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5 월요일
새벽에 깨어나 설렘 가득 안고 해님이 깨어나길 기다렸다. 매일매일 고운 옷을 입고 지상에 환한 빛을 드러내는 해님. 아주 잠시 아름다운 여명의 빛을 비추다 사라져 버리니 찰나를 놓치면 다시 하루를 기다린다. 곱디 고운 옷을 입고 날 찾아왔더라. 초록빛 빨강 빛으로 변하는 신호등 보며 붉게 타오르는 일출을 보며 내 마음도 환해졌다. 비록 삶이 복잡하고 힘들더라도 기쁨의 샘물을 마시려고 다짐한다.
거실로 돌아오니 딸이 스마트 TV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있었다. 언제 들어도 예쁜 바이올린 곡을 아들이 중학교 시절 레슨 받아 매일매일 들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아들이 유치원 시절부터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니 엄마 역할이 무척 힘들었는데 중학생이 되어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니 기쁨이 넘쳤다. 처음 시작할 때는 소리 내기도 어려운데 매일매일 꾸준히 연습을 하면 세월이 흘러가면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참고 견디는 세월이 힘들지만 열매는 달콤하다. 삶도 그러겠지. 추운 겨울날을 잘 견디어야 눈부신 봄날을 맞이할 것이다.
멘델스존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뉴욕에 와서 니즈마 축제에 참가할 때 그 곡으로 오디션을 볼 때 그 곡을 연주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이 롱아일랜드 서퍽 카운티에서 살 때 니즈마 축제에 등록했는데 주인이 난방을 안 해줘 뉴욕에 온 지 6개월 만에 나소 카운티로 이사를 했다. 니즈마 축제 당일 정해진 시간에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아들 이름이 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
뉴욕에 와서 처음으로 참가했는데 불상사가 발생했다. 무슨 일인가 확인하니 아들이 전학을 해서 나소 카운티에 등록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이라서 당연 몰랐다고 하니 선생님이 담당자와 토론한 후 말해준다고 기다리라고 하셨다.
낯선 곳을 찾아가는 것도 무척 싫어하는데 아들이 참가하는 행사라서 즐거운 마음으로 갔는데 도착하자마자 엉뚱한 일이 일어나 놀랐다. 얼마 후 선생님이 찾아오셔 오디션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다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원본 악보를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고. 한국에서 레슨 받을 때 대개 복사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뉴욕 니즈마 축제 규정은 달랐다. 혹시 선생님께서 악보 가지고 계신가 물었지만 없다고. 우리에게 악보를 구해오란다. 지리로 모른데 어디서 사 오라는 것인지. 그것도 다음 날도 아니고. 악보 문제로 오디션 시간은 저녁 늦은 시간으로 조정했다.
내비게이션도 없는 차를 타고 달려 악보를 파는 가게에 도착했다. 영화 같은 순간이었지. 음악 선생님에게 주소를 물어 찾아왔어. 낯선 고속도로를 달리니 심장이 덜덜 떨렸다. 어렵게 도착했지만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니까 세 번째 문제였다. 우리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악보를 찾는다고 말하는데 주인이 우리 발음을 알아듣지 못했다. 어쩌란 말이냐. 한국식 영어 발음을 알아듣지 못하니 우리 마음도 무척 답답했고 결국 종이에 작곡가 이름을 써서 악보 있냐고 물었다.
정말 어렵게 악보를 구해서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 오디션 열리는 학교에 도착했지만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20대 중반부터 운전하기 시작했지만 운전을 좋아하지 않고 특히 낯선 도로 달리는 것을 싫어한다. 니즈마 축제 보기 위해서 007 영화 촬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 복잡한 날 아들은 니즈마 축제에서 100점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재능이 많다고 들었지만 보통 아이들처럼 연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이다.
월요일 아침은 어제 보다 더 기온이 올랐지만 여전히 추운 날이었다. 집에서 핫 커피와 함께 잠깐 책을 읽을 무렵 뉴욕 관광청에서 이메일을 받았다. 25일부터 31일 사이 뉴욕 레스토랑 위크 축제가 열린다고. 가격은 20.21불이었다. 코로나로 축제가 열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작년에는 축제가 열리지 않았다. 가격이 저렴하니 좋은데 알고 보니 테이크 아웃. 갈수록 레스토랑 위크 식사비가 인하된다. 그만큼 보통 뉴요커들 삶이 팍팍하고 힘들다는 말이겠지. 레스토랑에 찾아가는 이유는 근사한 분위기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인데 테이크 아웃. 추운 날 테이크 아웃하면 어디서 식사를 해야 하는지. 맨해튼 실내 영업을 안 하니 갈 곳도 없는데. 거기에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란다. 두 자녀와 함께 이용해 보려고 찾아보다 시간만 소비하고 예약도 하지 못했다. 할 일도 무척 많은데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
브런치를 먹고 호수에 산책하러 갔다. 매일 루틴이 되어가는 호수 산책은 즐거움과 기쁨을 준다. 새들의 노래 들으며 파란 하늘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늘 그 자리에 있는 호수 풍경은 놀랍게도 매일 다르다. 내 눈이 의식하지 않으면 같은 풍경일 텐데 자세히 보면 다르다.
겨울 해님은 구름과 숨바꼭질을 한다. 겨울 해님의 신비로움도 늦게 알았다. 보스턴 미술관에서 봤던 밀레 그림에서 본 바로 그 빛이 겨울 해님 같다. 여름 태양과 달리 겨울은 부드럽고 온화한 빛이다. 마치 달빛처럼 느껴진다. 두 눈을 뜨고 살았는데 늦게 겨울 해님의 매력을 알았으니 장님으로 살았을까.
해님과 바람에 따라 호수 빛도 다르다. 추운 날이라 호수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흰 기러기도 추운 날이면 안 보인다. 추위를 싫어하나. 갈매기떼 하늘을 날면 근사한 풍경이 되고 내 마음도 하늘을 자유롭게 난다. 늦게 동네 공원 호수도 참 아름다운 곳이란 것을 알았다. 맨해튼 센트럴 파크와 브루클린 식물원과 브롱스 뉴욕 식물원과 웨이브 힐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 동네 호수. 항상 내 곁에 있었는데 뒤늦게 아름다움을 깨달으니 지각생이다. 집에서 가까워 산책하기도 좋은데 왜 그동안 몰랐을까. 마음이 없으면 안 보인다.
오후 3시경 아들과 함께 동네 공원에서 조깅을 하고 돌아와 메디치 가문 영화를 봤다. 이탈리아 피렌체 배경인 메디치 가문 영화를 2년 전 보스턴 여행 가서 딸네 집에서 봤다. 2년이란 시간이 금세 흘러갔다. 자본주의가 바로 메디치 가문에서 유래되었다고 맨해튼 스트랜드 서점에서 책을 펴고 읽다 알게 되었다. 어제도 잠시 정치적인 내용의 영화를 봤는데 메디치 가문 영화가 더 재밌다. 수많은 예술가들도 후원했던 메디치 가문 영화는 셰익스피어 작품처럼 드라마 같더라.
하루가 정말 빨리 지나간다. 잠시 책 읽고 호수에서 산책하고 조깅하고 영화 보고 사진 작업하고 집안일하고 글쓰기 하고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