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서평
일찍이 현자들은 알았다. 생(生)은 고달픈 것이고, 일(Arbeit)은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심지어 성경에서도 원죄의 형벌로서 아담과 이브가 대대손손 노동과 출산의 고통을 짊어졌다지 않는가.
노동은 숭고하고 성스러운 행위라는 둥, 일은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둥, 아무리 근사한 표현을 붙여봐도. 하루하루 꾸역꾸역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 같은 우리네 직장인에게, 일은 그저 반복되는 일상의 규칙이자 생계를 위해 참아야 하는 과업처럼 느껴지기 일쑤이다.
하지만 차라리 일이라는 게 그저 그뿐이었다면, 삶이 얼마나 더 명료했을까?
그저 다달이 월급 받는 곳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먹고살기 위해 노동력을 파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기에는, 나는 혹은 우리는 스스로의 삶이 너무 아깝고 애틋하다. 그래서 기왕이면 일을 통해 보람도 얻고, 스스로 성장한다는 기쁨도 맛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도 느끼고 싶어 한다. 소설 속 천재 개발자 케빈이 아직 광고도 붙지 않은 스타트업 회사에 스카우트된 이유는 그저 “개발자로서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 주겠다”던 그 한 마디였다.
그래서였나?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이 덕담을 읽는 순간 마치 그 옛날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를 처음 본 그날처럼 당혹스럽고 씁쓸했던 것은.
파는 쪽은 최대한 비싼 값을 받으려 하고, 사는 쪽은 최대한 싼 값을 치르려 애쓰는 것처럼, 나의 노동(일)을 그저 화폐(돈)와의 교환 가치로만 취급하기엔 못내 씁쓸했다. 그 시장에서의 효율적인 거래-노동은 적게 팔고, 돈은 많이 받는-를 응원받기엔 조금 슬펐다. 꽤 소모해버렸고, 거의 휘발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내 일에서 가치를 찾고 의미를 얻고 싶은 내가 남아 있었나 보다.
부디 ‘일의 슬픔’에 매몰되어 ‘일의 기쁨’까지 잊어버리지는 말기를,
하지만 ‘업무 하는 나’와 ‘본질적 자아’를 너무 동일시하여 소진되지 않기를,
몰두할 수 있는 ‘나만의 아름다운 무언가’를 찾아내어 슬기로운 워라벨을 달성하기를,
그리고 가끔씩은 지친 동료에게 다가가 위로를 건네기를, 그래서 함께 작은 기쁨의 순간을 만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