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소호에서 만난 여인

by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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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문득 소호에서 만난 여인이 생각난다. 여인이란 표현보다 어쩌면 할머니가 더 어울릴까. 아들과 함께 장 조지가 운영하는 머서 키친 레스토랑에서 식사 한 날 난 미리 도착해 소호 갤러리에 갔고 그곳에서 만난 분이다. 갤러리에는 아무도 없어 조용하고 좋았지. 혼자 천천히 전시회를 보다 누가 나오기에 물어봤지. 알고 보니 갤러리에서 일한 지 15년이 되었다고 그런데 놀랍게 연세가 79세. 내 눈에는 50대 정도 보이나 무척 건강해 보였다. 내게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을 만든 아티스트에 대해 조금 설명해 주고 그 가운데 90세가 넘은 분도 있다고 해 많이 놀랐고 다시 갤러리에 찾아오라고 하셨다.

맨해튼 노인들이 한국과 정말 많이 다름을 느낀다. 매일 갤러리에 가서 일하는 것도 아주 좋을 듯. 테이블 위에는 미술 잡지가 쌓여 있었다. 종일 조용한 갤러리에서 그림 구경하러 온 사람들 보고 아티스트들 만나 이야기하는 일상도 좋을 거 같고. 한국에 계신 친정 엄마 연세와 비슷한데 삶이 그리도 달라. 엄마는 건강이 안 좋아 불편하시다고 하셔 늘 마음이 무겁다. 이모도 무릎이 아파서 걷기도 무척 힘들어 삶이 삶이 아니라고 하고.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롱아일랜드에서 플러싱으로 이사 온 후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는 도중 내 몸이 평소와 달리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많이 아팠고 눈물이 흐를 것 같으나 꾹 참았다. 가끔 아코디언 연주 들려주는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내렸으나 난 계획대로 스테이트 아일랜드에 갈 수 있을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쪽 발은 거의 마비 증세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과연 붉은색 구슬이냐 파란색 구슬이야 하면서 고민하다 그냥 스테이트 아일랜드에 가기로 결정하고 몹시 불편한 몸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날 누가 날 봤으면 세상에 무슨 일이 있는데 저리 걸을까 했겠지. 한 걸음 걷기가 1만 보 걷는 것처럼 힘들고 아팠다. 7호선에서 내려 4/5호선 타는 플랫폼까지 상당히 걸어야 하는데 죽을 것처럼 힘들었지만 천천히 걸어서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볼링 그린 역에 내려 스테이트 아일랜드 가는 페리에 탑승했다. 아직도 몸은 불편하나 내 눈에 다른 풍경이 비친다. 하얀 갈매기 나는 허드슨강과 자유의 여신상이 비치고 요트가 춤을 추고 아름다움이 물결치고 있었고 바람도 산들산들 불었다.

그날 스테이트 아일랜드에 가기로 결정한 것은 만약 이대로 영원히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스테이트 아일랜드에 가는 게 될 거 같고 그 마지막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스테이트 아일랜드에 도착해 다시 맨해튼으로 돌아오는 페리에 탑승했을 때 서서히 몸의 마비 증세가 풀리기 시작했다. 내게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슬픈 추억이다. 그 후로 한동안 몸이 상당히 안 좋다 다시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나 20대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엄마와 이모의 건강이 안 좋으셔 삶이 삶이 아니다 하니 아직 건강할 적 좀 더 많은 세상을 보려고 노력해야 할까. 매일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서 새로운 세상을 구경하는 게 축복이나 보다. 삶은 이리저리 흔들흔들거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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