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동백꽃. 장미

by 김지수

2021년 1월 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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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파트 거실은 한기가 돈다. 나무 바닥이 얼음 같은데 왜 난방을 따뜻하게 해주지 않은지 몰라. 기온이 뚝 떨어지니 마음의 온도도 낙하산을 타고 내려간다. 럭셔리한 공간은 아니더라도 최소 몸이 편할 정도 난방은 들어와야 하는데 개인 난방도 아닌데 어떡하라고. 벽난로 켜놓고 즐거운 시간 보내는 별장이라도 상상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내 마음의 주인은 나 자신인데 마음은 가끔은 하늘나라로 가끔은 지옥으로 떨어지니 이상하지.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을 붙잡으려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데 요즘 맨해튼 나들이를 하지 않으니 답답해서 자주 동네 공원에 산책을 하러 간다.


맨해튼에 가면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태양 같은 에너지가 생기는데 요즘 집에서 지내니 나의 모든 에너지가 사라졌나. 너무 추운 날이라 맨해튼 나들이가 겁난다. 몇몇 갤러리에서 전시회 보러고 연락이 왔는데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병이 들 거 같아. 가만히 앉아서 잘 지낸 사람도 있는데 나와는 거리가 우주처럼 멀다. 사람은 타고난 대로 살아야지 안 그러면 병이 난다. 이 복잡한 상황 속에 내가 아프면 지옥으로 추락하니 내 건강은 스스로 지켜야지. 누가 내 건강을 지켜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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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체감 온도가 영하 8도. 전방에서 살 때는 영하 16-20도 기온에 적응하고 살고 젊을 적에는 추운 날도 잘 견디는 편이었는데 나이 드니 따뜻한 공간이 좋다. 정말이지 줄리아드 학교가 그립구나. 귀족 학교는 여름옷을 입고 다니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로 난방이 잘 되니 좋고 천재들의 음악도 무료로 감상하니 귀족도 아닌데 귀족 같은 생활을 했는데 잠든 뉴욕은 언제 깨어나 자유롭게 공연을 보러 다닐까.







복잡한 일로 마음이 무거워 맨해튼 나들이도 하지 않고 집에서 지내며 하루에 두 번씩 호수에 가서 산책을 하며 사진 작업을 하니 하루가 금방 간다. 시간은 무얼 하든 잘도 흘러가. 아침 너무 추워 두 켤레의 양말을 껴신고 부츠를 신고 공원에 갔는데 슬프게 갈매기와 기러기 한 마리도 안 보여 밋밋한 호수 풍경을 보여주니 섭섭한 마음 그지없었다.


너무 추워 두 손은 외투 호주머니 속에 넣고 걸으며 예쁜 풍경이 되겠다 싶으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데 손이 시려 혼났다. 내 친구들이(갈매기와 기러기들) 없으니 그냥 집에 돌아가려는 순간 모네 그림 같은 호수 빛을 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날 이웃집 뜰에 핀 동백꽃도 보러 가고 홍매화꽃? 이 피어 반갑기도 하는데 한겨울 꽃이 피니 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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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서 산책하고 집에 돌아와 식사 준비하고 먹고 치우고 다시 호수에 산책하러 가니 갈매기와 기러기들이 돌아와 반가웠다. 추운 겨울날 어디로 가서 다시 호수로 돌아오는지 궁금한데 물어볼 수도 없다. 갈매기 언어를 배워야 할까. 매일 같은 시각에 산책하는 빨간색 외투를 입은 할머니도 만났다. 동네 주민들은 호수에서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 눈치다. 애완견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도 있고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고 혼자서 산책하는 사람도 있다.


두 번째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역시 사진 작업을 하면서 토요일 오후를 보냈다. 좋아하는 일에 열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지만 요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종일 사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은 뒤로 미룬 채. 정신 차려야 하는데 왜 마음이 그네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지 몰라. 사는 동안 힘든 일도 무진장 많아도 마음 하나로 버티고 살았는데. 마음이 무너지면 큰일 나지. 마음 하나 붙잡고 평생 버티고 살았는데. 얼마나 오래 고독하게 사는지. 내 사랑하는 친구들 달님과 해님과 새들과 나무와 꽃과 벗 삼아 세월을 보낸지도 꽤 되어간다. 학창 시절 윤선도의 '오우가'를 별생각 없이 읽었는데 나도 자연과 벗 삼아 세월을 보내고 있구나. 빨리 코로나 전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 텐데 언제 끝날지 아직도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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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가/윤선도


나의 벗이 몇인가 헤아려 보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이 밝게 떠오르니 그것은 더욱 반가운 일이로다.
나머지는 그냥 두어라. 이 다섯 외에 더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구름의 빛깔이 깨끗하다고 하지만 자주 검어지네.
바람 소리가 맑다지만, 그칠 때가 많도다.
깨끗하고도 그칠 때가 없는 것은 물 뿐인가 하노라.

꽃은 무슨 까닭에 피자마자 쉬이 져 버리고,
풀은 또 어찌하여 푸른 듯하다가 이내 누른 빛을 띠는가?
아마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따뜻해지면 꽃이 피고, 추워지면 잎이 떨어지는데,
소나무야, 너는 어찌하여 눈서리를 모르고 살아가는가?
깊은 땅 속(혹은 저승)까지 뿌리가 곧게 뻗은 것을 그것으로 하여 알겠노라.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라기는 누가 시켰으며,
또 속은 어찌하여 비어 있는가?
저렇고도 사철 늘 푸르니, 나는 그것을 좋아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다 바추니
한밤중에 광명이 너보다 더한 것이 또 있겠느냐?(없다)
보고도 말을 하지 않으니 나의 벗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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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 없어서 토요일 브런치는 닭죽을 끓여 먹었다. 닭 반마리를 큰 냄비에 넣고 푹푹 고았지. 기운이 없을 때 우리 가족이 즐겨 먹는 메뉴. 날씨가 추우니 몸과 마음이 힘든데 냉장고에 든 김치 맛은 아주 좋아. 두 자녀도 함께 닭죽을 맛있게 먹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겨울 햇살은 변덕쟁이. 아주 잠시 예쁜 햇살을 보여주고 금방 떠난다. 새들의 노래 듣고 초승달과 겨울 해님 보고 호수에서 산책하고 화사한 동백꽃과 아가 얼굴 같은 장미꽃도 보며 하루가 지나갔다. 호수 빛처럼 내 마음도 예쁜 빛으로 물들면 좋겠다.


너무 바빠 이메일을 읽을 시간도 없네. 밀린 기록도 해야 하는데... 냉동고 같은 집에 살다 내 마음도 얼어붙으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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