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7일 쓸쓸한 겨울날

아파트 욕조와 블라인드 소동

by 김지수

2022. 2. 7 월요일 흐림, 비


맨해튼에 가려고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아파트 관리소 사무소에 보내야 할 우편물이 가방에 보이지 않아서 황급히 집으로 가다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혹시 테이블 위 노트북 근처에 있나 물었지만 없다고 하니 집에 들어가 찾아보았는데 안 보였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게 이상해 다시 가방 안을 살폈다. 몇 번 찾으니 그제야 흰색 봉투가 보였다. 가방 안에 있는데 안 보였다니. 괜히 소동을 피웠다.


꼭 보내야 할 우편물을 잊고 지냈다. 문득 마감 기일이 생각나 전날 서류에 사인을 하고 하얀 봉투에 담아 우표를 붙였다. 삶이 복잡한가. 전과 다르게 자주 잊어버린다.


다시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는데 휴대폰이 안 보였다. 다시 집으로 달려가니 아들이 내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월요일 아침 허둥지둥 댔다.


그랬다. 전과 다른 나의 행동. 이유가 있긴 하다. 아침에 화장식 욕조가 막혀 수영할 정도로 물이 찼다. 한국 전쟁 전 완공 된 낡고 허름한 아파트는 영락없이 소설 배경 같다. 그럼 난 소설 주인공이 되는 건가.


아무리 조심해도 가끔씩 막히는 욕조. 물이 곧 넘칠 거 같아도 슈퍼에게 전화를 하면 바로 달려오지 않는다. 왜냐면 슈퍼는 내 개인 비서가 아니라서. 전화를 해서 스케줄을 잡는다.


욕조가 막히면 머리가 복잡하다. 괜찮아라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마음은 분명 스트레스를 받는 거 같다.


맨해튼에 갈지 말지 망설였다. 소동을 피운 덕에 외출 시간도 지체되고 여유가 없어 고민하다 시내버스에 탑승했다.


하늘은 내 마음처럼 잿빛. 우울한 멜로디가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맨해튼 아지트에 도착 커피를 마시려니 너무 식어 직원에게 새로 커피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냉커피에 가까울 정도였다. 미지근한 정도면 그냥 참는데 도가 지나쳤다. 마음도 냉랭한데 냉커피도 아닌 차가운 커피를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크리스는 아주 오래전 스페인에서 이탈리아에 여행 간 이야기를 즐겁게 했다. 스페인 아름다운 섬에도 여행 갔다고. 난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마드리드에서 잠시 머물렀다나.


수년 전 카네기 홀에서 만난 러시아에서 이민 온 할아버지 아드님이 스페인 마드리드에 살아서 여행 갔는데 너무나 좋았다고 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도 물가가 비싸 여행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그곳에 사는 로컬은 돈 안 들이고 즐겁게 사나 보다.


커피 한 잔 마시며 크리스와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좀 풀어졌다.



IMG_1573.jpg?type=w966
IMG_1574.jpg?type=w966
IMG_1576.jpg?type=w966 센트럴 파크 겨울 호수 풍경


잠시 후 지하철을 타고 센트럴 파크에 갔다. 평소와 달리 월요일 오후 고요했다. 호수는 입춘 이건만 아직 꽁꽁 얼어있었다.



IMG_1581.jpg?type=w966
IMG_1587.jpg?type=w966 센트럴 파크 안개 낀 겨울 풍경





IMG_1669.jpg?type=w966 뉴욕 플라자 호텔 지하철역 근처에서 담은 겨울 풍경



저녁 7시 반 경 아파트 슈퍼가 창문 블라인드를 설치해주기로 약속했다. 롱아일랜드에서 플러싱으로 이사 올 때 설치했는데 폭풍으로 부서져 진즉 새로 설치를 했어야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 작년 연말 세일할 때 구입하려다 다시 미루고 지난 1월 중순이 지나 인터넷에서 구입했는데 뉴욕에 눈폭풍이 오니 슈퍼가 무척 바쁘니 연락하지 않고 기다렸다.


남에게 부탁하는 일도 쉽지 않다. 어렵게 전화를 하고 날짜를 잡아 슈퍼가 월요일 저녁 오기로 했다.


아침 소동으로 충분하지 않았나 보다. 아들이 아마존에서 주문한 하얀색 블라인드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어렵게 슈퍼를 불렀는데 설치를 하지 못했다. 낡은 블라인드를 떼어내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새로 주문해야 했다.


혹시 리턴이 안되나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 아직 리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슈퍼는 낡은 블라인드를 창문에 걸지 않고 떠나버린 뒤였다.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전화를 했다. 새로운 블라인드 설치하기 전에는 헌 거라도 걸어야 하니까.


리턴하러 블라인드 6개가 든 박스를 들고 UPS에 가야 한다. 집에서 가깝지 않다. 리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내 삶이 복잡할 때는 조용히 지낸 편이 좋다.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일기는 나와 대화를 나눈 시간이다.


삶이 복잡하니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종일 기도를 한다.

창밖으로 비친 겨울나무와 회색빛 하늘은 수채화처럼 예뻤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월 6일 크리스티 경매장, 브라이언트 파크, 줄리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