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그냥 Mar 31. 2021

아무 것도 없을 때에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

초급자 외주개발자를 붙잡고도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획자


회사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 좋아하던 드라마가 있다.

'골든타임'이라는 드라마다. 인생 드라마라고 할만큼 그 드라마에 애착이 있다.


그 드라마의 초반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드라마 <골든타임> 명대사



한방병원에서 전문의 과정도 하지 않고 편하게 의사로 살아가던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에 생명이 위급한 순간의 환자를 만나고, 가장 가혹한 응급의학과에 인턴으로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이 대사가 있다.


내가 예측하지 못하고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는데, 왜 하필 내 앞에 이런 환자가 나타났는가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올텐데 그때는 어쩔겁니까?
스텝들, 레지던트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나 혼자 쇼크에 빠진 환자를 판단해야하고, 케어해야하는 상황이 오면 그땐 어쩔겁니까?
나 대신 누군가 해결하겠지 하는 나약한 마음은 환자나 의사에게 모두 치명적입니다.


오늘 사석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백엔드를 기획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근본적인 비즈니스와 그걸 설계할 수 있는 구조와 정책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난 UI와 UX의 인지학적 전문성은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에게 위임하고, 기획자는 더 오랫동안 비즈니스의 목표와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진짜 프로덕트의 구조와 정책설계에 대해서 힘쓰는 것이 근본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 때 내 머리속에는 신입 인턴 때 머리에 박힌, 이 말이 울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예측하지 못하고 장담하지 못하는 이 올 수밖에 없는데, 왜 하필 내 앞에 이런 프로덕트가 나타났는가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올텐데 그때는 어쩔겁니까?
개발자들, 시니어 기획자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나 혼자 만들어 나가야 할 기능을 판단해야하고, 설계해야하는 상황이 오면 그땐 어쩔겁니까?
나 대신 누군가 해결하겠지 하는 나약한 마음은 프로덕트기획자에게 모두 치명적입니다.


난 실제로 그랬었다. 내 위를 든든히 지켜주던 선배들이 휙 나가고 개발자들도 나보다 나중에 들어와서 나보다 모르는 상황이 됐을 때, 그리고 프로덕트를 혼자 설계하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됐을 때가 그렇게 짧지 않은 기획 3년차쯤 찾아왔었다. 팀장님도 나에게 일을 맡기면서 미안하지만 주니어라도 실수하면 안된다고 말 할 때였다.


그 때, 내가 주니어라고 현실 파악을 제대로 하지 않고, 하고 싶은 UI만 그림 그려서 개발에 던졌다면 뭐라도 제대로 된 게 나왔을까? 나 대신 개발자가 상세한건 해결해주겠지 생각했다면 난 그 환경을 헤쳐나갈 수 있었을까?  성과는 온전히 내 몫이었을까?

난 오히려 주니어 시절, 내가 설계한 딜매장에서 매출이 엄청나게 올라서 성과를 엄청나게 나올 때에도 한 순간에 발생한 오류로 인해서 눈물을 훔쳐야 했고, 그 매출은 나의 몫이 아니었던 기억이 있다. 그 매출이 내 몫으로 칭찬을 들었다고 해도 그 제대로 체크하지 않아서 발생한 오류와, 그 순간의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내 자신에 만족했을까?


아니.. 그보다 더 나중에 스스로 제로 베이스에서 온전히 전체 프로세스를 직접 설계해야하는 8년차가 되었을 때, 그럴 듯한 UI만 그려서 개발에 전달했다면 개발은 모든 복잡도와 비즈니스적 필요를 미리 예측할 수 있었을까? 아직 주문에서 소화해야할 케이스에 따른 구조와 상태값도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문서 인터렉션 아이디어만 그려오던 기획자는 결국 해야하는 일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손을 들고 퇴사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나중에 언젠가는. 회사 밖 또는 안에서 혼자만 홀연히 남았을 때 나에게 슈퍼 개발자가 없이 외주를 쓰면서도 온전히 내가 원하는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해서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난 그 시점에 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까봐 그게 더 두렵다.



구조화된 서비스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하는 것은 표준화된 온라인 프로덕트가 확장성있게 성장하기 위해서 밑그림을 그릴 때,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언제나 다 만들어진 서비스의 일부만을 만든다거나 항상 의사결정을 해줄 시니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누구나 시니어가 되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독하게 살던 시절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