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시작한 건 아니고, 아내가 욕실 청소를 하는 데는 힘이 필요하니 꼭 내가 해 주면 좋겠다고 해서 언젠가부터 담당이 되었다. 가사의 역할 분담이 되어 있는데 설거지,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는 경력이 좀 더 길다. 욕실이 두 개 있는데, 다른 하나를 창고처럼 쓰고 있는 건 참 다행인 일이다.
그런데 청소를 거듭하다 보니, 나름대로의 방식과 원칙이 정해졌다.
1. 시작할 때는 욕실 문을 열고 환풍기를 돌린다.
늘 사용하는 욕실 전용 락스 세제는 냄새가 강하다. 욕실 바깥으로 물이 튈까 봐 처음에는 문을 닫고 청소를 했다. 한참 몰입해서 욕조를 닦다가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어 욕조 언저리를 부여잡은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바닥에 물을 뿌릴 때를 제외하고는 문을 열어 놓고 환풍기는 청소하는 내내 가동한다.
욕실의 광택보다는 내 목숨이 우선이다.
2. 구둣솔 같은 솔, 칫솔 같은 솔을 용도가 다르게 사용한다.
세면대, 욕조와 같이 때를 벗겨내야 하는 부위는 구둣솔 모양으로 닦는다. 실제로 구두 광을 내듯이 쓱싹쓱싹 닦는데, 하얗게 보였던 부분에서 때가 벗겨지며 배수구 쪽으로 짙은 색깔의 물이 흘러 내려갈 때, 다 닦고 난 뒤 걸림이 없는 매끈한 면을 손가락 끝으로 문지를 때는 일종의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칫솔 모양으로는 모서리와 줄눈을 닦는다. 욕실 청소는 곰팡이, 냄새와의 전쟁인데, 주로 물이 고이는 모서리와 줄눈 부분이 문제가 된다. 이 사이를 구석구석 닦듯이 욕실의 양치를 시켜준다. 허리를 펴고 둘러보면 미백 치료라도 받은 것처럼 여기저기 뽀얀 줄이 눈에 들어온다.
욕실 청소하는 맛이란 이런 것.
3. 청소는 위에서 아래로 한다.
즉, 1) 세면대, 2) 욕조와 변기, 3) 바닥, 4) 배수구의 순으로 솔질을 하는데, 물의 흐름과 관계가 있다. 위에서 아래로 씻어 내려가면서 아래 부분에 자연스럽게 물이 닿게 되고, 청소를 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마치, 설거지를 할 때 그릇을 물에 미리 불려 두어야 닦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다. 때의 흐름과도 관계가 있으니, 위에서 벗겨낸 때가 아래로 이동하고 마지막으로 거쳐간 배수구 안쪽의 때까지 닦아 흘려보내면 청소 끝.
청소에도 위아래가 있는 법이다.
4. 청소가 끝나면 변기 뚜껑과 변좌를 모두 세워둔다.
물이 흘러 내려서 저절로 마르게 하려는 목적과 함께 놀람 방지가 그 이유이다. 물이 묻어 있는 변좌에 모르고 앉았을 때의 당혹감을 덜어주기 위해서. 남자 넷, 여자 하나인 우리 집에서는 서서 볼일을 보는 일이 더 많으니, 변좌를 한동안 세워둘 수 있고 그러는 사이에 물기가 웬만큼 없어져서 조금만 닦아내고 사용하면 된다.
휴지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지난 주말, 여행을 다녀와 피곤하다는 이유로 한 번 건너뛰었더니 아들 셋이 배출한 액체의 냄새가 변기 주변에서 느껴진다.
이번 주는 주중에 욕실 청소를 해야겠다.
3년 반 정도 지난 집의 욕실은 인테리어를 마쳤을 때의 상태와 큰 차이 없이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