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주니어 친구가 돈을 쫓아 계속해서 경력직 이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껏해야 1~2년의 경력인데 이리 저리 큰 연봉을 줄 것 같은 곳을 찾아서 몇달 다니고 이직을 반복 했다고 하는 이야기. 분명 연봉도 기업 네임밸류도 좋아졌다니 다행이긴한데 마음 한편으로 걱정이 들었다.
연봉은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직처를 평가할 때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비교대상이기도 하다. 그치만 지금 일하고 있는 과정에서 연봉이나 복지가 불만이 자꾸 생겨서 이직처만 뒤져보고 있다면 다른 문제가 생겼다는 뜻일 수도 있다.
몇 가지 케이스가 있는데 이 부분은 주니어일때는 눈치채기 어려운 부분이다.
첫째. 자신의 경력에 대한 과신으로 과잉포장하진 않았는가?
이직은 포장의 기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지나친 포장의 결과는 잔인하기 때문이다.
작은 관련업무를 크게 부풀려서 굉장히 많이 해본 것처럼 설명했다면 나중에 이직 후에 겪는 일은 둘 중에 하나다. 부풀려진 경험을 보고 이직한 회사는그에 맞는 업무를 요구하게 된다. 연봉도 대우도 좋아졌고 뱉은 말은 있으니 어찌어찌 고군분투하며 이겨낼 수도 있으면 레벨업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기본기나 진짜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면 몇번 일해본 뒤 실력이 까발려지고 그 뒤로 실제 능력보다도 더 적게 평가되면 잡일만 하게 되거나 계속해서 성장할 기회를 얻게된다.
거짓말의 잔인한 대가다.
그래서 이직을 처음하게 될 때 가장 고민하는 것은 사실 가서 다시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을 겪어야한다는 점이다. 신입일때 봐주던 부분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목표한 것이 일단 네임밸류와 연봉만 얻고 요즘 유행하는 '조용한 퇴사'로 적당히 다닐 생각이라면 좋은 전략이 되겠지만 만약 인정과 성장도 원한다면 이 부분은 신중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이직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것과 또 무엇을 그 기업에 기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봐야한다. 많이들 착각하는 것이 '기여한다는 말'에 대한 거부감이다. 기여는 마치 혼신을 다하는 노예가 되란 것으로 들리는데 당신이 실력이 있고 제대로된 경험이 쌓여있다면 기여는 하던 대로만 해도 되는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된다. 지금 몸빵으로 밖에 기여할 게 없다고 느껴진다면 기여보다는 성장과 가능성에 더 많은 포인트를 두어야하고 당장 성과를 보여주기 어렵다면 당연히 당장의 연봉가치는 낮을 수 있다.
즉, 쉽게 다 가질 순 없다는 이야기다. 회사가 자선단체도 아닌데 기여할 수 없고 성장하고 투자해야하는 자원에게 엄청 큰 비용을 당장 지출할 순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연봉이나 복지를 위해 자신의 경험을 부풀리는 것은 선택이다. 하지만 그렇게 또 짧게 점프하여 연봉 올리는 삶은 반대급부로 물경력이란 표현을 듣는다. 지향점에 따라선 그럼에도 연봉 높은게 좋을 수도 있다. 난 그런 방향성을 선택하진 않았을 뿐이다. 장단점이 있다.
둘째. 계속 돈과 복지만 보게 된다면 사실은 다른 것은 포기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연봉과 복지가 좋은 회사중에는 업계의 인재들이 선호하지 않기 때문인 회사도 있다. 대기업이고 그럴듯하지만 배울 점이 없고 시스템은 더 후져지고 있고 좋은 동료들이 오지 않아서 경쟁률도 낮은 곳. 그런 곳은 인재가 너무 필요하다. 그래서 연봉도 후하다.
막상 갔는데 기획자 일해본 사람은 1-2년 맛본 나뿐이고 위에서 지시해줄 좋은 선배도 없고, 일은 많은데 성장이 아니라 소모되는 느낌이라 기쁜 날은 월급날 뿐이라면 사람은 그 상황에 또 학습된다.
