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생때 대학교 1-2학년때 많이 했던 말들이다. 난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명확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했었다. 친구과 가까운 사람들과 투닥이고 나서도 사과인지 협박인지 알 수 없게 '난 원래 그래'를 방패삼아 나를 방어하려 드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자체가 굉장히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제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무엇이든 부정적인 면을 이야기하며 비아냥거리는 사람을 왜 피해야할까?
언젠가 누가 우스겟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비난은 듣기 싫은데 충고는 더 듣기 싫다고! 비난도 충고도 결국은 나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말이기에 마음이 언짢기 때문이라는게 바탕에 깔린 공감의 생각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뼈아픈 충고들이 없다면 성장할 수 없기에 일부러 피드백을 듣고자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모든 일과 사람에겐 장단점이 있고 어떤 사람은 기가 막히게 단점을 조언해주고 문제점이 있음도 알려준다.
그러나 이런 비난과 충고가 유효하게 작용하려면 2가지 조건이 받쳐줘야한다. 첫째 듣는 사람이 이 충고에 타격받지 않아야 하고 둘째 비난이나 충고에는 지적질에 대한 타당한 대안을 제시해줘야한다. 이 두가지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비난은 그냥 가면을 쓴 욕설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일부의 사람들은 충고속에 담아둔 칼날로 상대방에게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거나 객관적이지 못하고 오로지 본인만 생각하는 타인의 특정한 면을 모두가 그렇게 느낀다는 듯이 공론화해버린다. 이런 태도는 상대방의 의지를 꺾어버린다. 기업의 아이디어나 전략기획에 대한 비난이었다면 모두를 대안없이 좌절시킬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충고를 빙자한 비난으로 오히려 기가 꺾이지 않기위해 긍정적인 사람들을 만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이는 비판도 서로의 감정을 위해 무조건 하지 말아야하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가장 큰 무기는 보통 경험적 지식과 자기 성격이다. 내가 어린시절 겪던 난 원래 그런거 보면 못참고 앞에서 바로 말한다 이런건데 그건 본인 성격은 고치기 싫으니 타인이 다치는건 신경쓰지 않겠다는 뜻이된다. 모든 문제는 여러가지 대안이나 해결방안이 있고 개인의 단점은 그 사람이 아니라 주변이나 시스템으로도 커버해줄 방법들이 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경험 지식을 전해주는 것과 비난은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거봐라 못할고야 안된다 망할거야'와 같은 태도는 그 사람의 지식까지도 의미없게 보이게 만든다. 그 사람이 대단해보여도 절대로 같이 일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긍정적인 분위기는 무조건 대세에 수긍하라는 복종의 의미가 아니라 목적에 대한 진취적이고 열린 사고에 해당한다.
즉, 긍정적 사고는 유연한 생각이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고 엄청 큰 문제가 있어도 나는 못할 것 같은 것도 내가 아닌 누군가는 해결할 수도 있다는 그런 마음. 그런 생각이 함께 일하고 싶은 긍정적인 동료의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조차도 변할 수 있다고 믿게되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고 남에게 이해받기만을 바라는 유치한 방어기제도 한꺼풀 벗길 수 있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