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불행

기계 인간이 곳곳에 많다는 것

by 윈디

1.

나는 허당이다.

매사에 꼼꼼하지 못해 몸이 고생한다.

문화재단 사업으로 통장잔고 0원인 통장과 체크카드가 필요했다.

모두에게 입금이 2주째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연락이 왔다.

기존에 개인통장도 된다고 설명은 했는데 그게 안된다고 했다고 다시 제출 해달라고 한다.

당일에 통장을 요청하는데 나는 등기소도 은행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통장 잔고를 0원으로 만들어 제출했다.

그 후 혼자 바빴다. 다른 내용으로 입출금이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새로운 통장을 만들고 체크카드를 만들었다.

등기소, 은행, 그 후 영업일 3일 지나서 받는 카드.

카드가 도착한 후 기존 통장의 체크카드가 필요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다시 서류를 떼고 은행엘 갔다.

사업자등록증을 안 가져왔다.

내 잘못이다. 꼼꼼하지 못한.

그러나 그렇게 기계처럼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오래 기다렸다가 허당의 시간을 보낸 것이 너무 억울해

바로 옆이니 사업자등록증을 가져와서 보완하면 안 되냐는 말에

"금융실명제 위반으로 처벌받습니다."

그 표정도 말투도 기계보다 더한 영혼 없는 쇳덩어리 같았다.

나중에 다시 와서 새로 번호표를 뽑아서 다시 기다리는 일은 달라지지 않더라도

말 한마디 정도는 버린 시간에 대한 공감, 아니 표정 한 번이라도

위선적일지라도 말 한마디 하면 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런 기계를 자주 보는 건 우리 일상의 사회적 불행이다.


2.

행사 준비를 하느라 몸이 힘들었다.

무거운 책상과 의자가 내 손목관절을 많이 써먹었다.

어쩌면 다시 공간을 운영할 일은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보람을 느끼고 나면 수고는 다 잊어버리게 된다.

어제도 그랬다.

특히 난 삶의 심연을 건드는 주제를 좋아한다.

'삶과 죽음' 그 동의어에 대한 질문들.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는 이거 말고 뭐가 있을까 싶다.

잘 죽기 위해 오늘도 짐을 버린다.

<슬기로운 노년생활> 김수동이사장님의 공동체주거활동가로서의 10주년 기념 강의가 있었다.

비가 많이 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와주었고 질문이 깊었다.

11월이면 '죽음'을 주제로 북큐레이션을 했던 나의 지난날.

이제 다가올 11월은 책방이 없다. 좋다.

물리적 공간이 너무 무겁다. 월세와 관리비가 내 삶을 이토록 가라앉게 할 줄은 몰랐다.

물론 이 또한 모두 다 이겨내리라. 설거지 알바는 2번이나 떨어졌지만.

다 정리되고 나면 뭐라도 해서 재정 수습을 해야지!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지. 불사조처럼.

동안 내 활동의 고향인 '움직이는 한평책방'으로 명맥을 유지하면서.

나도 문화활동가 10주년 기념을 북파티로 해야겠다. 얼마 안 남았다.

일도 안시켜 보고 얼굴만 보고 일 못하게 생겼다고 말한 그 식당 주인들은

사람을 몰라보는 기계다.


3.

동건이네 책방 이용.

무엇이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 곳은 무시무시한 말로 민원이 몇 차례나 들어왔다.

책방은 요상한 곳이 되고 만다.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처마 밑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

화분을 반대편 쪽에 두면 공용부 무단 점거라고, 재산가치하락의 요소라고 민원이 들어온다.

이런 곳에서 인연을 맺은 동건네 가족은 고립된 섬의 단 한 명의 친구같다.

교회 4가족의 저녁모임을 위해 공간을 쓴다고 했다.

마무리 하는 것만 알려주고 편하게 쓰라고 집에 왔다.

그래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마음의 고마움이 일상의 신뢰로 연결되어

공간활용 자체가 의미있었다.

이런 관계가 사람 사는 세상 아닌가.

눈인사라도 하려고 하면 고개 확 돌려 천변 보며 걷는 기계 인간들을 많이 본 곳에서

그나마 한 가족은 나를 살렸다.


4.

내 슬픔의 근원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오늘 아침 오래 전 어떤 글을 읽으며 깨달았다.

좋은 문장 하나로도 굳은살은 정리할 수 있다.

그런 생의 은인 작가들이 있다.

고전을 통해서 이미 떠난 작가들을 좋아했다면

현재를 함께 살아가면서 동시대를 호흡하는 작가가 있다.

삶의 행운이다. 그래서 쓰러지지 않는다.


5.

비가 많이 내린다.

추석에 더웠고 가을비가 어제 오늘 세찬 아침이다.

재난 속에 들어왔는데도 모르고 시시하게 남을 비방하기에 바쁜 어떤 사람의 글을 보았다.

교묘한건 그 사람에 대한 칭찬인 것 같은 글을 적어두고 한 줄 비난의 말을 끼워 넣은 것.

그 한 줄의 글을 잡고 자기 감정 쏟아 붓는 댓글들.

칭찬하는 것처럼 하면서 다른 사람을 깍아내리던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표정이 떠오른다.

시기,질투. 그 어두운 삶의 단어들.

그 대상자에게 내가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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