 보스턴에서 일하기 전에는 보스턴도 너무 낯선 곳이고 그때는 인터넷에 여행 정보도 드물었고 뉴욕보다 더 암울한 분위기라서 아들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하버드 대학과 MIT 대학이 있는 캠브리지 분위기는 달랐다. 차츰차츰 자주 방문하다 보니 날씨 좋은 날 보스턴 찰스 강 석양이 예쁘단 것도 알게 되었다. 지금은 혼자 버스를 타고 보스턴을 방문해도 지리가 낯설지 않아서 힘들 거 같지 않다. 뉴욕 문화가 더 특별하고 좋지만 보스턴은 보스턴만의 특별한 분위기가 있어서 좋다.
이방인의 땅 뉴욕에서 살다 보니 어릴 적 자주 들은 '스와니 강' 곡이 새롭다. 어렵고 힘들 때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생각난다. 조금만 도움을 받고 살면 그래도 나을 텐데 아무도 없는 뉴욕에 어린 두 자녀 데리고 와서 교육하며 사니 말로 할 수 없는 아픔이 많다. 눈물 속에 아픔 속에서도 희망의 등불을 켜고 살아가고 있다.
머나먼 저곳 스와니 강물 그리워라
날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
이 세상에 정처 없는 나그네 길
아 그리워라 나 살던 곳 멀고 먼 옛 고향
정처도 없이 헤매는 이 내 신세
언제나 나의 옛 고향을 찾아나 가볼까
이 세상에 정처 없는 나그네 길
아 그리워라 나 살던 곳 멀고 먼 옛 고향
트라이베카 영화제도 열리는 트라이베카. 로버트 드니로, 메릴 스트립, 비욘세... 등 명성 높은 배우와 가수들도 산다고 한다. 오래오래전에는 렌트비가 저렴해 소호에서 살던 예술가들이 부동산 임대료가 인상되어 렌트비 저렴한 트라이베카로 옮겨갔는데 지금은 예전과 달리 부유촌이다. 몇 년 전 첼시 갤러리 오픈 스튜디오에서 만난 화가는 렌트비가 아주 저렴해 트라이베카에서 살던 때도 있었다고 고백하셨다. 트라이베카 아트 축제도 열려서 뉴욕 화가들 작품도 구경하고 작가들과 이야기도 나눠서 좋았는데 모든 게 멈춰버린 지금 코로나 전이 몹시도 그립다.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코로나 전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니 그때가 얼마나 좋았는가.
땡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 트라이베카 갤러리를 찾아다녔고 마음에 든 전시회도 보아서 기뻤다. 난해한 현대 미술을 감상하는 것도 어렵고 설명하기는 더더욱 어렵지만 작품을 보고 느낌이 전해져 오면 만족한다. 갤러리 문이 열려서 얼마나 좋던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설명을 들으면 더 좋겠지만 혼자서 그림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요즘 코로나로 상당히 위험한 시기. 말하자면 코로나 전쟁 중이다. 가을 독감과 더불어 코로나가 유행하면 사망자가 아주 많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다. 운동선수도 코로나에 걸리니 매일 운동을 해도 불안하기만 하다.
하버드대학도 스탠퍼드대학도 가을 학기 온라인으로 수업을 한다. 정말 캠퍼스가 그리운 나날들이야. 하버드 대학 교정을 거닐며 산책하던 때가 정말 그립다.
매일 보물섬 맨해튼에서 공연과 축제와 전시회를 보다 집콕 생활하니 답답해 8월부터 용기를 내어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과 브루클린에 답사하는데 너무나 분위기가 썰렁해 놀라고 있는데 한국은 코로나 전과 비슷하고 클래식 공연도 하고 미리 12월까지 공연 티켓을 예매했다고 하니 놀랍구나. 반대로 뉴욕은 지옥이야. 맨해튼 소호도 텅텅 비어 가고 문을 닫는 곳이 많아져 가는데... 이러다 정말 뉴욕이 유령의 도시로 변할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