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뉴욕 뉴욕. 나무 위에도 지붕 위에도 차 위에도 내 마음에도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3월. 매그놀리아 꽃봉오리는 얼마나 아플까. 수요일은 꼭 외출하려고 했는데 그만 집에 갇혔다. 수요일 오후 1시 링컨 센터 앨리스 툴리 홀에서 열리는 줄리아드 공연도 취소되고, 카네기 홀 공연도 취소된 것도 있고, 내일 링컨 센터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아트리움에서 열리는 공연도 취소가 되었다.
하얀 눈이 내리고 난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아름다운 설경을 감상하며 음악을 들으며 넉넉한 오후를 즐기고 있다.
눈 폭풍우가 오니 폴 테일러 댄스 컴퍼니는 오늘 밤 공연을 10불에 세일한다고 보라고 이메일로 연락이 왔는데 이사도라 던칸 댄스도 볼 수 있다고 하니 꼭 보고 싶으나 맨해튼에 살지 않은 난 모험을 하기 두렵다. 춤 보려다 눈에 갇히면 어떡해. 호텔 하룻밤이 2불이라면 플라자 호텔에서 머물 텐데 너무 비싼 호텔비 감당도 못하고 택시비도 역시 비싸니 가만히 집에 앉아 창밖에 내리는 눈 감상하는 게 더 낫지. 링컨 센터 메트 오페라는 오늘 밤 투란도트 공연하는데 아직 러시 티켓이 남아 있군. 오페라 사랑하는 보고 싶어 자주 접속하나 결정하기 쉽지 않아. 링컨 센터 옆에 오두막이라도 있으면 좋겠구나.
한국에서 어릴 적 크리스마스 카드 보면 하얀 눈이 쌓인 겨울 풍경이 있으나 카드처럼 하얀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았는데 뉴욕은 눈 풍년이야. 봄에도 이리 많은 눈이 내리니 3월도 봄이 아니라 겨울이라고 해야 할 거 같아. 10살 된 오래된 자동차도 팔았으니 눈 치울 일도 없고 커다란 삽으로 차 옆에 쌓인 눈 치우기가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제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만 하면 된다.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면서. 내 님은 언제 오시나. 와야 해. 얼마나 오래 기다리고 있니.
점점 게을러지고 있는 나. 뉴욕대, 콜럼비아대, 줄리아드 학교, 맨해튼 음대 등 많은 곳에서 쏟아지는 이메일을 보고 열지도 않는다. 공연이나 이벤트 보러 갈 에너지가 없어. 1000년 묵은 산삼 먹고 뉴욕에 살면 좋겠다. 어디서 산삼 구하지. 내 마음속에 있지. 요즘 열정이 사라지고 있나. 대학 시절 베토벤 열정 소나타도 즐겨 들었는데 세월이 흘러가버렸어. 고등학교 근무할 시절 첫 담임을 맡을 때 반장이 사범대 음대에 들어가 졸업 연주회 초대해서 가니 베토벤 열정 소나타를 연주했는데 제자가 결혼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오래전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어쩌면 지금은 자녀도 키우고 있겠다. 카네기 홀에서 조성진 공연 봤는데 정말 좋았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연습하고 있겠지.
눈이 오면 마음은 평소보다 더 감상적이 된다.
영화 닥터 지바고도 떠오르고 영화 음악 배경에 흐른 앤디 윌리엄스가 부른 노래도 좋아.
하늘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설경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카페에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을 테고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일 텐데. 하얀 눈이 내린 센트럴파크도 아름답겠다. 플라자 호텔 전망 좋은 방에서 아름다운 공원의 설경이 비칠 텐데. 전망 좋은 방은 얼마나 비쌀까.
그나저나 냉장고와 냉동고에 든 음식으로 얼마나 버틸까. 어제 장 보러 갈 걸 그랬나 조금 후회도 된다. 어제는 오래오래 걸어서 갈 에너지는 분명 없었다. 감자, 양파, 닭고기, 찌개용 돼지고기 약간, 연어 등이 있는데 버틸 때까지 버티어 보자.
늦은 오후 호수에 다녀올까
호수에 사는 기러기와 청둥오리는 어디서 무얼 할까
2018. 3. 21 수요일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