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거울을 보기 힘든 중년의 단상(斷想)'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봤더니 낯선 얼굴이 있다.
생기 잃은 머리, 처진 눈매. 약간 놀라 얼굴 방향을 바꿔 본다.
나이는 목에서부터 온다고 했던가. 어느새 깊은 목주름은 오랜 병상에서 일어난 노인의 것과 같다.
'신'이 있다면, 그래서 '그'가 인간을 창조했다면, 이 무슨 가학성이고 악취미란 말인가.
축복인 줄 모르는 청춘은 낭비되고 소중함을 알게 된 후 인생의 잔여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아!
인생은 걸어 다니는 그림자, 가련한 배우,
무대 위에서 잠시 뽐내고 걱정하다가 사라지는,
이야기는 바보가 지껄이는 소리,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아무 의미도 없지."
- 윌리엄 셰익스피어 <멕베스 중>
삶은 일견 허무하고 덧없는 것일 수 있으나 그렇다고 왜 의미와 가치가 없겠는가.
거울을 보며 숱이 현저히 준 머리카락을 아쉬워하고, SNS 프로필 사진을 뒷모습 위주로 올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이 당연한 자연의 섭리 속에서 인생의 또 다른 깊이를 배운다.
"그래서 우리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가면서도, 격렬하게 현재의 물결을 거슬러 나아간다."
-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중>
젊음은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선물이지만, 아름답게 나이 드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다.
그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삶의 경험과 지혜, 그리고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하다.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이렇게 말했다.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ärker."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나이를 들며 겪는 모든 어려움과 상실은, 결국 나를 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든다.
젊음의 상실이라는 아픔 속에서도, 더 깊은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나이 든 삶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의미'에 대한 자각이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고 했다.
젊은 시절에는 미처 묻지 못했던 질문들,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이 과정이야말로, 청춘이 줄 수 없는 성숙의 기쁨이다.
"Au milieu de l'hiver, j'ai découvert en moi un invincible été."
"한겨울 속에서, 나는 내 안에서 불굴의 여름을 발견했다."
알베르 까뮈의 이야기처럼, 노년의 겨울 같은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내면의 여름을 발견할 수 있다.
외적인 젊음은 사라져 가지만, 내면의 열정과 지혜는 더욱 깊어진다.
"On the whole, age comes more gently to those who have some doorway into an abstract world—art, or philosophy, or learning—regions where the years are scarcely noticed and the young and old can meet in a pale truthful light."
"대체로, 예술이나 철학, 배움과 같은 추상적인 세계로 통하는 문을 가진 사람에게 나이 듦은 조금 더 부드럽게 다가온다. 그곳에서는 세월이 거의 느껴지지 않고, 젊은이와 노인이 함께 진실한 빛 속에서 만날 수 있다."
- 프레이야 스타크(Freya Stark)
이제부터 주어지는 나의 '잔여시간'은 어쩌면, 인생이라는 예술을 완성해 가는 가장 아름다운 시기일지 모른다.
청춘의 빛이 사라진 자리에, 성숙의 온기가 스며든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거울 속 낯선 얼굴을 보며, 내 삶의 의미를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다.
젊음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라면? 미쳤나, 대부분의 시간을 멍청하게 보내고 있을 나를 다시 보는 일?
끔찍하다. 다만 빠지는 머리숱과 생기를 잃어가는 내 미모(?)가 좀 아쉽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