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노인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 배움의 열정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지구촌 어느 나라나 고령화 사회로 몸살을 하고 노인 복지 정책에 많은 관심이 갖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다. 더더욱 젊을 적 열심히 일하고 은퇴하면 당연히 안락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하나 경제적인 상황, 건강과 심리적 안정 등의 문제로 불행한 노년 생활을 보낸 경우도 많다. 갈수록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니 노인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점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지나 뉴욕에서 살며 보고 느낀 노인들 문화 중점으로 글을 적어보고자 하나 복지 정책보다는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대로 정리하고자 한다. 지금 한국은 예전과 달라졌을지 모르나 내가 한국에서 지낼 당시 한국 노인들이 공연과 전시회를 보러 가고 책을 읽는 문화를 본 적이 없다. 명성 높은 음악가 장한나와 정경화의 연주회를 보러 가도 노인들을 만난 적은 거의 없다. 특히 남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음대 교수로 재직하는 분은 공연을 보러 오시나 할아버지나 중년 층 남자분이 찾아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뉴욕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문화적 환경이 다른 것도 그런 차이점 가운데 하나에 속할지 모른다. 뉴욕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전시회와 공연을 볼 수 있다. 또, 무료 공연도 자주 열리는 문화 환경이 한국과 많이 다르다. 링컨 센터와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보면 공연을 보러 온 청중 들 가운데 상당수 남자분이 많다. 한국에서는 모임에 가면 남편과 자식과 손자 이야기를 주로 하고 쇼핑과 여행 등이 관심 분야다. 링컨 센터와 줄리아드 학교에서 노인들 하는 얘기를 들으면 무슨 공연 봤니? 어떤 음악가 좋아해? 너 이 전시회 봤니?라고 한다. 내가 느끼는 뉴욕 노인들은 외모와 달리 아주 젊고 마치 20대 대학생처럼 느껴진다.
뉴욕은 세계 문화 예술 중심지고 그래서 뉴욕 시민들이 받는 혜택은 말할 것도 없이 아주 좋고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오니 직장을 찾는 젊은이들에게는 살인적인 경쟁을 통과해야 해서 살기 어렵다고 하나 은퇴 후 여가 생활하기에는 천국인 도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뉴욕에 오래 거주해도 문화 예술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그냥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뉴욕에서 문화생활에 관심을 갖는 한인들은(중장년층) 거의 만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일부 상류층은 골프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한인들은 맨해튼 문화에 대해 잘 모른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수년 전 뉴욕 타임스에 보도된 기사가 있다. 뉴욕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커뮤니티 퀸즈 맥도널드에서 싼 커피를 주문하고 장시간 머물러 맥도널드 측에서는 영업 방해라는 입장에서 경찰을 출동시켜 노인들을 내쫓아 물의를 일으켰다. 우연히 거리와 버스에서 만난 한인 할머니 얘기를 들어도 맥도널드만큼 좋은 장소는 없다고 한다. 맥도널드에 시간을 보내는 한인 노인들이 있는 광경도 자주 목격했다. 1불 + 세금을 주는 커피값보다 더 저렴한 커피는 미국에서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맨해튼에 가면 놀라운 노인들을 보게 된다. 한국과 달리 남의 눈에 띄지 않은 그저 평범한 옷차림으로 공연과 전시회를 보거나 북 카페에서 책과 잡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심지어 휠체어를 타고 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보러 온다. 뉴욕시의 장애인을 위한 정책도 발달되어 카네기 홀이나 링컨 센터에 휠체어를 타고 공연을 보러 올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놀랍다.
뉴욕의 대표 반스 앤 노블 북 카페에 가면 노인이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종일 시간을 보낸다. 거의 매일 오는 분도 계시고, 돋보기를 사용할 정도로 시력이 안 좋으나 책을 읽는다. 또, 가방에 사과와 샌드위치를 담고 오신 분도 계신다. 북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이면 책의 나라로 긴 여행을 떠난다.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문화 혜택이 주어진다. 예를 들면 카네기 홀에서 열리는 일부 공연 가운데 꽤 공연료가 비싼데도 시니어는 10불에 공연표를 구할 수 있다고 카네기 홀에서 만난 중국인 이민자에게 들었다. 만 65세가 지나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많은가 보다. 아주 많은 단체에서 시니어에게 주는 할인 혜택이 있고 극장 역시 마찬가지다.
뉴욕 시립대에 속하는 John Jay College of Criminal Justice에서는 노인을 위한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학기별로 등록을 하고 학기별 수강료가 뉴욕 시민인 경우 65 불이고 다른 주에서 온 분은 560불이라고 한다. 수년 전 마리아 칼라스 이벤트를 보려고 방문해서 처음에 유료인 줄 몰랐으나 나중 알고 보니 시니어를 위한 특별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철학과 음악 등 다양한 수업을 받고 휠체어를 타고 온 분도 계셨다.
노인들 열정도 대단한 것을 느낀다. 카네기 홀에서 만난 말레이시아에서 이민 온 70세가 넘은 할머니 이야기에 따르면 오래전 뉴욕에 이민을 오셔 남편은 코넬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 활동을 하다 퇴직하고 지금 콜롬비아 대학에서 유료 교양 수업을 듣는다고 하셨다. 그 할머니는 뉴욕에 유학 와서 대학원에서 사회 복지학을 공부했으나 미국에서 일한 적은 없다고 하셨고 지금은 뉴욕이 아닌 다른 주에서 손자들을 키우며 지내는데 가끔 뉴욕에 와서 카네기 홀, 링컨 센터, 뉴욕 시티 센터 등에 가서 오페라와 뮤지컬과 댄스와 뉴욕 필하모닉 공연을 본다고. 며칠 동안 휴가를 받아서 뉴욕에 오면 매일 공연을 보러 다닌다고. 비록 나이 든 분이지만 마음은 20대 청춘처럼 보였다.
뉴요커 열정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셰익스피어 연극이 있다. 매년 센트럴파크에서 열리는 셰익스피어 연극은 정말 인기가 높고 그만큼 무료 공연표를 구하기가 어렵다. 카네기 홀에서 만난 오페라를 아주 사랑한 분은 맨해튼 링컨 센터 부근에 사시는데 매년 연극표를 구하러 접이식 의자를 가지고 갔으나 최근에야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그만두었다고. 아침 6시나 7시경 집에서 출발한 적도 많다고. 공연표는 정오경 나눠주고 정말 어렵지만 많은 뉴욕 시민들이 사랑하는 축제고 수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다. 노인들이 수 시간 동안 기다려 연극 표를 받아 공연을 보니 놀랍기만 하다.
또한 뉴욕은 도서관, 박물관, 음악 학교 등에서 수많은 공연을 열고 많은 노인들이 공연 예술을 즐긴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재즈)와 금요일 오후 5시 반경(포크음악) 공연이 열리는 아메리칸 포크 아트 뮤지엄(American Folk Art Museum)에 가면 상당수가 노인들이고 휠체어를 타고 온 분도 많다.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는 분도 계신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반에 무료 공연을 여는 링컨 센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 역시 노인들이 많이 와서 공연을 보곤 한다. 그리고 오페라, 뮤지컬, 재즈, 앙상블 공연 등을 무료로 볼 수 있는 링컨 센터 공연 예술 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 for the Performing Arts) 역시 노인들이 사랑하는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