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펑펑 내렸다. 3월에 예쁜 눈이 내려 뉴욕은 동화의 나라처럼 아름답게 변했다. 봄에 필 꽃이 미리 걱정이지만 낭만적인 분위기 가득하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면 홀리데이 분위기 가득할 텐데. 종일 새들은 울지 않았다. 눈 오는 날 청설모와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차들은 부지런히 도로를 달리고 아파트 슈퍼는 어디에 갔는지 눈 덮인 도로를 치우지도 않는다. 이웃집은 누군가 큰 삽을 들고 눈을 치웠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덮인 길을 사뿐히 밟으며 걸었다. 아직 내 피는 끓는 청춘이야. 이웃집 목련 나무도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올해 꽃을 피울래? 안 피울래? 난 걱정이 된다. 작년에도 예쁜 꽃을 볼 수 없어서 너무 슬펐어."
그런데 목련 나무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너무 슬프게. 이웃집 창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이웃집에서 누가 눈 오는 저녁에 뜰에 있는 목련 나무를 보고 있지 하면서 날 바라보았다.
수요일 맨해튼에 가려고 스케줄 꽉 채워 잡았는데 전부 뒤틀리고 말았어. 줄리아드 학교 학생들 공연도 보고 여기저기 움직이려고 했는데 마음 가는 대로 걷기도 하고 피곤하면 커피 마시며 쉬기도 하고. 메트에서 자주 오페라 보러 오라고 소식을 보내오고 돈이 많으면 좋겠구나. 매일 오페라 보러 갈 텐데. 맨해튼에서 이것저것 많이 해 보니 이제는 호기심이 풍선 공기가 빠지듯 좀 줄어들고 오페라 많이 보고 카네기 홀에서 좋은 공연 보고 가끔 전시회 보고 책 읽어도 충분할 듯. 경제력이 뒷받침된다면 뮤지컬도 자주 볼 텐데 러시 티켓도 최소 40불 하니 뮤지컬은 비싸기만 해.
엄마의 양심은 저울에 달면 얼마나 될지. 아마 마이너스라고 할지. 아들이 중국인 마트에 걸어가서 사온 맛있는 오렌지를 엄마 혼자 거의 다 먹고 아들은 아주 조금 주니 오늘은 엄마에게 "오렌지 아직 남아 있어요?" 라 하니 웃었다. "응, 아직 남아있어."하면서. 몸이 안 좋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혼자 달콤한 오렌지를 먹어버렸어. 초콜릿처럼 오렌지가 맛이 좋아. 집에서 걸어서 사러 가야 하고 무거운 짐 들고 오는 게 쉽지 않은데 양심은 바닷속 거북이에게 준 모양이야.
외출을 안 하니 집에서 뒹굴뒹굴하면서 책을 읽었다. 뉴욕 탄생 작가 닐 사이먼의 회고록인데 어릴 적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신 날이 많았다고. 엄마는 죽도록 일을 하고. 도무지 집에 없는 아버지는 어디서 무얼 하지. 내가 사랑하는 브루클린 브라이튼 비치 배경을 담은 "브라이튼 비치"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자서전적인 내용이라고. 석양이 지면 정말 아름다운 바닷가인데 간지 꽤 되어간다. 러시아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 코니아일랜드 바로 옆인데. 이웃 블로거분이 브라이튼 사진 올리니 닐 사이먼 작품이 있다고 소개를 해서 알게 되었다.
뉴욕에 오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위대한 작가로 남은 것도 알게 되고 닐 사이먼도, 트루먼 카포티도, 마크 트웨인도, 존 스타인벡, 허먼 멜빌 등 모두 어렵게 지냈다고 한다. 환경을 탓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을 결코 할 수 없겠지. 어떤 환경이라도 굴복하지 않고 노력하면 어제보다는 더 좋은 내일이 올 테고 내일보다는 더 좋은 모레가 올 테고 아름다운 미래가 될 거 같지. 부단히 노력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음악도 들어야지. 유튜브로 음악 들으며 롱아일랜드 양로원에서 만난 노인들이 그리워졌다.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오이스터 베이 옆에 있는 양로원에서 자주 자나 캐시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눈물을 글썽이며 행복한 추억을 생각하며 노래를 부른 노인들 지금은 어쩌면 하늘나라에 가서 쉬고 있을지. 자니 캐시 따님 로잔 캐시도 정말 노래를 잘 불러. 카네기 홀에서 그녀 공연도 보았지.
2018. 3. 21 눈 오는 날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