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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 버드나무 Aug 06. 2021

[어슬렁,남해] 02.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첫 동네 산책, 20분 말하기

아침에 눈 뜨자마자 동네 탐색에 나섰다. 새벽녘 비가 뿌렸는지 길바닥이 촉촉하고 공기가 차분하다. 썰물로 제 바닥을 다 드러낸 바다는 저만치 멀어져 있다. 새 지저귀는 소리, 풀이 바람에 스치는 감촉, 옅은 갯내음이 오랜만에 내 감각들을 자극한다. 그간 내게 바다란 휴가철 산책 장소, 해산물 맛집의 창밖 풍경, 지친 날 훌쩍 떠나 만난 위로였는데... 이제는 동네 어귀에서 일상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심심한 풍경이 왠지 좋다. 눈길 닿는 논마다 이제 갓 뿌리내린 아기 벼가 푸릇하다. 6주 후 이곳을 떠날 때쯤엔 얼마나 자랐을까.     


'20분 말하기' 순서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앞으로 나흘간 매일 저녁, 서너 명씩 자기 얘기를 독백으로 들려주게 된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 오랫동안 내게 말하기란 무릇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 들려주기', ‘필요한 정보 명확히 설명하기’였다. 그래선지 주제도 방식도 모두 자유인 이 시간이 낯설고 조금 두려웠다. 가장 궁금하면서도 가장 부담되는, 가장 기대되면서도 가장 피하고 싶은 그런 순간. 


지금 이곳에서 함께 머물게 된 열 두명의 우리는, 각자 어떤 삶의 궤적을 그려오다 여기서 비로소 교차했을까. 무엇이 우리를 남해로 향하게 했을까. 지금 가슴에 품고 있는 가장 뜨거운 화두는 무엇일까. 상처와 아픔은 같이 공감하고, 용기 내어 다시 딛는 걸음은 함께 응원하고, 낯선 삶은 애정과 호기심으로 귀 기울여 들여다보게 된다. 


한편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과연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스스로 되묻게 된다. 내 마음속 깊은 우물이 그저 적막하고 캄캄했는데, 이젠 뭔가를 조금 길어 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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