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삶
2022. 2. 1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갈 때 이메일로 부고 통지를 받아 충격에 휩싸였다. 이럴 수가! 믿어지지 않았다. 진즉 찾아뵈어야 했는데 삶이 복잡하단 핑계로 연락을 끊고 지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아주 많은 줄 알았다. 연구소에서 일할 때 인연이 된 분이다. 일찍 독일을 거쳐 뉴욕으로 이민 오셨단 분 아버지는 교수라고 말씀했다. 연구소에서 일할 때 가끔씩 커피를 내려 주시고 집에 초대하셔 직접 기른 채소를 넣어 함께 생선 회덮밥을 먹었다. 일본에서 뉴욕에 온 방문 여자 교수와 함께 자리를 했고 그때 독일인 생활력이 아주 강하단 말을 들었다. 추운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고 두터운 이불을 덮고 잔다고. 먼 나라에 살면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지만 알고 보면 다른 현실을 마주하기도 한다. 자주자주 찾아뵙고 힘들고 힘든 이민생활에 대해 들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후회가 밀려온다. 한국 방송국에서 은퇴한 프로듀서와 함께 플러싱 식당에서 식사를 한 게 마지막이었나. 내 남동생도 피디라고 하니 그분이 동생 이름을 물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삶이 참 허망하다. 수년 전 아들과 함께 북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아버지가 대학 병원에서 운명하셨단 소식을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하고 뉴욕에 돌아올 때 그때가 마지막이란 것을 몰랐다. 장녀가 이민 가방 들고 어린 두 자녀 데리고 뉴욕에 간다고 하니 충격을 받았다. 함께 지낼 때 더 잘해드렸어야 했는데 늘 부족한 딸이었다. 삶이 복잡하단 핑계가 전부였다.
죽음을 비켜갈 수는 없다.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게 즐겁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삶이 복잡하니 우울 나라에 퐁당 빠져 지낸 사람들도 많다. 매일 마음의 쓰레기를 버리며 마음 청소를 하는 게 해결책 아닐까. 산책하며 명상하며 운동을 해도 좋다. 난 산책하고, 다양한 이벤트 보고, 책 읽고, 운동하고, 사진 찍고, 글쓰기 하면서 마음의 우울을 걷어내고 즐겁게 지낸다. 예쁜 마음 깨끗한 마음이 행복의 비결이다. 괜히 남을 오해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복받치면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아지트에 들려 커피 한 잔 마실 때 크리스가 말을 걸었다. 오늘 바빠 바로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컬럼비아 대학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콜럼버스 서클에서 로컬 1호선에 탑승하고 116가 컬럼비아 대학 지하철역에 내려 교정에 들어갔다. 무사히 일을 처리해서 다행이었다. 혹시 퇴근했나 걱정했는데 막 떠나려는 참에 내가 도착했다. 하얀 눈 내린 대학 교정에서 지난번 봤던 빨간 새를 떠올렸다. 요즘 노래를 부르지 않으니 내가 먼저 보지 못하면 사진 찍기는 무척 어렵다. 왜냐면 새는 금방 멀리 떠나니까.
컬럼비아 대학에서도 자주 이벤트를 보곤 했고 요즘도 다시 연락이 오는데 여유가 없어서 이메일 제목만 보고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이 세워진 철학과 빌딩 앞에 갔는데 여학생이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원하는 구도를 보여주면서 꼭 그대로 찍어달라고. 철학과 빌딩과 조각상과 겨울나무도 담고 젊고 예쁜 그녀 모습도 담아달라고 말했다. 사진을 찍어주니 고맙다고 말하며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녀 핸드폰은 무척 오래된 구식이었다. 귀족들 자제들이 다니는 컬럼비아 대학에도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학생들도 많은 듯 짐작한다. 그녀 미소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거 같다. 일도 처리하고 행복한 모나리자 미소도 봤다.
하얀 눈으로 덮인 교정에서 걷다 쉐릴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 연세도 아마도 70대 중반. 연구소에서 부고 통지를 받은 분과 비슷할 거 같다. 공연 예술을 무척 사랑하는 쉐릴 할머니를 본 지는 코로나 전이다.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다. 컬럼비아대학에서 함께 공연도 보고 전시회도 보았다. 줄리아드 학교 공연도 볼 수 있으니 찾아올 듯한데 한 번도 뵈지 못했다. 혹시 천당에 여행 떠난 건 아니겠지. 하프시코드 음색 떠올리는 아름다운 11월에 할머니 생신이 있고 함께 링컨 센터에서 헝가리 오페라를 봤는데...
플러싱에서 맨해튼까지 교통 시간이 꽤 걸리지만 그냥 집에 돌아오기 아쉬우니 미드타운 갤러리에 방문했다. 아트 스튜던츠 리그 갤러리에도 메디슨 애비뉴 갤러리에도 방문해 잠시 작품을 감상했다.
2월 1일은 구정.
두 자녀가 한인 마트에 가서 조기와 두부와 나물과 목살과 귤을 사 왔다. 한국에서는 먹고 싶은 굴비와 생선회 등 상이 넘치고 넘쳤는데 뉴욕의 현실은 극으로 달라 늘 두 자녀에게 미안하다. 조기 한 마리 구워 된장국과 나물과 함께 식사를 했다.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안부 전화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