이 학습이 반복되면 회사와 동료라는 부분에 기대감이 줄고 또 다른 이직에서도 연봉과 복지와 같은 대우에만 집착하게 된다. 어쩌면 번아웃에 가깝다. 일 자체에 대한 가치를 전혀 공감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런 상태는 진짜 일의 보람과 좋은 동료와 시스템에서 오는 성장과 즐거움을 다시 느끼기 전까지 전혀 공감조차 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가 왜 그런 기준만 보냐고 하면 기가 차고 화를 낸다.
하지만 이미 회사와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화가 나고 술이 땡기고 인상이 찌뿌려지고 짜증내고 있다면, 월급으로 해결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다 극복해줄만한 연봉은 1억은 넘어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 연봉 1억 넘은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 돈도 월급으로 받으면 그렇게 크게 느껴지는 돈도 아니라고 한다. 얼마를 받든 연봉에는 적응하게 되어있고, 적당히 일하고 싶어도 빡치는 회사라면 그 스트레스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된다.
핵심은 이직 기준을 제대로 정하는 것이다.
물론 연봉과 복지만큼 직장인과 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 하지만 본인이 '조용한 퇴사'처럼 적당히 일하고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회사에서 짜증이 심하게 나고 인정 받는 것과 성장에도 집착하고 있다면 이직에서 다른 기준도 중요하게 고민을 해야한다.
첫째, 나의 수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무엇을 해봤고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떤 규모에서 잘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아야한다.정 스스로 판단이 안되면 무조건 칭찬하지도 무조건 까지도 않는 선배에게 객관적으로 본인 실력에 대해 평가해달라고 해보자. 시니어라면 흰종이 한장 줘도 제로에서도 본인이 알고있는 지식과 조건으로 시스템 구조에 대한 기획이 가능해야한다. 기존에 다 갖춰진 시스템에서 UI변경 정도만 해봤다면 시니어급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둘째, 가고 싶은 곳의 상황도 정확히 알아야한다. 네임밸류가 좋아도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 어떤 식으로 일해보고 싶고 누구와 일하고 싶은지도 정확히 고민해봐야한다. 물론 성장하고 싶고 바뀌고 싶다면 가서도 쉬운 일은 없다.
셋째, 연봉에 대한 정당한 기준이 필요하다. 2020년부터 2021년은 현금이 엄청 풀리고 스타트업 수백억 투자가 넘쳐나던 시기였다. 주니어인데 8천을 넘게 불렀다거나 20대에 1억 넘었다거나 하는 경우도 들려왔고 또 코인이나 주식으로 대박이 나서 월급이 우습게 보였다는 경우도 많았다. 블라인드에서 자랑하는 그런 연봉들을 기준으로 잡게 되면 정당한 기준을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어느 회사나 소통의 기본은 지금 연봉이다. 여기서 내 연차와 경험을 바탕으로 테이블을 놓고 딜을 해야하는데 기준설정이 필요하다. 과욕을 지나치게 부리다가 결국 협상 결렬된 사례도 충분히 많이 봤다. 문제는 그 뒤에 인식인데 과욕에 대한 기대치에 대해서 책임은 결국 개인의 몫이고 그러다 결렬되면 이 작은 바닥에서 계속해서 이미지가 남게된다.
어쨌거나 이직기준은 철저하게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선택이다. 한번도 진지하게 모든 조건을 펼쳐놓고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연봉과 복지를 기준으로 오버 플러팅하거나 지나치게 퇴사만 반복할 때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나도 회사도 연봉도 복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갑자기 연봉 다 줄이고 가치에만 몰빵하는 선택은 임산부인 지금 더더욱 못할 것같다. 그치만 내 자신의 기여할 수 있는 부분과 모르는 것, 키워야하는 역량에 대한 여러가지 조건을 고려했다. 물론 이직후에 맘에 안들 수도 있고 예상과 다를 수도 있고 변수는 많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그치만 아쉬웠던 건 그렇게 두세번의 이직한 그 친구가 아직 1년도 안되서 또 일이 이상하다고 이직을 생각한다고 한다.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다면 운빨에 맡겨야 하는데 그 사이에 우직하게 키워낼 프로젝트가 없어서 경력이 꼬인게 된다는 점이다. 우린 그걸 '물경력'이라고 한다.
대놓고 그 친구에게 말해줄 수는 없지만 그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인생살이는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고, 실력도 가치평가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블로그 조차도 구독자 모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조급해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