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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같이 번개같이 발명해야 하는 사랑'

영화 '헤어질 결심'이 말하는 사랑의 정의

by 윈디박

영화 '헤어질 결심'이 세상에 나온 지 3년이 지났다. 그동안 가슴속에만 품고 있었던 서래와 해준의 이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떠나보낼 때가 왔다. 마침내.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니고 읽어 줄 독자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헤어질 결심'의 감상을 기록하는 일을 '부채'처럼 안고 살았다. 지금이라고 글 한 줄 쓰지 못할 거 같은 막막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내 비루한 문장이라도 절절한 경외와 사랑의 마음을 이제라도 표현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3년이란 세월 동안 이 '품격 있고 비극적인 로맨틱 시네마'에 대한 수많은 평론과 감상이 있었을 것이다. 깊이 있는 해석과 분석의 글들이 넘친다. 나는 그런 글을 쓸 역량이 되지 못한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기록하는 것으로 '헤어질 결심'에 대한 나의 애끓는 '연심'을 표현할 뿐이다. 3년 동안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사랑의 고백'이다.


<사랑의 발명> - 이영광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이영광 시인의 시 '사랑의 발명'의 마지막 구절이 가슴을 친다.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서래와 해준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이 시구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랑은 가혹한 운명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하게 하는 '발명'이다. 형사와 용의자라는 건널 수 없는 선 너머에서, 모든 것을 던져야만 하는 절박한 순간에 그들은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 내야 했다. 그것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오직 그들만의 사랑을. 서래는 해준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알지 않았을까. 이 '품위 있는 형사'가 자신을 구원할 수도,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해준의 불면증은 서래라는 존재를 만나기 위해 운명 지어진 것이었다. 잠들지 못하는 밤, 그는 서래의 모든 순간을 지켜보았고, 서래의 모든 슬픔과 아픔을 가슴으로 안았으며,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라고 고백하며 사랑을 발명한다.



박찬욱 감독은 이 불가능한 사랑을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게, 하지만 잔인하게 그려낸다. 안개 낀 바닷가, 햇살이 부서지는 파도, 서래의 푸른 옷자락. 모든 장면이 사랑의 언어로 말을 건넨다. 영화 속에서 '미결'이라는 모티프는 단순히 사건의 상태가 아니라 이 '가여운' 연인들의 관계에 대한 운명론적 암시이다. 서래가 해준의 방에 가득한 미결 사건 파일들을 태워버리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나는 그 장면을 '우리의 관계를 완결 짓자'라는 서래의 '당돌한' 고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준은 완결된 사건이 사실은 미결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를 떠났고, 다시 만났을 때는 명백한 사건을 미결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사랑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할까. 사랑의 완결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포 해변의 마지막 장면은 나에게 엄청난 정서적 충격을 안겨줬다. 서래는 스스로를 모래 구덩이 속에 가둔다. 이영광 시인의 '사랑의 발명'에서는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한다면,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는 그녀 자신이 소멸하는 방식으로 해준을 구원함으로 '사랑을 발명'한다. 나는 이 처연하고 비극적인 장면 앞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서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그것이 사랑의 완성이었다. 광기가 아니라 사랑의 본래 모습이었다. 모든 것을 던져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랑의 정의를 이 영화는 처절하고 처연하게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은 사랑의 본질을 까마득하게 잊고 지낸 우리에게 섬광처럼 다가왔다. 이성과 제도와 규범을 뛰어넘어 번개같이, 번개같이 절박하게 발명되는 그런 사랑으로 '꼿꼿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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