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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하고는 있는데 설명을 못하겠다

21세기에나 나타난 새로운 직업의 비애

 취직하고 난 뒤 첫 명절. 취업했다는 소식에 친척들의 관심도 집중됐었다.

 "그래서 하는 일이 뭐야?"

 벌써 몇 달이나 다닌 회사였지만 나이 지긋한 고모의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내가 어떻게 설명해야 저분이 찰떡같이 알아들을까 고민됐다.

 그렇지만 자랑스럽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또박또박 대답했다.


UX 기획이라고요,
고객을 분석해서 화면을 설계하고 만드는 일이에요.


 

우리 고모는 7년 넘게 내가 뭐하는지 모른다        이미지출처:MBC


보다 못한 엄마가 급하게 나서며 대화는 급히 마무리되었다.

 "쇼핑몰이야, 쇼핑몰에서 일해~"


 나중에 듣게 된 바로, 우리 고모는 내가 쇼핑몰에서 제품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일을 한다고 믿고 계신다고 한다. 급히 대답을 마무리해 준 우리 엄마도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을 정확히는 이해하실 수 없다고 하셨다. 회사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정도 추측은 하시지만 타인에게 설명은 못하시겠단다.

 그리고 나 역시 여전히 그분들이 이해하실 수 있게 내 직업을 설명할 자신이 없다.


명절 때 많이 바쁘지?
출근해야 하는 거 아니니?


 오해는 여전히 계속되어, 명절에 선물세트를 파는 준비를 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아도 그냥 웃고 만다. 나중에는 그런 고모에게 나 역시 명절에 참 바쁘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설명할 자신도 없고, 지친다 지쳐                                 이미지 출처 : MBC


 부모님 세대에게 이 직업을 설명하기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나는 이 직업 자체가 신문물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세대 간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1세기의 산물, UX

  20세기, 오로지 기계의 기능 관점에서 만들어지던 인터페이스는 점차 사람중심으로 변화해왔다. 그 흐름은 20세기의 후반 퍼스널 컴퓨터의 GUI의 등장과 함께 필연적으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기기가 숨 쉬듯이 일상 속에서 자유로워질 때쯤, 기계 중심이 아닌 사용자 중심의 사상이 나타났다. 즉, UX(User eXperience)였다. 사용자 컨텍스트에 따른 목적 행동을 유도하는 어포던스를 이용해, '자연스럽게' 고객의 Task를 쉽고 빠르게 이끌어 내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이 모든 역사는 20세기의 후반기에 아주 급진적으로 진행됐다.

 21세기의 UX가 퍼지게 된 것은 Web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실무적으로는 Web 사업이 발달하면서 '인포메이션 아키텍처'라고 불리는 정보구조와 '와이어프레임'과 같은 화면 설계에 대한 업무 방식도 자연스럽게 발전됐다. 대부분의 UX 담론은 이런 환경에서 온라인을 양분으로 해서 웹의 서비스를 구상하고 만들어내는 것으로 발전됐다.

 그리고 마침내 2007년 아이폰의 탄생은 '모바일 혁명'을 가져왔다.  모든 사업은 모바일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대부분이 UX에 열광하며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서비스 프로세스와 UI, 그리고 인터렉션까지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게 인식되게 되었다.


 21세기에 대부분을 보낸 우리에게 이러한 스크린 상의 이용과 구현은 어쩌면 숨 쉬듯 자연스럽다. 특히 아기 때부터 웹이 있었던 90년대 후반 출생한 이들이 성인이 될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2000년대 후반 출생자에게 모바일은 태어날 때부터 존재했다.

 이런 세대에게 앞으로 웹이나 모바일뿐 아니라 음성이나 채팅, 아니면 생각만으로도 가능한 서비스가 나온다고 해도 서비스의 형태를 이해하고 구성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이들은 인간 중심으로 기기와 정보를 컨트롤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20세기의 부모님과 21세기의 UX기획자

 반면에 부모님 세대는 20세기에 태어나고 자란 분들이다. 어린 시절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혼재했고, 만화책 속에 나오는 '걸어 다니며 하는 전화기'가 허무맹랑해 보이던 시절에 세상을 배우셨다. 여전히 이 분야로 전문적이어야 하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이런 웹이나 모바일 서비스는 말 그대로 신문물에 해당한다.

  신문물은 인위적인 학습의 대상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제품은 매뉴얼로 학습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잘 다루는 것은 천부적인 능력으로 여겨졌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다룰 수 있는 디바이스에 대한 개념과 니즈는 아예 없었다.

