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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함께 하는 나의 서비스

기획 작품은 히스토리를 공유한 자식과도 같다


 하던 프로젝트는 내어주고 다른 사람이 하던 프로젝트를 받아야 했던 때가 있었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데도 나는 계속 화가 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마치 온 우주가 날 방해하고 싶어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지나간 프로젝트를 인수인계받은 사람들의 회의 소리가 매일 저 멀리서 조용하게 들려왔고, 우연히 전해 들은 기획내용은 정말 많이 뒤바뀌어 가고 있었다. 내가 세운 가설들이  하나하나 부서지고 있었다.


 이건 대체 왜 이렇게 기획해놨대?

 

 마음이 답답했다. 아무도 그러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내 기획을 비난하는 듯한 말이 들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의 기획'이 '나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에도 내 자존심이 바스락거리는 기분이었다. 종이처럼 구깃구깃해졌다. 나에게 기획이란 그런 존재다.


 이어받게 된 프로젝트도 쉽지 않았다. 나의 역량과 권한을 벗어나는 중요한 프로젝트. 덕분에 나에게 자유로운 생각의 기회도 제한적이었다. 기획의 순서도 생각의 자유도 꽉 막힌 답답한 상황에서 결국 결과물은 내 자식임에도 어차피 마음에 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 왜 이딴 걸 나한테 시키는 거야?


 뭔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은 마음에 계속 집중하지 못했다. 나는 오픈할 때까지 이 낯선 프로젝트를 끝까지 책임져야 되는 상황 자체가 계속 화가 났다.

 

 프로젝트 담당이 꼬이다 보면 '낳아준 엄마'와 '키워준 엄마'가 있을 수 있다. 두 엄마 사이의 신경전은 눈에 보이지 않게 조용히 존재한다. 서로의 기획관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기에 인수인계를 받았다고 해도 이견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더 이상 발전시킬 수 없는 이전의 담당 기획자는 뒤에서 멍하니 프로젝트가 바뀌어가는 모습을 봐야 하고, 이어받은 기획자도 자신이 완벽히 이해되는 형태로 바꾸기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속상한 사람만 있게 된다.

 아무리 상황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를 잘 하고 있다고 해도, 이 상황에 마주치게 되면 불쑥불쑥 정제되지 않는 감정과 마주치게 된다. '문제 해결'이란 관점에서 기획자다운 사고관은 '미련'과 '욕심'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기획자의 '자부심'이기도 하고.


  하지만 한참이 지나고 깨달을 수 있었다. 중도에 떠나보낸 프로젝트도, 이어받은 프로젝트도 결국은 내 자식이었다.


남의 기획을 비난하는 것은 쉽다


 인턴 친구들의 과제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과제의 내용은 기존 서비스에 대한 개선안을 발표하는 것.

 팀원 전체가 모여서 인턴 2명의 이야기를 듣는데 들을수록 묘하게 마음이 불안했다.

 

 "우리 회사 화면은 타사에 비해서 훨씬 불편해서 이렇게 바꾸는 게 고객에게 훨씬 좋고..."


 선을 넘고 있었다. 이미 몇몇의 선배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 개선되어 아직 오픈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화면이었다. 결국 질의시간이 되고 한 선배는 화면의 기획의도와 개발 과정에서 불편한 UI를 선택할 수밖에 없던 한계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난 그 설명 속에 아주 조용히 자리한 불편한 감정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인턴은 못 느꼈겠지만)


 비난과 의견은 한 끗 차이다. 그냥 불편하다고 짜증내듯 비난하는 것은 의견이 아니다. 기획자가 개선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에는 절차가 필요하다. 특히 신입이라면 어딘가 있을 '서비스 엄마'들의 '이유'부터 들어볼 필요가 있다.

 만약 길에 안 예쁜 애기와 애기 엄마가 있는데 애기가 안 예쁘다고 지적부터 해도 될까? 만약 그 아기가 어떤 병이나 사고에 의해서 얼굴이 예쁘지 않게 되어 버린 거라면 이 말은 상처와 분노받게 일으키지 않는다. 기획에서 논쟁은 쿨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닥치면 전혀 쿨하지 않다. 무례하고 예의 없는 발언일 수밖에 없다. 다른 기획자에게도 리스펙트를 해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사항이다.


 흔히 임원이나 팀장급의 사람들은 신입에게 고객 같은 살아있는 비난을 끌어내려하기도 한다. 이런 과제를 우리 시스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인턴에게 주었다는 것 자체가 그런 시도였다. 하지만 기획자로서 확신을 가지고 미션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원의 서비스에 대한 관심도 파악해보려는 의도 거나 고객에게 묻는 대신 고객의 시선을 싼값에 파악하려는 것일 뿐이다.  

 기획자라면 '히스토리'파악 후에 개선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이 부분이 없다면 의견은 비난이 되어버린다. 히스토리를 알면 진짜 대안을 고민해볼 기회가 생긴다. 조건 없는 문제 해결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운영 기획에서는 개인의 능력보다 더 파워풀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이 프로덕트의 히스토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히스토리란 정책과 배경 그리고 시스템적 한계, 사내 입장차로 인한 논쟁까지도 포함된다. 가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서비스도 이런 히스토리에 의해 탄생되고 역설적이지만 이건 차악책으로서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수 있다.

 감정이 상한 것을 벗어나서, 원래 진행한 기획자의 히스토리를 고려하지 않은 의견이 인정받기는 어려운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끝까지 함께하는 나의 서비스


 그렇다면 히스토리라는 관점에서 기획자의 서비스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하나의 서비스는 누구의 자식인가?  '낳은 기획자'도 '키운 기획자'도 모두 히스토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쩌며 기획자가 밟아온 모든 과정 자체가 서비스의 히스토리 그 자체가 된다. 그래서 둘 다에게 결국 소중한 대상일 수밖에 없다.


 내가 쏟은 애정의 양과 관계없이 내가 참여한 서비스는 계속 날 쫓아다닌다. 부모 자식 관계를 떼어놓을 수 없듯이 이 관계도 끊어지지 않는다. 때론 어렴풋하게만 기억나는 4~5년 전 잠깐 만져봤던 서비스에 대해서도 문의를 받을 때도 있다. 히스토리를 뒤지다가 결국 나에게 도착하게 된 것이다.

 갑자기 그 옛날이야기를 떠올리려면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기획서를 다시 볼 수밖에 없다. 만약 생각의 흐름과 관점이 명확하게 되어 있지 않다면 나 자신도 나의 예전 기획에 비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결국 부모처럼 기획에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사고 쳐서 낳은 아이가 되지 않게 사랑으로 낳고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 모든 산출물이 시스템화 되는 이 곳에서는 시스템의 의미를 불어넣는 과정은 그야말로 사랑이다.

 대충 해치우지 말자. 내 분신과도 같은 내 프로덕트를. 아마도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기억될 나라는 기획자의 히스토리 그 자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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