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타운 그랜드 센트럴 역, 브라이언트 파크 & 나의 아지트에서
2020년 12월 27일 일요일
아파트 실내 난방이 잘 안되어 거실 바닥이 얼음나라로 변신해 온몸이 꽁꽁 얼어붙는다. 매달 비싼 렌트비 내는데 왜 난방을 해주지 않을까. 나이 드니 추운데 적응이 안 된다. 온도 1도 떨어지면 면역력도 30%나 떨어진다고 하니 걱정도 된다. 비싼 의료비 뉴욕은 아프면 죽음이니까. 역병이 도니 면역이 얼마나 중요하더냐.
일요일 아침 닭죽을 끓였다. 지난번 세일하는 닭 한 마리를 5.5불인가 주고 샀다. 우리 가족은 닭 한 마리를 반으로 나눠 두 끼 식사를 한다. 닭 반 마리만 큰 냄비에 넘고 삶아 닭죽을 만든다. 양파와 마늘도 듬뿍 넣는다. 닭죽을 먹을 때마다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 이용훈이 생각난다. 뉴욕 유학 시절 너무 가난해 물로 배를 채웠다고. 학교에서 물을 집으로 가져가 먹었으니 말 다했지. 서울대 졸업하고 맨해튼 매네스 음대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지만 렌트비와 생활비가 너무 비싸 죽도록 고생했다는 테너 이용훈. 독일로 오디션을 보러 가는데 부인이 100불인가 줘서 1주일 동안 닭 한 마리 구입해 버티었다고. 호텔은 오페라단에서 잡아줬지만 식사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데 물가 비싼 독일이라 외식이 불가능했다고. 무대에 올라 오페라 아리아 불러야 하는데 배 고프면 어떻게 불러. 이용훈도 고생 많이 했구나. 가난이 참 서럽지. 누가 명성 높은 레스토랑 싫어할까. 돈이 없으니까 참고 견디고 살지. 지금은 세계적인 오페라단에서 활동하는데 코로나로 공연이 취소되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가끔씩 닭죽을 끓이는데 그때마다 이용훈 테너가 생각난다.
지옥과 천국의 두 가지 색채를 갖는 뉴욕에서 나 역시 지옥과 천국의 향기를 느끼고 산다. 세계적인 문화 예술의 도시라서 문화면은 천국이고 렌트비와 물가 비싸서 생활면은 지옥 할아버지다. 요즘처럼 뉴욕이 잠들어버리면 문화면도 좋다고 말할 수도 없지. 공연 천국인데 공연을 볼 수 없으니까.
한국 추위와 뉴욕 추위가 다르다. 추위가 공포란 것도 뉴욕에 와서 알게 되었다. 뉴욕에 도착한 첫해 가을 주인이 난방을 안 해줘 얼마나 춥던지! 결국 주인과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이사를 했는데 집 구하기는 얼마나 어렵고. 다른 나라에 왔으니 장님인데 아는 사람도 없고 뭐든 스스로 찾아야지. 뉴욕 롱아일랜드에는 아파트가 귀하다. 아... 또, 서비스 요금 비싸니 직접 포장을 해야 하니까 공부하고 살림하면서 이삿짐을 싸니 눈물이었지. 빈 박스도 사면 비싸니 마트에 가서 찾아서 차로 운반하고 개미처럼 준비해 어렵게 이사를 하고 이삿짐 정리도 안된 상황에 두 자녀랑 함께 바이올린 선생님 만나러 롱아일랜드에서 기차를 타고 줄리아드 학교에 갔다.
펜스테이션 역에 내렸는데 낯선 곳이라 어리둥절하는데 아이스하키 장비를 든 부자를 보면서 뉴욕 문화가 참 다르구나를 느꼈다. 당시는 로컬과 익스프레스 지하철도 몰라 익스프레스를 타니 72가 역에 내려 바이올린 선생님에게 전화를 해서 어디가 줄리아드 학교냐고 물었지. 낯선 도시 맨해튼이 익숙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나. 처음부터 맨해튼에 살았다면 그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줄리아드 학교에서 무료 공연이 열린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고 매일 공연 보러 나들이했는데 코로나로 그만 뉴욕이 잠들어 버려 슬픈데 줄리아드 학교에서는 가난한 내게 기부금을 내라고 자주 연락이 온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맨해튼에 살면서 기부금을 낼 정도라면 얼마나 좋을까. 링컨 센터와 카네기 홀과 메트 뮤지엄 등에 가면 기부금 낸 명단자 이름들이 벽에 적혀 있다. 뉴욕에 돈 많은 귀족들이 얼마나 많이 살아. 뉴욕에서 거리 바닥에서 살지 않은 것도 감사하고 살아야지. 비싼 렌트비가 눈물이지.
