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넌 용기 있다"/ 가고시안 갤러리

현대 미술가 데미언 허스트 전시회

by 김지수

2022. 2. 2. 수요일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는 도중 뉴욕의 명성 높은 다니엘 셰프가 밸런타인데이 식사하러 오라고 연락을 해서 웃었다. 마음이야 가고 싶지. 지금 '뉴욕 레스토랑 위크'도 찾아가지 못하는데 식사비가 엄청 비싼 특별한 날 어찌 가겠어.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나야 가능할까.


잠시 후 제임스 코한 갤러리에서 대표 작가가 베니스 비엔날레 2022에 참가한다고 연락을 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보러 여행 떠나면 좋겠다. 콘돌라 타면서 아코디언 연주 들었던 때가 언제였나. 베니스 사육제가 열린 곳이라 그런지 상점에 파는 가면들이 너무 예뻐 사고 싶은데도 눈으로만 봤지. 그때 여행객을 안내했던 단발머리 성악가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그때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린지도 몰랐지.


맨해튼 아지트에 도착해 식지 않은 커피라 싱글벙글 미소 지으며 커피 한 잔 들고 테이블에 갔는데 그만 쏟아버렸다. 아, 순간이었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쏟아진 커피를 휴지로 닦으며 새로 커피 구입해야 하나 머릿속이 무거워지는데... 그럼 1.5불을 더 내야 하는데...


내 마음을 읽어버렸나. 옆 테이블에 앉은 몇몇 직원들이 날 보고 웃으며 새로 커피 먹으라고. 공짜라고 덧붙였다. 자주 이용한 곳이라 직원들이 내 얼굴을 안다. 몸이 피곤했을까. 손에 든 커피가 미끄려졌는데 테이블과 의자에 쏟아졌다. 다행스럽게 겨울 외투에 묻지 않았다.


대충 닦아내고 새로 커피를 종이컵에 담아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때 낯선 할아버지가 가까이 와서 말을 걸었다.


_무슨 책 읽어요?

_왜요? 비밀이에요.

_요즘 사람들 책을 읽지 않아 책을 읽는 사람 보기 드문 세상이에요.

_책 좋아하세요?

_시 쓰는 시인이에요. 돈을 벌지는 못해요. 다양한 일을 해요.

_어머,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그렇게 낯선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뉴욕시 큐니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는 할아버지는 브루클린 프로스펙트 파크 근처에 사는데 다양한 일을 했다고 하며 아시아 문화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계셨다. 노인을 존중하는 문화가 참 좋은가 보다. 미국은 노인을 존중하지도 않고 일자리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불평하셔 한국도 노인을 존중하는 문화이긴 하나 아마도 뉴욕보다 더 직장 구하기 힘든 곳일 거라 짐작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본주의 미국은 오로지 돈, 돈, 돈... 하는 세상이라고. 자본주의 나라는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겠지. 사회주의 나라 쿠바 의료비도 저렴하고 평균 수명도 높고 여러모로 좋은 나라라고 하는데 난 쿠바 여행 사진만 봤지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어쩌다 보니 이상하게 처음 본 할아버지에게 이혼하고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왔다고 하니 놀란 토끼눈으로 날 바라보며 "넌 정말 용기 있다"라고 하셨다. 그런 말을 뉴욕에서 자주 듣는다. 뉴욕에서 만난 디자이너도 의사도 내게 같은 말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니 겁 없이 뉴욕에 왔다. 줄리아드 학교가 있어서 뉴욕에 오게 되었지만 아무도 내게 뉴욕에 대해 말해주지 않아서 잘 몰랐다. 극과 극의 색채를 갖는 뉴욕에서 얼마나 자주 울고 있는지. 삶이 얼마나 슬픈가. 슬픔과 절망과 아픔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 사는 우리 가족. 싱글맘 가족이 어렵다. 그런데 낯선 나라에서 싱글맘 입장은 얼마나 더 무겁겠는가.


할아버지는 내게 함께 센트럴 파크에서 산책하자고 말했지만 오후 3시 약속이 있다고 막 떠나려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암표상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_오늘 저녁 뉴욕 시티 센터에서 공연 있어요. 알고 있지요?


그는 내가 공연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만 보면 공연 이야기를 한다. 뉴욕 시티 센터에서 탭 댄스 공연이 열리나 저렴한 티켓 아니면 구입하지 않는다. 카네기 홀과 메트 오페라 등 저렴한 티켓을 구입해서 봐도 신용 카드 금액을 지불할 때는 깜짝 놀라기 때문에. 뉴욕 물가에 비해 굉장히 저렴해 매력적이지만 모으면 엄청 큰돈이 된다. 만약 뉴욕을 떠나게 되면 카네기 홀 공연과 오페라 공연은 너무나 먼 님이기 때문에 가끔 보곤 한다.


암표상인이 멋진 무스탕을 입고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 동안 렌트비를 내지 않았다고 하던데 돈을 많이 벌었나 보다. 그 옆에 앉던 크리스에게도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평소 아지트에서 커피 마시며 책을 읽는데 이젠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 곤란할 거 같아 약간 고민이 된다. 시간 있고 심심한 사람들은 뉴욕에도 한국에도 있는 듯. 함께 이야기하자고 하는데 난 무척이나 바쁜데 어떡하지.


사실 커피값이 비싼 카페는 꽤 많다. 하루하루 모이면 엄청 많은 금액이 되니 가장 저렴한 커피를 찾는다. 아주 오래전 링컨 센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서 오후 3-6시 사이 1불을 주고 커피를 사 먹고 책도 읽고 휴식도 하고 공연도 봤는데 지금 커피는 더 이상 제공하지 않고 공연도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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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를 떠나 지하철을 타고 첼시 갤러리에 갔다. 지난번 약속하지 않고 찾아가 바람맞은 가고시안 갤러리에 미리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명성 높은 가고시안 갤러리에는 늘 방문객들이 찾아온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작품을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호평과 악평을 동시에 받는 영국 출신 현대미술가 데미언 허스트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현대 미술 이해는 여전히 어렵다. 거의 매일 갤러리에 방문하지만.



DAMIEN HIRST

Forgiving and Forgetting

January 20–February 26, 2022
541 West 24th Street,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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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트기 전 새벽하늘도 바라보았다. 첼시에서 전시회 보고 하이 라인 파크에서도 산책하고 허드슨 야드 종점역에서 7호선을 타고 플러싱으로 돌아왔다.


행복 주머니에 할아버지 이야기와 첼시 갤러리 전시회와 첼시 하이라인 파크와 새벽하늘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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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하이 라인 파크 겨울 풍경



비록 삶이 한없이 애달프지만

매일 소소한 행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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