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그냥 Dec 08. 2019

라면땅을 먹을 때면 생각나는 너

미안 당황해서 그랬어


전자렌지에 생라면을 부숴서 돌렸다.

과자도 없는 날, 이만한 훌륭한 맥주안주도 없다.

사실 후라이팬에 살짝 설탕도 뿌려서 볶아주면 좋겠지만 그만큼 부지런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라면땅을 해먹을 때 그 아이가 떠오르니까.


중학생 때였다. 전학와서 이런 저런 애들과 치기어린 기선제압과 생존경쟁이 끝날 때쯤 내게도 소중한 친구들이 있었다.

방송 작가가 꿈이었던 나의 글을 좋아해주던 몇몇 친구 중 나에게 선뜻 펜을 맡겨준 친구. 연극반 회장이던 친구.

1년에 한번 있는 학교 축제에 검증도 안된 나에게 선뜻 창작 희곡을 부탁했고, 난 이 친구와 신나게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수동적인 여주인공 3명 (줄리엣, 스테파네트, 소나기의 소녀)의 입장에서 적극적인 성격의 뒷 이야기를 나누는 옴니버스식 연극이었다. 유치했지만 여중이었기에 통쾌했고 우리끼리는 참 재밌었다.

 스테파네트는 알퐁스도데의 '별'에 나오는 여주인공인데 그만큼 힌트를 줬는데도 답답하게 굴었던 소년에게 푸념을 하는 식이었다. ('그 쯤 기회를 줬으면 키스라도 했어야지!!')

 중3이라기엔 대담했는데 모든 것은 다 그 친구가 적극적으로 도와줬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준비할 수 있었다.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웃음이 터질 때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 친구의 집에 자주 따라갔는데 반지하에 그 때 흔하지도 않던 공청기가 3대씩이나 있었다. 그 친구는 맞벌이하는 부모님보다 남동생과 이 자주 있었고 그 친구 집에 갔을 때 직접 라면땅을 만들어줬었다. 집에서는 절대 못먹게하는 생라면인데 인상 깊었다.


 우린 고등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그 친구는 연기과외 한번 받지 않고 자력으로 예술고등학교에 연기로 입학을 했다. 고등학교 3년간은 서로 사는데 바빴고 싸이월드에서 간간이 소식이나 전했다. 그녀는 장학금을 받고 4년제 대학의 연극영화과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제나 대단한 친구였지만 역시나였다.


하지만 좋은 소식은 한달도 되지 않아서 비극이 되었다.

꽃다운 스무살의 3월.

교통사고였다.

이제 막 스무살에 연기자 꿈을 꾸던 당차고 강단있던 그 친구는 그렇게 세상을 등졌단다.


다른 동창들에게 문자를 받고 전화를 받았다. 장례식에 오란 이야기였다. 당연히 갔어야했지만 난 무서웠다.

나 역시 갓 스무살이었고 그 직전에 이모의 죽음을 처음으로 겪은 어린 아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친구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와닿지 않았다. 그냥 내가 장례식에 가지 않으면 마치 지금까지 만나지 않고도 어딘가에 잘 살고 있었던 것처럼 계속 살아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가족 핑계를 대며 그 곳을 가지 않았다.


어리석었다.

꽉찬 14년이 흘렀다.

나는 정말 실수를 했다.

이렇게 라면땅만 봐도 마음의 부채를 느낄 줄 알았다면

그 날 그 아이를 찾아가서 눈물이라도 마음껏 흘리고 왔어야했던건데.

내가 가지만 않으면 그 친구가 그리울 때 어딘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내가 정말 그 꿈처럼 극작가가 되었다면 너에게 얻은 그 큰 빚을 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맥주한캔에 라면땅을 먹어도 아무런 문제없는 나이가 되었는데 나의 글을 믿어준 그 친구와는 치맥 한 번 제대로 못했다는 게 미안하다.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다면 꼭 보답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삶은 언제나 너무나 정직하게 되돌아온다.

하다못해 이런 불량 간식을 먹다가도 말이지.



너무 늦었지만 사과라도 남겨본다.


미안해. 미나야.
나도 어렸고 당황해서 그랬어.




매거진의 이전글 한강이 예뻐서 다행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