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6 일요일
초여름인데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두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디로 가야 할지 인터넷에서 찾다 잠들었고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하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갔다. 타임 스퀘어 역에서 환승 펜스테이션 역에 내려 약간 망설이다 롱아일랜드 오이스터 베이에 가는 기차표 석장을 구입했다.
태양의 열기 가득한 맨해튼에 갔으니 롱아일랜드에 가니까 시간이 촉박하지만 타임 스퀘어와 브라이언트 파크도 잠깐 구경하고 5번가 역에서 로컬 7호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와 다시 시내버스를 기다려 환승하고 집에 도착했다.
비빔면으로 간단히 식사하고 자메이카 역에 가는 시내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태양의 열기를 온몸에 받으며 걸었다. 집에서 자메이카 역까지는 약 1시간. 자메이카 역에서 롱아일랜드 오이스터 베이까지도 약 1시간. 그러니까 두 시간 정도 걸린다. 혹시나 기차역에 늦을까 봐 노심초사했지만 다행스럽게 늦지 않게 도착 기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미리 주문한 통닭 한 마리와 체리와 스낵을 가방에 담고 출발했다. 주말 기차는 텅텅 비어 있으니 좋았다. 뉴욕 교통비가 저렴하다면 자주자주 여행을 다닐 수도 있을 텐데 기차 티켓값이 저렴하지는 않아서 눈을 감고 세월을 보냈다.
우리 가족이 롱아일랜드 제리코에 살 때 아들과 함께 오이스터 베이 치매와 알츠하이머 전문 양로원에서 발런티어를 하다 알게 된 오이스터 베이 해변. 양로원에서 만난 방글라데시 출신 여직원이 자메이카 역에서 매일 오이스터베이로 기차를 타고 통근한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오이스터 베이 해변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 후 가끔씩 찾아가곤 하는 바닷가였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의 추억이 머문 해변이다. 가끔씩 그리웠다.
롱아일랜드 바다는 뉴욕시 해변과 달리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라서 좋다. 또 동네 주민만 이용하는 프라이빗 비치도 있어서 뉴욕에 와서 충격을 받았다. 프라이빗 비치는 일반인 출입 금지다. 그러니까 백만 배 더 깨끗하고 좋다. 오래전 아무것도 모르고 프라이빗 비치에 들어갔는데 주민이 내게 퍼블릭 해변으로 가라고 해서 떠났다. 미리 알고 간 것은 아닌데 참 어색한 순간이었다.
롱아일랜드는 차 없이 지내기 어려운 곳. 미국은 한국과 달리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다. 오이스터 베이는 요트들이 춤추는 곳이다. 뉴욕에도 요트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놀랍기만 하다. 멋진 승용차에 해변 파라솔과 비치용 의자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온 가족들이 많은데 우리 가족과 정 반대의 입장이라서 두 자녀에게 참 미안했다. 땡볕 아래 해변가를 걸으며 지난날을 돌아보니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 동안 한 번도 그곳에 찾아가지 않은 것을 깨닫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그만큼 이민 1세가 안정하기는 어렵다.
두 자녀 데리고 와서 바캉스를 떠난 기억도 없다. 딸이 대학 졸업 후 보스턴 캐임브리지 연구소에 일할 때 동생과 엄마를 초대해서 가끔씩 보스턴 여행을 갔다. 또, 미국 동부 최고 휴양지 케이프 코드와 뉴포트 여행 역시 딸의 제안이었고 거의 대부분의 경비는 항상 딸이 지출했다. 딸이 아니라면 빛이 들지 않은 지하 동굴에서 세상모르고 살뻔했다. 미국은 빈부 차이가 극심하고 영화보다 백만 배 더 멋지게 산 부류도 많다.
석양이 질 무렵 바닷가에서 산책하면 좋을 텐데 플러싱으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과 맞지 않아서 황홀한 석양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움을 남긴 채 기차를 타고 퀸즈 자메이카 역으로 돌아와서 우버 택시를 불러 집으로 돌아왔다. 택시비 역시 딸이 지불했다. 엄마는 항상 아끼니 딸이 조심스럽게 택시를 이용해도 되냐고 물었다. 모두 피곤한 상태라 택시를 타자고 말했다.
오이스터 베이 기차 여행은 나를 돌아보게 해서 뜻깊었다. 참으로 복잡했고 슬픈 일도 많았던 지난 10년.
조금만 도움을 받아도 한결 가벼울 텐데 황금이 반짝반짝 빛나는 자본주의 끝판왕 뉴욕에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뿌린 눈물이 얼마나 많은지. 지금까지 뉴욕에서 살아남은 것도 기적 같은 일이다. 삶이 무척이나 복잡하고 슬프지만 남은 시간 최대한 더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