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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 버드나무 Sep 01. 2021

[어슬렁,남해]25. 밤길 멧돼지를 물리치는 방법

독일마을에서 꽃내까지 밤길 도보 /수제 맥주브루어리 <완벽한인생>

“멧돼지 조심하고, 남자 조심하고”. 낮에 홀로 산책을 가거나, 밤에 도보로 어딘가 다녀올 때 대표님이 늘 하는 말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웃어넘겼는데, 막상 가로등 없는 칠흑 같은 도로 위에 서자 그 말이 떠올랐다. 


살러*들과 독일마을의 <완벽한인생>에서 수제 맥주를 곁들인 완벽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막 돌아오려던 참이었다. 농담처럼 들렸던 말이 진담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길 위에 선 우리 넷에게 두려움이 일었다. 마치 픽션 영화라고 생각해 안심하며 봤는데, 극장을 나서며 실화였음을 알고 뒤늦게 소름 돋았던 어느 날처럼. 


짧은 침묵을 깨고 제안했다. "우리 멧돼지가 인기척을 느껴서 도망가도록 큰 소리로 노래 부르며 걸을까?" 그래 좋은 생각이야.


야간 산행객들처럼 각자 손에 쥔 핸드폰의 조명을 켜고, 도로 옆 갓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폰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음악 소리에 맞춰 수줍게 시작한 노래는 이내 우렁찬 소리가 되었다. 두려움이 전염되었던 것처럼 흥겨움도 금세 전염되었다. 히이이잉, 왈왈, 냐옹냐옹, 꼬끼요오! 각자 제 음색에 취해버린, 용맹한 브레멘 음악대가 따로 없다.


힘차게 발을 구르고, 리듬에 맞춰 팔도 흔들고, 간혹 기억나는 추억 속 안무는 느낌 충만하게 따라 추며 걷다 보니 모든 걸 집어삼킨 듯 막막했던 암흑이 어느새 낭만적인 여름밤으로 바뀌었다. 지나는 이 하나 없고, 보는 이 하나 없는 외딴 시골길 달밤의 떼창 행진.


어라 벌써 도착했네? 한 시간 거리가 금방 끝나버렸다. 아직 흥이 가라앉지 않아 가슴이 벌렁거린다. 아무래도 오늘 밤도 여운을 삭이려면 쉬이 잠들지 못하겠구나.


함께 발맞춰준 늠름한 나의 동지들이여, 모두들 굿나잇.     


지나는 이 하나 없는 달밤의 떼창 행진. 흥겨움에 흔들리는 카메라. 브레멘 음악대가 된 기분 ©류


* 살러(Saler): 남해군 지원으로 <6주 살러, 남해> 프로그램에 참여한 참가자들을 지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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