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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Jan 25. 2022

(실화) 출근 어드벤쳐 오브 금호

예상치 못한 직장인 폴리의 모험



 오랜만에 재택아닌 출근. 어쩐지 오전 회의가 하나도 없는   날이었다. 비가 오긴 했지만 사무실은 지하철역이 연결 되어 있으니 괜찮겠지 하며 노트북을 챙겨들고 나왔다. 아침 8시에 필라테스도 다녀왔기에 상쾌한 하루. 한손으로 든 스마트폰으로 슬랙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싶었다. 멘션마다 쏟아지는 질문에 답변해가며 신나게 회사로 향했다. 오늘따라 이어폰도 끼지않고 지하철속 세상의 소리를 즐기고 을지로쯤에서 자리에도 앉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까부터 계속 같은 곳에 서있었다.


"(치직)역과 열차의 문  간격이 벌어져서 잠시 정차중입니다." 금호역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10여분이 흘렀다. 여전히 굳게 닫힌 문.

안내방송이 한번 더 나왔다. 미묘하게 내용이 달랐지만 비슷한 내용이었다.

10분이 또 흘렀다. 조금씩 동요하는 열차안의 사람들.

조금 늦어져도 회의가 없으니 슬랙으로 열심히 개발자질문에 답을 하고 문의에 답변하고 있었는데..


쿠궁!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여전히 열차는 움직이지 않았고 문마다 50센치 정도의 나갈 수 공간이 생겼다. 그런데 이젠 또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열차의 제동기능이 고장나서 운행이 중지되었습니다. 모두 다음 열차를 이용해주세요."

방청객처럼 김빠진 소리를 내며 사람들은 일제히 열차를 빠져나갔다. 평소 살면서 단 한번도 와본적 없는 이 역에서 사람들은 두줄로 섰다. 대기는 길어졌다.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어 줄은 더 길어졌다.


"열차의 제동장치가 고장나서 다음 열차가 지금 열차를 밀고 지나갈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다다음 열차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광경을 보게 생겼다는 생각에 조금 웃음이 났다. 하지만 꽤나 기다렸는데 상상하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 길잃은 승객들은 다급하게 어딘가에 사과전화를 해가며 역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역사내 안내 방송이 시작됐다.


"열차가 뒤에서 밀고 나가기로 했는데 언제 조치될 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젊은 목소리의 안내방송은 목소리에 당황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예상치도 못한 폴리의 모험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1번째 모험: 엑소더스 오브 금호


이윽고 시작된 수백여명의 대탈출. 순례자 혹은 좀비떼처럼 금호역을 빠져나오며 다들 택시와 버스노선을 검색했다.   

택시는 이미 잡히지 않기 시작했고, 금호역은 금호터널과 옥수터널 사이에 위치했기에 교통은 꽤나 단절되어 있었다. 버스라고는 파란버스 2개 노선이 전부. 20분에 한대씩 오는 차에 입성은 무단횡단을 서슴지 않는 길 잃은 출근러들의 거친 몸싸움끝에 2대 모두 실패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2번째 모험 : 로드 투 옥수


순간 떠오른 생각은 가장 가까운 다음 역에 가는 것이었다. 역근처면 교통 인프라도 있고 혹시 앞에 지하철이 있을 수 있으니까. 네이버 지도를 보니 17분 거리로 직선거리에 옥수역이 있었다. 쉽게 생각하고 걷기 시작했다. 비슷한 순례자들이 여럿있었다. 갑자기 비도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아뿔싸..!! 내가 가는 직선의 곧은 길은 옥수터널이었다. 옥수터널입구가 저 멀리 보였다. 자동차를 위해 만든 터널의 사이드에 위험해보이는 좁은 길이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뒤돌아 봤을 땐 순례자들이 줄을 이어 이미 되돌아갈 수 없었다. 발밑은 지하철 환풍구들이 가득하여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님이 느껴졌다. 환풍구옆 경계석을 1줄로 걸어가며 터널은 일방통행임을 느꼈다.


터널의 다음은 옥수 고가도로였다. 저 높은 고가도로 밑어서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돌이라도 날아올까 두려움이 느껴졌다.