 이 세대에게 UX에 대한 이해를 쉽사리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매뉴얼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기계 또는 온라인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 노력한다는 개념조차 자연스럽지 못하다. 기능은 어차피 개발자가 만드는 것이고 눈에 보이는 화면은 디자이너가 만든다고 설명이라도 하겠지만, 그것을 설계만 하는 UX기획자의 존재라는 것은 21세 기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다.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 한, 부모님 세대에게 나이 직업을 설명한다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세계를 이해시켜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부담스런 세계관과 업무적인 위치를 대체 무슨 수로 설명한단 말인가!        출처 : Lets CC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켠에는 나 역시 멋진 직업이라고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불쑥 생길 때가 있다. 그저, 부모가 겪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자식의 작은 칭얼거림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몇 년간 부모님과의 여러 이야기 끝에, 그나마 부모님이 나의 직업에 감탄하길 바란다면 그냥 ‘기획업무’라고 말씀드리는 쪽이 이해하시기 더 쉽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꼭 그 기획이 그 기획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기획이라고 하면 부모님은 높은 사람이 된 것 같다며 좋아하시니까. 마음 한 켠의 찜찜함은 내려놓고 잠시 회사 전체를 꾸려나가는 핵심인재처럼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 50대 이상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은  카카오톡며, 유튜브로 동영상도 보시는 분들도 참 많다. 자식의 집을 찾지 않아도 며느리가 매일 올려주는 손주의 사진과 동영상을 카카오스토리에서 마음껏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이 직무에 대한 인식이 늦어지더라고, 언젠가 내가 만든 서비스를 공부 없이도 부모님이 쓸 수 있으시다면 그 보다 더 값진 칭찬은 없을 것 같다.



물론 또래라도 모두 이해해주지 않는다

 이 직무를 설명할 때, 세대뿐만 아니라 입장도 하나의 장벽이 된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에 있는 사람도, 심지어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조차도 업무부서만 멀어져도 UX기획자가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적당히 추정은 하지만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힘들게 기획하고 어렵게 오픈시킨 서비스가 세상에 나왔을 때, 내 새끼처럼 자랑하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집에서 한 침대 쓰시는 분에게 아무래도 더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얼른 스마트폰을 켜고 다가갔다.


 여보 이거 내가 기획한 상품 리스트야, 어때? 어때?


 기대에 찬 내 눈빛에 그가 얼른 다가와 화면을 들여다본다.

 한참을 보더니 그가 말한다.


 응? 이렇게 쓰면 되는 건가?
난 뭐가 달라진 건지 잘 모르겠어;;


 업무부서가 전혀 다른 영업에 있는 회사 동료들에게도 비슷한 소리를 듣기도 한다. 기껏 힘들게 기획하고 어렵사리 오픈을 했는데 뭐가 바뀌었냐며 눈치채지 못하거나 도리어 익숙하지 않은 탓에 불편하게 변했다는 식의 억울한 말도 들을 때도 있다. 때로는 코딩과 디자인의 사이에서 도대체 이 직무는 하는 일이 뭐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스티브 잡스처럼 엄청난 프로덕트를 만드는 일은 흔치 않기에, 일반적인 UX 기획의 업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실 우리가 작업하는 대부분의 영역은 아주 마이크로하고 디테일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프로세스적 형태가 많다. 특히 신입 기획자가 다루는 일일 경우 더더욱 작아 보이기 마련이다.


 UX라는 사상의 특징도 한몫을 한다. 좋은 UX 개선 결과는 보호색처럼 자신을 감춰버리기도 한다. 특히 Pain Point에 대한 개선은 더 그렇다.  흔한 UX 방법론 중 하나인 고객 여정 지도(journey map) 분석의 경우, 사용자가 느끼는 감정적으로 짜증 나고 싫은 부분을 찾아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지점을 Pain point라고 하는데, UX는 이 부분이 없어지도록 개선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한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수십 가지 잘 일어나지도 않을 케이스들에도 사용자가 편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 직무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사용자들이다. 사용자들은 불만은 쉽게 눈치채지만, 편해진 것은 눈치채지 못한다. 마치 처음부터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심지어 고객의 목적과 동선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저 서비스를 둘러보는 동료에게는 개선은 그저 귀찮은 변화로만 보일 수도 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이 직무가 그런 직무이고, 그저 다른 이들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어쨌든 인정받는 일을 하고 싶다

 

 일,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이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아니 어쩌면 이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조금도 이해시키기가 어렵다. 오히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내가 해낸 일을 칭찬해달라고 목을 빼고 졸라도 나의 부모님이나 남편이 알아볼 수 없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럽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달아가고 있다.


 사람이기에 처음 UX기획자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분명 속상할 수 있다. 21세기에 태어난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이제 남아있던 오프라인의 사업들조차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허물어져가고 있다. 심지어 오프라인을 온라인처럼 데이터화하고 행동을 추적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IT와 디자인의 중간에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프로덕트 기획역량은 점차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아마 지금 전혀 관심 없던 사람들도 점차 우리 같은 사람들의 존재를 인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그때에는 우리가 해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진심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때까지 약간의 오해와 아쉬움이 있더라도 그 날들의 서프라이즈를 위해 UX기획자는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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