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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디 Jan 16. 2022

오랜만에 걸어 더 좋은 걷기

걷기에 대한 이력서

지난주 걸었다.

너무 오랜만에 걷는 거리 치고 많이 걸었다.

올레 한 코스 평균보다 더 많이 걸었으니까.


지난주 걸었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책방에서 인연이 된 어떤 분이 간혹 페이스북에 공지하고서 걷기를 함께 하는데

함께 하지 못했다. 일요일도 영업을 했으니 생각 자체를 못했다.(2021년 8월 임시 휴무 후 일요일 정기 휴무)


지난주 걸었다.

일요일 걷기 일정이 있다는 공지를 보고 이제는 갈 수 있었다.

은평구에 그런 걸을 수 있는 곳. 둘레길, 북한산 말고도 양재천 같은 곳이 있는 줄 몰랐다가 알았다.

그 길을 걸었다. 오랜만에 물 위의 오리들을 보았다.


지난주 걸었다.

걷다가 좀 깊게 이야기 나눈 두 사람이 있었다.

아니, 혼자 걷는데 이야기를 걸어 준 것이 맞다.

한 분은 또 다른 걷기에 초대해 주었고(그래서 토요일을 읽기 모임팀에서 오픈을 맡길 예정이다)

또 다른 한 분은 조만간 빠른 시일에 한평을 들려준다고 하셔서 그 마음 자체로 힘을 받았다.


지난주 걸은 후 집에 돌아와

너무 오랜만에 세포의 깨어남에 취해

처음 걷기를 경험한냥 인터넷으로 '걷기의 효능'을 검색하였다.

안 걷다 걸으니 걷기 그 자체의 기쁨을 알 수 있었다.


걷기는 이미 내 동반자였다.

어릴 때 (국민학교 때) 보고 싶은 가족을 찾아 학교 끝나고 다리 아프다는 느낌이 드는 큰아버지댁으로 부모님을 찾아 나섰다. 큰아버지를 보면 아빠가 보였으니까. 쌀쌀한 큰어머니 때문에 갖다가 금세 돌아오기는 했지만.


중학교 때 귀가하기 싫어서 대반동 바닷가를 하염없이 걸었다.

걷다가 걷다가 다시 학교 근처로 돌아와 해 질 무렵 학교 옆 경동 성당을 헤매기도 했다.

그때 알게 된 수녀님이 올겐과 꽃꽂이를 경험하게 해 준 것이 전례 꽃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테지. 이 수녀님을 수소문해서 2016년 울산 현대병원 원목실을 찾아갈 때도 많이 걸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목포로 유학 온 영암 친구 집에서 마늘 뽑는 일을 도우며 점심으로 고추 11개에 물 말아서 밥을 먹을 때도 가고 오는 길 어디까지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많이 많이 걸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할 때 영문도 모른 채 무등산 서석대 올라가고 월출산 따라가고 퇴근하고 선운사 가서 그 주변에서 삼겹살 먹고 아침에 다 같이 출근하는 이상한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도 주야장천 산에 다니며 걸었던 것 같다.

말 잘 들을 때라서 무조건 따라다녔던 중 월출산 산행에서는 내가 이러다 죽는구나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 후 차 막히는 길을 차로 다니느니 걷는 게 낫다는 급한 성질 탓에 강남 두 블록 정도의 거리는 그냥 걸어 다녔고 좀 멀면 자전거로 다녔으며 출근 전 선정릉 한 바퀴 걷는 건 그냥 물 한 잔 마시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걷기가 나의 인생을 지켜주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 든다.


어느 날 알게 된 현 시사인 대표인 이숙이 기자님을 알게 된 후 난 걷기를 위해 여행하는 사람이 된다.

바로 시사인 창간 1주년 기념 제주올레 걷기 행사. 당연히 함께 했으며 그때  이숙이 대표님은 유모차를 끌며 오름을 오르내렸다.  그때 그 추운 바람으로 가득 찬 길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마력에 빠져 그 후 제주올레 탐사팀 활동도 2차례를 했으니... 지금은 코스가 바뀌었지만 당시 5코스 화살표는 내가 그렸다!(나만의 자긍심)


그 후로도 걸었다.

하루에 3코스 걷는 적도 있었으니. 아침 6시에 나서서 밤 10시경 사방이 깜깜할 때 숙소에서 마중 나오는 상황까지. 얼마나 귀찮았을까.


그 후로도 진짜 많이 걸었다.

프레시안 인문학습원 걷기 프로그램에 거의 매주 토요일 따라다녔다.

