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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 버드나무 Aug 06. 2021

상처 받고 고장 난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소설 <복자에게> 서평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집에서 중학교 시절 편지함을 발견했다. 으레 크리스마스나 새해가 다가오면 친구들과 주고받던 카드들, 사춘기 소녀들이 교환일기처럼 늘상 나누던 사사로운 편지들, 누군지 모를 마니또가 보낸 비밀스러운 엽서들... 그 더미 속에서 꽤나 친근한 듯 애정을 눌러 담은 편지 한 통을 찾았다. 한 때 누가 봐도 단짝이었던 친구, 하지만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소한 이유로 토라졌고 결국엔 영 멀어져 버렸다. 

     

소설 <복자에게>는 잊고 지낸 그녀를 되살려냈다. 그 시절 나의 미숙함을, 너의 아련한 마음을, 우리가 끝내 이루지 못한 화해를 그립게 만들었다. 소설 속 주요 인물들은 각자 ‘나의 자존심, 나의 도덕성, 나의 결벽’을 지키기 위해 가까운 이에게 의도치 않은 생채기를 낸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실수를 용서받기 위해 평생 속죄자의 삶을 살고, 누군가는 ‘마음이 에멘탈 치즈처럼 구멍 난 채’ 차갑고 외로운 생을 산다. 그들이 먼 훗날 다시 화해에 도달하기까지는 긴 고독과 상실의 시간을 인내해야만 했다.     


마침내 그들을 깊은 냉소와 고립으로부터 구원한 것은 ‘공감’이었다. 자신이 상처 줬던 이들을 기억해내고, 그 마음과 고통을 뒤늦게나마 헤아려 보면서, 과거에는 그저 당혹스럽고 섭섭했던 그들의 태도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견뎌내 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느낀다.

      

어린 시절엔 늘 힘겨운 성취, 뛰어난 업적을 이룬 위인들에게 감동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삶의 고단한 순간이 잦아질수록, 그저 각자 인생의 숱한 고비를 참고 버텨낸 평범한 이들이 더욱 위대하고 애틋해졌다. 그들이 고난을 극복했는지 굴복했는지를 떠나, 그저 그 시간을 온몸으로 관통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곤 한다. 나이 든 누군가의 거칠고 주름진 손, 어느 가난한 나라 농부의 굽은 뒷모습, 세상의 숱한 재앙 속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일 테다.    

 

희망이 점차 희소해지는 시대, “You can do it”보다 '존버'가 더 공감받는 시대,

<복자에게>는 상처 받고 고장 난 우리들의 마음을 보드랍게 토닥여 주는 작은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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