이윽고 옥수역에 도착했고 안도하며 역사에 들어가는데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치직)...금호에서 중단되어 열차운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아..난 바보였다. 금호역에 멈춘 그 열차로 인해 3호선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이었다. 바보같이 3호선에서 3호선으로 오다니!!!


3번째 모험 : 트립 투 성수공고


어서 네이버지도로 대중교통을 알아봤다. 택시는 옥수역에서 내려온 순례자들로 잡히지 않았다.

'옥수역 5번출구역 13번 마을 버스타고 성수공고에서 초록버스 갈아타면 총 32분이 걸리는구나 '


눈앞에 마을버스 안내판이 보였다.

'1월 1일자로 마을버스 정류장이 변경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게 대체 어디지??? 하염없이 옥수역을 뱅뱅 돌았다. 가끔 스마트폰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산은 일부러 가져오지 않았는데...!!


겨우 버스에 올라탔다. 몇년간 거의 타본 적 없는 작은 마을버스의 소박한 느낌. 나는 어디? 여긴 누구? 일단 부리나케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슬랙부터 켰다. 스레드의 답변들에 답을 계속 달고 지라에 멘션을 살폈다.  귀로는 '성수공고'를 놓치지 않으려고 쫑긋하고 있었다. 약 15분. 태어나서 처음보는 성수공고에 내렸다.

초록버스로 갈아타기만하면 17분내에 회사 도착이었다.

아뿔사! 다음번 버스가 20분 후에 도착한단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성수공고 앞에서 비맞으며 20분을 보낼 수는 없어'

결론은 이제서야 택시였다.


4번째 모험 : 엔드게임 위드 택시


택시. 이 시간대에 강을 건너는 것은 트래픽잼을 각오해야했지만 답은 없었다.  카카오티를 열어 회사를 찍고 택시를 호출했다. 1000원이 더 비쌌지만 내 고생에 비해 싼 값이라며 카카오택시블루를 잡았다. 억겁같은 5분을 기다려 택시에 올라탔다.

남편과 통화를 하고 상황을 알리고 회사 동료들에게도 천재지변의 상황을 알렸다. 벌써 출근을 시작한지 2시간30분이 넘었고 여러번 비를 맞아 머리는 쳐졌다. 필라테스한 몸의 곳곳은 근육통이 시작되었고 어깨의 노트북의 무게가 천근만근이었다.


그래도 가야했다. 오늘 인턴이 첫출근을 하는 날이었고 이미 엄청난 기회비용을 길바닥에 날리며 슬랙으로 원격근무를 계속해서 하고 있었다. 택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안도하고 있는 찰나 이상했다.

"어 이 풍경이 아닌데???"


5번째 모험 :  라스트팡


"기사님 여기 혹시 잠실이에요?"

"네 삼성생명빌딩 가는거잖아요."


카카오티를 부리나케 열었다.

아뿔싸..! 삼성역으로 가는줄 알았는데 잠실의 이전직장 주소지였다. 택시타고 회사 갈 일이 없으니 네이버 지도와 달리 단축 주소지를 바꿔놓지 않았던 것이었다.

삼성 어쩌고만 보고 주소의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잘 못 오신거면 더 가실 거에요? "

잠실에서 삼성역가는 주차장같은 길로 택시로 가는 것은 무리였다. 택시에서 내렸다. 매정한 택시 자동 결제 문자가 날아왔다.

비가 더 많이 왔다. 잠실역까지 걸어서 5분정도의 거리.

포기하고 싶어졌다. 눈앞에 비구름에 가린 롯데타워가 보였다. 옛 동료들이 저 위에 있을텐데..! 오늘은 그냥 휴가 쓰고 싶단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남은 것은 오기밖에 없었다.


오늘은 무조건 회사에 가야했다.

'(띠딕)환승입니다'

3호선의 길잃은 출근러는 30분을 앞두고 내려서 장장 2시간40분 만에 2호선 잠실역에서 2정거장을 가려고 지하철에 다시 올랐다.

지하철 역사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왓다.


"(치직)3호선 금호역에서 열차가 정지되어 운행이 차질이 있으니 3호선 이용 고객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독한 '라스트팡'이었다.

잔뜩 지친 몸으로 삼성역 파르나스빌딩에 도착했을 때.

이미 집에서 출발한지 3시간이 지나 있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214/0001174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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