아침 6시 모이는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주차장에 모여

어딘가 갔다가 다시 서울에 오는 당일 걷기 여행에 이어

함께 자고 돌아오는 걷기 여행까지.

그때 인솔자였던 허 여사님을 다시 보고 싶은데 아직 실현하지 못했다.

허 여사님이 울릉도 배 안에서 멀미를 이기는 법을 알려주신 건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날 숙소에서 참가자들 간단 이완 마사지를 해주신 일도.

자신의 일로 사랑을 베푸셨던 허 여사님이 다시 보고 싶다.

난 멀미가 심해서 무조건 운전사 바로 뒷자리를 내 자리로 해야 출발한 불편한 손님이었다.

허 여사님은 오래전 동아일보 해직기자님의 부인이시다. 부부 함께 여행을 인솔하셨다.

아! 내가 걷기를 좋아한 원천은 멀미 할바에 걷는다고 동기였다는 것을!!!


그 후로도 또 걸었다.

성지순례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기차를 이용하는 곳을 다니며 무조건 역에서부터 걸었다.

어떤 곳은 5시간 가까이 걸어야 성지가 나왔고 가까운 곳은 1시간 10분 정도 걸으면 나왔던 구산성지도 있었다. 아무튼 걷는 게 인생인 양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어느 날...

인생을 전환하고 새로운 공부를 여러 가지 한꺼번에 하게 되면서 조금씩 덜 걷게 되었다.

2016년 은평구 진관동 한옥마을에 이사를 와서 (한옥마을도 전세가 있다) 인연이 된 혁신파크까지 둘레길 거쳐 불광중학교 근처 거쳐 걸어 다니곤 했다. 그마저 2018년 전세계약이 끝난 후 더 한적한 곳으로 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이사를 가다 보니 무조건 차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래도 간혹 걸어서 다니곤 했는데.


2018년 8월부터 한평책빵에 메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해 못 하지만 나는 책임감으로 메였었다.

어떻게든 내가 속한 공적 영역의 공간을 잘 해내고 싶었다.

많은 노력을 했으나 더딘 곳, 경제적, 심리적, 육체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힘튼 터가 된 후

못 걷기 시작했다.

걸을 여유가 정말 없었다. 너무나 없었고 마음은 늘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걸었다.

은평구청 직원 독서모임을 장소를 돌아가면서 진행하다가

우리 책방에서도 하게 된 날.

함께 참가하게 되었고 마침 우리 책방에서 하게 된 책은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이었다.

참가를 위해 읽었고 걷기 세포가 꿈틀거렸다.

당장 걸어서 출근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마음이 많이 급했다.

그 후 책방에서 서서 있는 시간만 많았고 주변을 걷는 일조차 어려울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이 어떻게든 책방을 지속하고자  집중한 마음이 걷기를 대체했다.


그나마 단 몇 번의 여행. 

현재 한평협동조합 이사이기도 한 한 분이 전주 책방을 함께 가자고 했을 때.

그때 조금 걸었고

함께 곡성 미실란을 갔을 때 조금 걸었던 추억이 있다.


그리고 또 못 걸었다.

정말이지 걷기도 힘들 정도로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소득은 별로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이곳을 선택한 약속된 5년은 끝까지 잘하고 싶다.


그러다..............

지난주 걸었다.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걷고 싶은 마음을 하늘이 아는지

걷기로 한 일정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여아일언중천금.

일요일 걸을 때 꼭 같이 걷겠다고 했기에 1초도 생각 없이 바로 참석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다시 천국을 경험했다.

혁신파크에서부터 걸어 응암동 레이보우교에 도착했고 다시 걸어왔다.


지난주 걸은 후

오늘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걷고 막 들어오는 길에 

혹시 일요일 문 열었냐는 전화를 받았다.

너무 힘들어 일요일이라도 쉬기로 했지만

그 순간 당장이라도 뛰어 나가고 싶었다.

그러지는 않았지만 그 전화 자체로 감사하다.

걸었더니 모든 것이 감사하고 희망차고 새롭다.


오늘은 

강아지풀이 늙은 색깔로도 부드럽게 바람을 탔고

나 여기 있다고 닭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소리를 들었고

웃으며 더 힘차게 걷는 내 앞으로 두 마리 새가 날아 올라 나무 위에 앉았으며

나를 보낸 후 웃는 소리로 앞날을 빌어 주었다.


이만큼 다 쓰고 나니

'요거요~^^'라는 책 주문이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책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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