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 파크 설경
2022. 2. 13 일요일
일요일 아침 깨어나 노란 유자차 끓여 마시려고 하얀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유자차가 거의 바닥이었다. 추운 겨울이면 유자차 마시면 좋은데 떨어진 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다고 한인 마트에 사러 갈 힘도 없었다.
며칠 봄날처럼 화사한 날씨였는데 일기예보대로 정말로 함박눈이 내려 믿어지지 않았다. 겨울이 떠나기 싫은 걸까.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 아지트에 가니 크리스가 먼저 도착해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식지 않은 커피 한 잔 들고 그녀 앞에 서자 "오늘 커피는 어때?"라고 물었다. 그녀도 아지트 커피가 항상 뜨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은 괜찮아"라고 말하며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나려 하자 한국어로 "안녕"하고 말하는 그녀 발음은 거의 한국인에 가까워 놀랐다.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난 이유는 단 하나 센트럴 파크 겨울 풍경을 보기 위해서. 하얀 눈이 1년 내내 내리지 않으니까 센트럴 파크 설경을 보고 싶다. 하얀 눈 내리면 좋은지 센트럴 파크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마음속 슬픔을 하얀 눈에 뿌리며 천천히 산책하다 눈 속에 핀 꽃을 보며 기쁜 마음으로 아이폰에 담는 순간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뉴요커 남자가 내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분이 원하는 대로 몇 장 담아주니 얼굴에 행복한 미소 지으며 고맙다고 하며 떠났다.
지난 2월 초 뉴욕에 눈폭풍이 올 때처럼은 아니지만 추운 날이었다. 하얀 눈 밟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오래오래 산책하고 싶은데 몸과 마음은 다르다. 90대 노인 화가가 매년 여름이 되면 그림을 그리는 쉽메도우는 닫아 버려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방문객들이 많았다.
안드레센도 셰익스피어도 베토벤도 만나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었다. 하얀 눈 옷 입은 조각상이 예뻤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지만 노트북이 말썽을 피웠다. 벌써 떠나려고 채비를 하는 걸까?
그럼 안되는데...
지상을 떠날 때 먼지가 될 텐데 삶의 무게는 왜 이리 무거울꼬
하얀 눈 녹을때 슬픔도 다 녹으면 좋겠다.
뉴욕 센트럴 파크 설경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