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를 믿고 빠른 복직을 선택했다. 조기수축으로 인한 입원이 한달이나 지속되면서 출산예정일보다 한달 반이나 일찍 출산휴가를 써야 했기에 보통 산후 3개월에 해당하는 출산휴가 기간은 아기가 50일이 될 쯤에 끝나버렸다. 벌써 복직을 한지 3주.
육아휴직을 쓸까 고민했지만, 여러가지 고민끝에 복직을 결정했다. 산후통으로 몸이 여기저기 아픈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재택이라면 출퇴근을 하지 않기에 대중교통의 불편과 사무실에서 8시간을 앉아있어야하는 불편, 그리고 무거운 맥북을 들고다녀야 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옵션에 가치를 두게 되었다. 그리고 출산전부터 불안했던 일의 항상성이 깨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30대후반에 아기를 낳아서 직장 근속의 시간을 최대한 더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여러가지 마음까지. 더 엄밀히 말하자면 내 안에서 올라오는 불안에 대해서 재택이라는 조건이 위로를 준 것 같았다. 대부분 육아휴직을 1년씩 택하는 이유는 사실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고, 아기를 봐준다고 해도 믿을 수가 없고 이런 점이 가장 큰데, 환경이 된다면 일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했다. 꼭 육아휴직을 맘대로 길게 쓸 수있도록 하는 것만이 커리어를 성장시키며 일하고 싶은 여성들에게 좋은 것은 아니니까.
나는 일단 친정엄마도 게시고 내가 재택만 한다면 친정엄마가 도와주지 못하시게 되도 사람을 쓰든 나중에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게 되도 여러가지 면에서 유리하다는 생각에 복직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점에서 지금은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IT업계라는 재택근무가 잘 자리잡은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지금은 굉장히 천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는 친정엄마와 아기와 함께 거실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거실에서 친정엄마가 아기를 돌봐주신다. 고생하시는 모습이 죄송하지만, 아기를 낳고 더욱 진하게 애착이 가는 친정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고 같이 점심식사를 하고, 점심을 먹은 뒤 아기 볼살을 한번 쓰다듬을 수 있는 이런 환경이 제법 마음에 든다.
퇴근 후에는 거실에 나오면 바로 육아로 복귀. 아기 아빠가 퇴근하면 친정엄마는 육퇴를 하고 세식구만의 육아가 이어진다. 우리 아기가 엄마의 빈자리를 길게 느끼지 않는 환경에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할 뿐이다.
2. 우리 아기는 나의 소유물이 아닌 소속사 식구
온라인 서비스기획이라는 세상에 UX(사용자경험)이라는 거창한 단어에 홀려서 입문한지 13년째다. 사용자의 경험을 관리한다는 말을 들었을때 내가 마법사라도 된 듯 우쭐했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굉장히 매력을 느꼈었다.
하지만 일하면 일할수록 느낀 점은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 여러가지 가설을 세우고 이렇게 하면 이렇게 쓰겠지라는 생각들은 여지없이 미미한 효과에 멈출 때가 많다. 외부에 보여지는 많은 서비스기획이나 PM/PO들이 자신이 만든 고객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자랑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게 진짜 자랑이 될 만큼 실무자들의 생각이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 사람 행동이라는게 어설픈 몇가지 행위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협업은 또 오죽 많은가. 개발자, 현업,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위의 보스며 사용자, 보도자료, 경쟁사 등등 서비스기획자로 일하면서 커뮤니케이션하고 의도를 가지고 설득해야하고 또 내 생각과 일치하지 않아도 수용해야했던 생각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지지고 볶고 싸우고 어르고 맞추고 의기투합하고 한 수많은 세월들을 지나면서 더 깨달은게 있다. 내가 옳을 수도 있지만 틀릴 때도 많다는 것이다.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맞아도 일단 져야되는 상황도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아기 by 아기'라고 말하는데, 맘카페의 많은 글이나 블로그, 유튜브를 보고 있자면 많은 엄마들이 오히려 아기를 무엇이든 가르치고 조종하고 부모의 행동 하나로 휙휙 바뀌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보게된다. 아기 먹는 것부터 시간, 행동 등등 모든 것을 표준화해서 그 기준에 안맞으면 불안해하고 계획한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나도 저래야 하나' 불안해지다가도, 13년간 얻은 교훈을 떠올린다.
'사람의 생각은 다 다르고, 사람의 상식은 절대로 동일하지 않다'
결국 우리 아기도 한 명의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를 알아보고 활짝 웃고, 말을 하지 못하지만 배가 고픈지 졸린지 장난감에 질렸는지 등등 본인의 의사표현이 명확하다. 이유를 모르게 울고 있을 때도 기저귀가 축축하게 무거워져일 수도 있고, 그저 지루해서일 때도 있고.. 뭐든 여러가지를 하나씩 해보다보면 풀린다. 그리고 그에 대한 교감을 경험적으로 쌓아가야 하는 것 같다.
직업적인 교훈이 아기를 키울 때 이렇게 도움이 되는구나 싶을 때가 바로 이럴 때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기를 우리의 소유물이나 우리의 사랑의 결정체 같이 생각하기 보다는 '소속사 식구'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부부와 함께 가정이라는 소속사를 함께 키워나갈 우리의 소속사의 식구라고.
이런 이유를 선택의 기준으로 잡은 것도 있다. 남자아기는 백일 사진을 올누드 사진을 많이 찍어주는데, 우리 아기가 컸을 때 만약 성격이 남편이나 나와 비슷하다고 하면 누드 사진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찍지 않기로 했다. 우리 눈에 너무너무 귀엽지만, 그렇게 귀엽다고 해서 모든 것이 노출된 그 사진을 굳이 사진관에서 남겨둘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서 인스타그램에도 사진 업로드를 나름 자제하고 있다.
또 그런 이유로 아기가 우는 모든 것을 내 탓으로 생각하지도 않기로 했다. 일해오면서 사람들과 협업하는 일들의 어려움이나, 기획한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사랑받지 않는 상황을 모두 내 탓으로 돌리면 그 괴로움을 견뎌낼 수가 없다. 하지만 그걸 괴로워할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대응해 나가는 것만이 오래 일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아기가 울 때도, 나를 스스로 탓하면서 옥죄지 않고 있다. 어차피 그래봤자 소용없으니 지금 할 수 있는 대응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엄마와 아빠의 태도가 편안할 때 아기도 옆에서 괜히 불안해지지 않을테니까. 아기도 눈치란게 있으니까.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육아로 출근하고 육퇴후 조용히 글을 써본다. 아직 100일이 안된 아기의 엄마로서는 여기까지가 좋은 점이다. 이후에 더 자라면서 또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어서 좋은 장점이 있지 않을까. 발견되면 꼭 더 정리해놔야겠다. 아기도 언젠가 엄마가 서비스기획을 하는 워킹맘이라는 것을 좋아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