변함없이 일요일에도 식사를 하고 맨해튼에 갔다. 집 근처 시내버스 정류장에는 시내버스가 오지 않아서 멀리 떨어진 곳을 향해 걷는데 나처럼 시내버스 기다리다 포기하고 걷는 내 앞의 여자는 자꾸 뒤를 돌아보며 혹시 버스가 오나 확인하지 뭐야. 시내버스가 오지 않을 때는 미련 없이 포기해야 하는데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봐. 뒤를 돌아보면 뭐해. 마음만 상하니 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시내버스를 탔는데 잠시 후 한인 교포 두 명이 탑승하는데 할아버지에게 인상을 쓰며 마스크 착용하라고 말하는 기사님. 뉴욕 교통 카드 대신 동전을 집어넣다 기사 얼굴을 보고 미안한 표정으로 호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착용하더라. 자리에 앉아서 두 분이 한국어로 뭐라 뭐라 하니 한국사람이란 것을 알아챘지. 요즘은 중국인인지 한국 교포인지 알 수가 없다.
플러싱 지하철역에서 7호선을 타고 달리다 평소와 달리 미드타운 그랜드 센트럴 역에 가는데 아주 큰 검은색 강아지를 데리고 탄 승객을 바라보는데 잠시 후 에콰도르 거리 음악가가 나타나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스페인어로 부르니 무슨 내용인지 모르나 슬픈 가락이었지. 오래전 7호선에서 만나 이야기를 잠시 했던 가수인데 그는 날 기억하지 못하고 난 그를 기억하고.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과 자주 이야기를 하지 않은데 그날 무척이나 슬픈 표정을 지어서 우연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뉴욕에 아주 오래전 이민 왔는데 이혼하고 신발 수선하다 나중 거리 음악가로 변신했다고.
에콰도르 하면 생각나는 조각가. 오래전 카네기 홀에서 공연 보려고 창밖을 보면서 커피 마시는데 옆에서 식사하던 중년 남자가 말을 시켰다. 혹시 바다 좋아해요? 바다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지. 화장기 없는 늙어가는 날 보고 말을 시키면 난 웃는다. 잠시 후 공연 보러 가요, 하면서 웃었지.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니 조각가란다. 에콰도르에서 왔다고. 난 한 번도 에콰도르에 여행 간 적이 없는데 약간 궁금도 하다. 뉴욕의 낡은 빌딩 보수 공사를 한다던 조각가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슬픈 노래 듣다 그랜드 센트럴 역에 내려 아름다운 크라이슬러 빌딩도 쳐다보고 나의 비밀 아지트에 가서 놀다 집에 가려는데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요즘 코로나로 화장실이 귀해 슬프지. 미드타운 공중 화장실은 브라이언트 파크가 좋은데 도착하니 줄이 만리장성처럼 길더라. 오래오래 기다려 화장실에 다녀오고 브라이언트 파크도 잠시 구경하는데 너무나 썰렁한 분위기라서 타임머신 타고 7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었지. 뉴욕은 연말 분위기가 좋은데 왜 그리 이상했을까. 코로나 때문인가 보다.
엉터리 과학자 말을 믿을 수도 없고 말이 이랬다 저랬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갈수록 변이 되어가고 이미 만든 백신이 변이 된 바이러스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누가 알아. 백신을 이제 맞기 시작하나 최소 6개월 1년 10년이 지나야 결과가 어떤지 알지. 몸속에서 무슨 반응이 일어난 지 우리가 어떻게 아냐고. 몰라. 독감 백신 맞아도 독감에 걸리는 것은 독감도 변이가 많은 코로나 바이러스 종류. 변이가 많은 독감! 코로나 19도 마찬가지! 코로나 기사를 읽으면 머리만 복잡해졌다. 읽으면 읽을수록 의문점만 든다. 코로나는 언제 사라질까. 코로나 전쟁을 하니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커지는 뉴욕. 10년 전에도 양극화 현상이 심했다고 하는데 그때는 지금에 비하면 훨씬 더 좋았나 봐. 가난한 서민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물가는 하늘로 올라가고 날씨는 춥고... 인생은 고해야. 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