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을 따뜻하게 보낸 기억은 오래 간다

나를 일으켜준 얼굴만 또렷하게 기억나는 선생님들

by 도그냥


IMF로 대부분의 가정이 무너지던 시절. 우리 집도 다를 것 없었다. 아빠엄마가 운영하시던 전파사도 접고 고정비가 적은 채소장사트럭을 하시게 되고 엄마는 본격적으로 청소나 급식같은 일들을 구하며 새벽같이 나가시던 시절. 이 변화가 있던 3여년의 시간동안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이 되기까지 부모님도 크게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으셨고 나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지냈지만 마음이 상당히 허했던 것 같다.


과거를 잘 잊는 탓에 기억이 다 나진 않지만 몇가지 기억이 있다.


1. 초등학교에서 모두 하교한 시간에 나는 왜 당직실에서 놀고 있었을까


그 때 엄마아빠는 새벽에 나가 일하느라 늦었고 언니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학교를 멀리 다녔고 집 근처 학교에 다니던 나만 혼자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있었다. 어떤 날은 미리 쌀이라도 씻어놨다가 저녁 9시쯤에야 같이 저녁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방과후 수업으로 컴퓨터 수업을 듣고도 시간이 남았지만 형편상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에 친구들과 노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초등학교때 1층 안쪽에 작은 티비와 누워있을 수 있었던 선생님들 당직실에 죽치고 앉아서 티비 시트콤을 당직쌤들과 같이 보면서 같이 라면 끓여먹었던 기억이 난다. 별 시덥잖은 시즌제 이야기며 캐릭터 이야기며 아는 척하며 주절거렸다.

그때는 선생님과 친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리 고학년이라도 학교서 걍 시간 떼우고 혼자 방치된 시간이었을 텐데 선생님들이 지켜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졸업할 때 담임쌤과 컴퓨터 선생님이 결혼하셨던데 당직실에 그 두분외 다른 젊은 여선생님 사이에 나까지 비밀데이트 지킴이가 된 거 같기도 하다. 잘 살고 계시겠지? 저도 굉장히 잘 살고 있어요.



2. 여전히 헤메던 중1시절. 쉬는 시간의 대피처가 되던 상담실


중1때는 흑역사같기도하고 뭔가 이유없이 주목받기도하고 괴롭힘 당한거 같기도 한 요상한 시기인데 사실 집안 분위기는 가장 최악이었던 때였다. 친구 관계도 뭔가 평등하지도 않고 지치기도 했었고.. 이제 다 기억은 안나지만 쉬는 시간에 교실에 있는게 너무 지치고 힘들었는데 상담실에 두 조금 연세있는 선생님 두 분이 계신 곳에 매일 가서 뭔가 돕기도하고 맨날 푸념에 농담따먹기하고 있었다. 애늙은이 같은 성격에 애들보다 너무 편하고 좋았다.


커피를 엄청 드시는 선생님들에게 커피사탕도 사다 드리고 집이야기하다가 울기도 하고.. 거기가 뭐가 편하다고 그렇게 드나들며 떠들었을까. 학교 끝나고 집에 안가고 혼자서도 화정문고 서점에 가서 책을 뒤적거리며 뭔가 혼란스러움을 삭이기도 했던 것 같다.


중2에 전학가면서 많은 부분이 정리가 됐던 것 같은데 중1 때의 선생님들이 날 많이 지켜준 거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아이도 혼자 자라진 않는다.


마음이 외롭던 질풍노도의 시기. 혼자서 다 이겨내고 큰거 같고 별 일 없던 시기 같아도 생각해보면 누군가라면 더 타격입었을 많은 생각과 상황들을 좋은 어른들의 작은 선의가 모여서 일으켜준거 아닐까.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을 찾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떠오른 나의 선생님들. 얼굴만 기억나고 선생님들 이름이 또렷이 못해서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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