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마지막 날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2020년 11월 30일 월요일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 아름다운 11월이 떠나기 싫었나. 정말 무시무시했다. 아침에 딸은 먼저 집을 떠나고 난 오랜만에 파바로티와 마리아 칼라스 노래 들으며 여유로운 아침을 보냈다. 아무것도 모르고 뉴욕에 왔으니 파바로티와 마리아 칼라스가 뉴욕과 인연이 깊은 줄도 몰랐어.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서 처음으로 마리아 칼라스 이름 보고 누군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세계적인 성악가. 뉴욕에서 태어난 그녀는 재능도 무척 많았지만 고생 많이 했다고. 아무리 재능이 많아도 노력하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지. 오페라 길도 어렵기만 하지. 난 늦게 오페라와 사랑에 빠졌어. 자주자주 맨해튼 음대에서 성악 전공하는 학생들 공연 보며 사랑에 빠지니 나중 메트에 가서 오페라를 보곤 했지. 또, 빵집 아들 파바로티도 가난한 집이라 부모는 돈이 없어서 음악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그가 노래 부른 것을 듣고 재능이 많으니 음악을 전공해도 된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고 아주 오래전 책에서 읽었다. 내가 좀 더 빨리 왔더라면 메트와 센트럴 파크에서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난 너무 늦게 온 거야. 과거나 현재나 예술가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니 가난한 집안에서는 자녀를 전공시키지 않으려고 하지. 세상에 쉬운 길은 없지만 음악의 길도 험난하기만 하지. 두 자녀를 10년 넘게 특별 레슨 시키며 세계적인 음악가를 만났으니 특별한 경험이었다.
먼저 집을 떠난 딸 운동화가 비에 젖었다고 하니 집에 있는 운동화를 가방에 담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비바람이 거세게 부니 한 발자국도 걷기 힘든 11월의 마지막 날. 유령들의 파티가 열린 듯 종일 요란하다. 어디서 유령이 찾아온 걸까. 무시무시해. 코로나를 데려가면 좋겠는데... 앞으로 더 추워지면 정말 걱정이야.
원래는 북카페에서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운동화 전해 주고 비바람이 거세니 멀리 움직이기 싫어서 센트럴 파크에 가서 비에 젖은 낙엽 위를 걸으며 산책을 했다. 세상에 이런 날도 운동을 하는 뉴요커도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조깅하는 뉴요커가 있어. 물론 애완견 데리고 산책하는 뉴요커들도 만났다.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부는데 내 몸이 바람에 멀리 날아가고 말았어. 물이 첨벙첨벙하니 걸을 수 없는데 바람이 날 먼 곳으로 데려가니 웃었지. 내 우산도 바람에 뒤집혀서 빗물에 동동 흘러내려가니 종이배가 생각났어.
딸의 연락을 받고 점심을 먹으러 아지트로 갔는데 날씨가 궂어서 멀리 가기 싫어 커피와 빵이나 먹으려고 뉴요커가 사랑하는 조 커피 전문점에 갔는데 카페 안에서 머물 수 없으니 핫 커피 들고 밖으로 나와서 헤매고 말았지. 코로나만 아니라면 갈 곳이 무척이나 많은데 일부는 문을 닫아 버렸고 테이크 아웃하는 곳도 많고... 아, 어렵게 찾은 뉴요커가 사랑하는 Irving Farm New York. 얼마나 고맙던지. 카페가 천국이었어. 왜냐면 실내에서 쉬어갈 수 있으니까. 오늘처럼 카페가 반가운 날도 드물었다. 빵과 티 주문해 잠시 쉬다 딸이 안내한 레스토랑에 갔는데 스시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 기분이 좋았다. 맨해튼은 식사비가 하늘처럼 비싼 곳이 많은데 꽤 마음에 든 곳이었어.
11월은 떠나가는데 지금도 비바람 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난 아직도 밀린 일기가 많은데 어떡하니. 11월 난 너무 게을렀나. 아름다운 11월을 보내기 싫어서 센트럴 파크에도 자주 가서 최고로 멋진 가을 풍경을 보고 마음에 담았어. 갑자기 슬픈 일은 말도 없이 날 찾아오니까 슬픈 일이 생기면 사진들을 보며 추억을 꺼내 위로를 받아야지. 삶이 어찌 항상 행복하겠어. 슬픈 일은 정말 많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야.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밀린 일기 기록해야 하는데.. 누구 없소? 날 대신해 기록해줄 사람. 인공 지능 세상이 와서 로봇이 많은 일을 한다고 하는데 고독한 뉴요커 기록은 할 수 없겠지. 내 경험을 로봇이 어찌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